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은 동일 문화권인가]
한국, 중국, 일본은 흔히 동양 3국이라고 불린다. 뭉뚱그려서 '젓가락 문화권'이라고도 하고, '유교 문화권'이라고도 한다.
세 나라 국민이 한결같이 손재주가 뛰어나고 부지런한 것이 젓가락 문화에서 온 것이라면,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하고 교육열이 높아서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되어도 자식에게 교육을 시키는 것이 유교 문화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 공통적인 특성도 뚜렷한 차이점이 있지만, 유사점이 많은 만큼 이 정도로 말하고 차이점에 대해 말하겠다.
[문화란 사고 체계]
한중일 세 나라는 도저히 같은 문화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점이 많다. 달라도 보통 다른 게 아니다. 무심코 보아 넘겨서 그렇지 엄청나게 다르다. 그래서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같거나 유사한 문화를 공유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각과 말이 끝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경우가 많다.
문화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공유하는 사고 체계'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동양 삼국은 사실상 각기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거의 일치하지 않을 정도로 다르다. 그러면서도 지리적 근접성과 역사적 경험의 일부 공유 때문에 이 쪽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다른 쪽에서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줄 지레 짐작하고 자기 좋은 대로 일을 진행하다가 서로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 문화에 대해 지식인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것을 자세히 연구하지 않고 높으신 분들이 경제, 정치, 사회, 교육, 외교, 군사 등의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고 정책을 입안해서 '소신껏' 추진하기 때문에 일이 이상하게 꼬인다. 그러면서 왜 그런지 모른다. 알 턱이 없다. 문화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 차이를 연구는커녕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는 이른바 '석학'이라는 사람이 TV에 초빙되어 자기가 최불암이나 된 듯이 무슨 드라마 주인공인 양 아주 그럴 듯하게 실감나게 연기를 하고
저명한 교수가 터줏대감처럼 신문에 떡 하니 자리잡고 앉아
자기가 나관중이나 되는 듯이 장쾌하고 아름다운 소설을 써대는 바람에 멀쩡하던 똑똑한 시청자와 독자들마저 그만 헷갈려 버린다.
우리 나라에서는 배운 사람일수록 우리 문화에 대해 무지한 편이다. 근대 이후 학문이라는 것이 서양 학문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양 문화 특히 미국 문화에 중독되어 자기가 말을 하면서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고 방식을 지배하는 우리 문화에 대해 너무 무지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중국 문화에 중독되어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흉내를 잘 내어 박수를 받더니, 이제는 또 미국 문화에 중독되어 앵무새 같은 말을 해서 미국인들에게 귀염을 받고 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나이다.
[동양 삼국의 문화는 동일 문화권이 아니다]
동양 삼국의 문화는 아주 다르다. 달라도 보통 다르지 않다. 어떤 경우는 게르만 문화와 일본 문화 차이가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보다 더 작을 때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상무 정신과 장인 정신이다.
[일본 문화와 게르만 문화]
게르만 문화와 일본 문화에서는 어디서나 상무 정신과 장인 정신을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눈을 씻고 봐도 이 두 정신이 안 보인다. 먼저 장인 정신에 관해 말하면, 한국에는 이 정신이 있더라도 구석진 자리에서 초라하게 이름은 그럴 듯하게 '인간 문화재'라고 하지만 사실은 '전통 문화유산 담당 생활보호 대상자'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한다. 그나마 인간 문화재로 지정 받지 못한 사람은 거지와 진 배 없는 생활을 한다.
독일을 비롯한 서구와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 어디나 장인 정신이 넘쳐 흘렀다. 장인 정신이란 게 딴 것 아니다.
[장인 정신은 상공업을 중시하는 문화]
상공업을 중시하는 문화가 바로 장인 정신이다.
상공업을 천하게 여기지 않고 최선을 다해 평생 동안 자기가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며 사는 정신이다.
죽으면서 자기 아들에게도 꼭 자기가 갔던 길을 이어 받아 열심히 같은 길을 가라고 유언하는 정신이다. 평생을 열심히 상공업에 종사해 놓고도 자식에게는 절대 자기가 걸었던 길을 걷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장인 정신이 아니다.
[선비는 선악의 사고체계를 갖고 있지만, 무사는 강약의 사고 체계를 갖고 있다]
일본에도 사농공상 사상이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우리와 달리 사(士)가 무사(武士)였고 무사들은 실질적이라서 상공업을 천시하기는 했으나 절대 탄압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무사는 선비와 달리 모든 것을 강약(强弱)의 관계로 환원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리학의 영향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조선의 선비가 모든 것을 선악(善惡)의 관계로 보는 것과 이것은 아주 대조적이다.
(우리 나라도 삼국 시대, 통일 신라 시대, 고려 초기까지만 해도 상무 정신이 강하여 사고가 유연했다. 강약과 선악을 구별할 줄 알았다는 말이다.)
