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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보관하는 신비로운 숲 '피리타'

박영복(지호) 2006. 8. 4. 17:25
 
최근 발트3국을 비롯한 러시아에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추운 날씨가 연일 이어져 추위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난방비와 전기이용도 급증해 국가적으로 경제적 손실을 양산하기도 합니다.

에스토니아의 경우 1월 중순에 일주일 내내 영하 27도의 날씨가 계속된 적도 있습니다. 이곳에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추위는 자주 찾아오진 않습니다. 그래도 겨울이면 으레 한 달에 며칠 정도 매운 추위가 찾아오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지속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현지 언론들은 이번 추위를 100년 만에 세 번째로 찾아온 혹한이라고 하더군요. 영하 27도는 '춥다'란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 되는, 길을 가다가도 추워서 잠시 쉬었다가 가야하는 참혹한 추위입니다.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는 금방 체온이 떨어져서 동사할 것 같은 느낌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 사시사철 잎이 우거진 물푸레나무가 저 연못의 입구를 지키고 서있습니다. 수백 년간 같은 자리에 서있는 저 나무는,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신성히 여겨 숭상하던 나무였답니다.
이렇게 꽁꽁 얼어붙은 에스토니아에 봄의 초록빛과 온기를 지키고 있는 신비로운 숲이 있습니다. 겨울에 지친 여러분들에게 등장할 준비를 하며 단장을 하고 있는 봄처녀를 살짝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남쪽으로 약 30km 쯤 내려가면, 피리타(Pirita)라는 강의 발원지가 나옵니다. 그 곳에 가보니 언제나 사시사철 이런 푸른색을 만날 수 있는 신비로운 숲이 숨어 있더라고요.

이곳은 숲의 요정과 천사들이, 동장군의 침략에 힘을 잃어버린 봄기운을 몰래 보호하고 있는 곳이 아닌지. 요정들은 그 비밀의 장소를 들켜버린 것이 두려운 듯 전부 어딘가에 숨어버렸지만, 울창한 전나무와 자작나무들 사이로 그들이 날갯짓을 하는 소리가 들릴 듯 신비롭고 고요하기만 합니다.

보기에는 그냥 숲 한가운데 난 연못 같지만, 주변이 온통 얼음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세요. 이곳엔 사나운 동장군도 매서운 눈의 여왕도 함부로 침범하지 못할 것 같죠?

보통 저 아래로 온천이 있어서 생긴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만, 저 연못은 온천이 절대 아닙니다. 말씀드린 대로 저곳은 피리타 강의 발원지인데, 엄밀히 말하면 강물이 발원하는 곳은 저 연못 주변 땅 밑을 흐르고 있는 지하수입니다. 그 숲 일대 지하에는 맑은 물줄기가 사시사철 흐르고 있고 저 연못은 그 지하수가 밖으로 흘러나와서 고인 것입니다. 땅 밑으로 흐르는 강물이 고이다 보니 바깥기온이 아무리 낮다하더라도 연못은 항상 영상 5도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연못 바닥에서 맑은 물이 솟아오르며 만들어내는 공기방울이 뽀글대는 모습이 보일 만큼 물이 맑습니다. 그 주변으로는 재미있는 놀이거리를 찾아 모여든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있는 모습도 보이죠?

땅 밑으로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던 옛날 옛적, 사람들은 정말 이곳을 신성한 곳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지반이 낮고 축축하므로 난데없이 땅이 꺼지고 웅덩이가 생기는 일이 많았는데, 애꿎게 그 자리를 지나가다가 봉변을 당한 사람이나 동물은 이유 없이 죄책감에 사로잡혀야 했음은 물론입니다. 가끔씩 땅 밑으로 흐르는 물이 역류해서 우물 밖으로 솟구치는 일도 있는데, 그 우물은 여전히 '마녀의 우물'이라고 불립니다. 물론 지금 그곳에 마녀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도 이곳에 오니, 한번쯤은 마녀나 요정이 있다고 믿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어딘가에서 허락 없이 사진을 찍어대는 저를 노려보고 있었을 수도 있고요.

아무리 추운 겨울이 지나도 따스하고 포근한 봄이 오는 것은 사람들이 모르는 어딘가에 봄을 보관하고 있는 장소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춥고 기나긴 겨울이 지긋지긋 하시죠?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제 조만간 요정들이 저 연못에서 봄기운을 끄집어내면 온 세상이 저 푸른 물빛으로 다시 물들 겁니다. 봄아, 얼른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