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은 모두 있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물고기가 있어야 할 자리는 땅 위가 아니라 물속이며, 학생이 있어야 할 자리는 유흥가가 아니라 학교입니다. 성도가 있어야 할 가장 소중한 제자리는 바로 주일에 예배하는 자리입니다. 어떤 성도는 주일에 빈자리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집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자신만은 어떻게 하든지 주일예배 자리를 지키려고 애씁니다. 얼마나 든든하고 감동이 됩니까? 큰 능력이 없어도 좋고 큰 헌신을 못해도 좋습니다. 기본적으로 제자리를 힘써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복된 태도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이는 곳입니다. 집안에서 물건이 있어야 할 곳에 놓이지 않는다면 매우 어지럽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가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난다면 혼란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성도는 하루속히 제 자리로 돌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나 한 사람이 단지 예수님을 믿고 혼자 지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 공동체 안에 속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서로 함께 더불어 살기를 원하십니다.
서로 정을 나누고 가정을 이루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가족 안에 우리 모두가 들어와 다른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살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로마서 12장 5절에 말씀하시를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었고 각 사람은 서로 지체가 됐습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단지 믿는 것만이 아니라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몸, 곧 “교회”의 일원이요 한 부분입니다.
교회는 빌딩이 아니라 우리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모여 이루어진 몸입니다. 몸의 지체들이 몸에 붙어 있어야 살아 있듯이, 우리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붙어 있어야만 계속 살아서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면 머지않아 말라서 죽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생명은 결국 그 힘과 기운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쇠약함의 첫 증상은 성도의 모임과 예배 참석을 게을리 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이어서 성도의 교제에 무관심한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 개그맨이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는 책을 썼습니다. 사람에게는 그런 속성이 있습니다. 가지 말라면 더 가고 싶고. 먹지 말라면 더 먹고 싶습니다.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면 그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삶을 ‘재미있게’ 살려고 하기보다 항상 ‘의미 있게’ 살려고 하십시오. 조금 재미없어도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굳게 지킬 때 그때부터 의미 있는 인생이 시작됩니다.
반면에 제자리를 이탈하면 그때부터 불행이 시작됩니다. 오늘날 갈등과 싸움이 가득한 곳에 그대로 머물면서 제자리를 찾지 못해 신음하는 영혼이 얼마나 많습니까? 누구에게나 하나님이 계획하신 자신의 최고의 축복된 운명이 있습니다. 그 복된 운명을 향해 제자리를 찾아 나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땅에는 많은 사람들이 강도를 만나서 재산을 빼앗기고 생명을 잃기도 하며 탄식하며 울고 있습니다. 인간은 여러 가지 면에서 강도를 만나고 있습니다. 정신이 선한양심이 도적맞기도 하고 행복한 가정이 강도를 만나서 울기도 합니다.
사업에 강도를 만나며, 또한 건강하고 평안한 심령이 강도를 만나 근심가운데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인생행로에서 강도를 만날 위험성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실패와 불행은 그것은 신앙의 실패입니다. 여기에서 잘못되게 되면 불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신앙이 부도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충성이란 발전도 없고 비전도 없는 곳에서 죽을 때까지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된 계획 속에서 제자리를 찾기 위해 과감하게 현재의 자리를 떠나 복된 운명을 향해 나가는 것도 충성입니다.
인간은 불행한 존재만은 아닙니다. 성도는 늘 행복을 노래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를 찾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누군가에게 가서 열심히 전해주십시오. 성도가 가장 많이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란 말입니다.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보살펴온 마리안 수녀님(71)과 마가레트 수녀님(70) 두 분은 모두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1959년과1962년에 각각 소록도에 와서, 70대 할머니가 되기까지 평생을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섬겨주었던 분들입니다.
이 두 분 수녀님이 어느 이른 새벽 단지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라는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조용히 소록도를 떠났는데,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가 되었습니다.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너무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빕니다.”
오랫동안 소록도에서 이분들을 지켜보았던 사람들에 따르면, “두 수녀님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였습니다. 작별인사도 없이 섬을 떠난 두 수녀님 때문에 섬이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분들의 삶이 참으로 아름다웠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래서 소록도 사람들은 꽃다운 20대부터 수많은 한센병 환자들의 손과 발로 살아오신 이분들을 가리켜 ‘큰 할매’ ‘작은 할매’라고 불렀는데, 두 분 수녀님이 오스트리아로 되돌아가는 길에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낡은 가방 한 개씩만 들려 있었다고 합니다.
이 두 분 수녀님은 조용히 소록도와 와서, 묵묵히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시다가, 조용히 소록도를 떠나신 것입니다. 이 두 분이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지는 섬과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교회의 머리가 되어주시고, 교회로 부름 받은 우리 각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다면, 이분들의 삶을 본받아 자신이 성도로서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이고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따로 기록한 적이 없습니다. 기도가 신앙생활이라고 말씀한 적도 없고 교회 다니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말씀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이 성도로서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이고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지 못했을 때 신앙은 분명히 거추장스런 짐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가야 할 곳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 복잡하고 분주한 시대를 사는 성도들은 정말 생명이 되고 은혜가 되고 복된 곳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신앙생활이란 날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은 그 용서의 기쁨을 자랑하는 그 자리에 있는 것, 성도들이 있어야할 자리, 그 자체가 성도의 신앙생활입니다.
♬ 거친광야 세상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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