지금도 이 사고 체계는 한일 양국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게 일제의 조선 침탈이다. 한국은 그것을 악(惡)으로 보지만, 일본은 어디까지나 강(强)으로 본다. 강한 일본이 약한 조선을 '먹었다'는 식이다. 그래서 그들은 늘 조선 '진출'이라고 한다. 반면에 한국인은 악(惡)한 왜놈이 선(善)한 조선에게 씻을 수 없는 범죄(犯罪)를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조선 '침략'인 것이다.
그러니까 사죄 문제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서로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무사는 강약에 대해 아주 예민하기 때문에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단 4척의 우람한 흑선(黑船)밖에 갖고 오지 않았지만, 그 배와 거기 설치된 어마어마한 대포를 보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즉시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싣고 온 상품을 보고도 홀딱 반했던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장인도 만들 수 없는 환상적인 물건이었던 것이다.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강하다! 멋지다! 배우자! 문을 열자!
우리의 꼬장꼬장한 선비들은 그런 걸 보면 즉시 이렇게 판단했었다. 그래서 병인양요, 신미양요가 일어났던 것이다.
--악하다! 오랑캐다! 죽이자! 문을 닫자!
더군다나 페리가 육지에 내려서 권총 시범을 보여주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을 때, 그들은 평생 잊지 못할 충격을 받았다. 새로운 문물을 배우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소름이 끼치도록 깨달았다. '약육강식의 거대한 세계적 흐름'을 즉시 깨달았던 것이다. 그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 늦으면 늦을수록 '손해'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너희 가운데 천하제일 사무라이가 천하제일의 일본도를 들고
우리 가운데 아파서 다 죽어 가는 병자가 이 권총을 들고
결투 한번 해 볼까?
일본 무사들은 누구나, 한 평생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는 미야모도 무사시조차도 권총을 든 병자에게는 애시당초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일본 무사들의 대변신]
수백만 명이나 되었던 일본의 모든 무사가 실직자가 된다는 엄청난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득권을 깨끗이 포기하기로 무언의 합의를 보았던 것이다. 지방 반란이 일어나고 막부가 약간의 저항을 한 일 등은 찻잔 속의 태풍밖에 안 되었다. 강약의 사고 체계를 가진 사람은 이렇게 개방적이다. 강한 자에 깨끗이 항복하고 그 강한 자를 배우는 것, 그것이 바로 '개방'인 것이다.
이는 선악의 사고 체계를 가진 조선 선비들이 극도로 폐쇄적이었던 것과 대조된다. 고구려, 신라, 백제, 초기 고려가 얼마나 다른 문화에 대해 개방적이었나를 생각해 보라. 그들에겐 강한 것을 숭상하는 상무 정신이 넘쳐 흘렀었다.
그들은 성리학의 선악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다행히 이런 옛 전통이 우리의 깊숙한 무의식 세계에는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일단 한국 사람이 강약의 사고 방식을 받아들이는 순간 무서운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발휘한다.
한강의 기적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다. 북한도 1972년까지만 해도 경이적이었다. 남북 모두 군인 출신이 경제를 일으킨 일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군인은 선비의 전매 특허인 선악 이분법적 사고 체계가 아닌 강약중심의 개방적 사고 체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앞선 서양의 과학 기술을 받아들여 산업화를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군인과 운동 선수는 항복할 줄 아는 사람이다. 졌으면 깨끗이 진 것을 인정하고 다시 실력을 길러 다음 기회를 노리는 사람이다.
원래 일본 무사들은 농업과 상공업에 종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시에 그들은 실업자 신세로 전락할 것이 명약관화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의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선비가 아니라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신학문을 배우고 신상공업에 종사하고 신무기를 개발하기로 작심했다. 과감히 기득권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실력을 기름으로써 새로운 지배층으로 당당히 부활했던 것이다.
이들이 힘을 갖자마자 바로 한국과 중국에게 그 힘을 사용하는데, 이것이 한국과 중국에게는 '침략'이 되었던 것이다.
페리제독의 충격(1853.6., 정식 조약은 1854.3.)에서 정신을 차려 운양호 사건(1875)을 일으키는 데는 불과 2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것은 일본인들이 조금도 마음 속으로 갈등하지 않고 전국적으로 거의 한 마음으로 서양의 근대화를 배웠다는 뜻이다. 조선과 중국이 세계의 흐름을 전혀 모르고 아옹다옹하고 있을 때 일본은 그 흐름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합류하여 목숨을 걸고 서양으로부터 배웠던 것이다.
약자는 현실을 인정하고 강자에게 배워야 한다는 것을 그들이 즉시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문화가 바로 이처럼 상무정신과 장인 정신을 기둥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페리 제독에게 다음 해에 다시 오면 개방을 고려해 보겠다고 했지만, 이미 일본은 압도적으로 강한 세계에 엄청난 매력을 느끼고 그들에게 배워 자기도 강한 나라가 되겠다는 생각을 그 자리서 굳혔던 것이다. 죽기 살기로 하면 페리 제독을 물리치는 것은 과히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 흑선이 상징하는 바를 일본은 잘 알았다. 프랑스와 미국의 상선을 물리치고 환호한 조선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일본의 성리학자들은 무슨 역할을 했을까]
그러면 일본의 유학은 왜 그런 흐름에 반대하지 않았을까?
일본에서도 조선처럼 덕천(도꾸가와) 막부가 주자학을 관학으로 삼았지만, 학자는 항상 무사 아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무사들의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은 행정가 내지 조언자에 지나지 않았다.
이 당시도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이론을 즉시 끌어내어 이제는 힘센 장군이 권력을 쥐고 힘없는 천황은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비정상적인 막부 중심 국가가 아니라 천황이 실질적인 권력을 쥐는 정상적인 천황 중심 국가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무사들이 충성의 대상을 바꾸는 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유학자들이 1868년의 명치 유신을 정당화하는 이론을 제공한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유학자는 정책 결정권이 없었다. 오히려 무사들이 결정하면 그것을 정당화하는 이론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더구나 일본의 학자는 이미 실천을 중시하는 양명학도 연구했고 화란을 연구하여 일부 지역이지만 난학(蘭學)도 발달했었다.
일본 학자들의 사고는 아주 유연했던 것이다. 성리학을 하던 학자조차 선악과 강약을 구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강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산업화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악(惡)이라는 이론을 제공했던 것이다.
[풍신수길은 일본 자본주의의 원조]
일본을 실질적으로 통일한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은 원래 장수 출신이 아니라 재무 담당자였다. 상업의 귀재였다. 군대에서 생명줄인 보급을 가장 원활하게 해 주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남이 보는 데서는 결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체구도 조그만했지만, 무술을 거의 못했기 때문이다.
뭇 장수와 병사들이 다 보는 앞에서 호기롭게 공개적으로 결투를 신청을 한 적은 많았지만, 결투는 언제나 은밀히 둘만이 만나서 했다.
--지금 당장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묵사발을 만들고 싶지만, 사람이란 게 명예가 있느니만큼 아무 날 아무 시에 아무 장소에서 단둘이만 만나자.
단둘이 만나면 풍신수길은 즉시 무릎을 꿇었다. 바로 항복했다. 일류 무사는 자세만 잡아도 벌써 상대방의 무술을 거의 다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세도 취하지 않고 바로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전혀 싸움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솔직히 공개 석상에서 체면 때문에 큰 소리쳤다고 말했다.
--이래 보여도 나 풍신수길이 싸움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당신이 워낙 강적이라서 아무래도 상대가 안 되겠다. 사나이답게 항복한다.
마음대로 해라. 지난 번 일은 미안하다.
그러나 만약 자기를 용서해 주고 자기를 받들어 모시면 앞으로 잘 봐 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꼭 장군이란 법은 없지 않느냐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당신이야말로 내가 본 중에서 가장 무술이 뛰어난 장군'이라고 한 번 더 추켜 주었다.
그렇게 나오는 데야 뭐 뻣뻣하게 나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강자는 항복하는 약자에게는 너그러운 법이다.
(선비들이 항복한 약자에게도 아주 잔인한 것과 선명하게 대조된다. 선비들은 약자(弱者)를 약자로 보지 않고 악(惡)한 자로 보기 때문에 아예 상대방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뿌리를 뽑으려고 한다. 그래서 항복한 약자에게조차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 없이 잔인할 수 있다. 우리 정치사를 보라. 현대도 변함없다.)
여기서 풍신수길이 잘 봐 주겠다고 한 것이 군대 안에서의 위치도 위치지만 보급품(식량, 무기) 곧 돈이었다. 어찌 보면 일본의 자본주의는 풍신수길이 시작한 것이다.
그는 대대적으로 대판(오사까)를 새로 건설해서 전국의 모든 농산물과 공산물을 그 쪽으로 모았다. 전국의 상권을 하나로 통일한 것이다. 그 전에 풍신의 주군이었던 직전신장(오다 노부나가)이 상업의 토대는 어느 정도 닦았지만, 실질적으로 일본의 상권을 통일하고 심화 발전시킨 사람은 풍신수길이다.
그는 전쟁은 곧 무기요, 식량과 의복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전쟁은 곧 돈 싸움임을 알았던 귀재였다.
여기서 무기와 의복은 공업이 되고 식량은 농업이 된다. 이들을 모두 모아서 전국에 유통시키는 것은 상업이다. 상업이 없으면 공업도 농업도 모두 침체한다. 상업은 돈이다. 그는 상업 곧 돈을 장악함으로써 100년 이상 지속된 끔찍한 전쟁을 종식시키고 일본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전통 때문에 비록 신분은 제일 낮았지만, 풍신수길 이후 실질적으로 일본을 움직인 계층은 상업이었다. 상업이 발달하면 공업은 따라서 발달한다. 돈을 주고 만들어 달라면 무슨 물건이든지 다 만들 수 있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덕천가강(도꾸가와 이에야쓰)은 농업을 더 중시했지만, 일본의 상공업은 국내에서는 계속 발전했다.
이렇게 하여 상공업이 실질적으로 국민들 사이에서 전혀 천하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은 상공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서양의 산업화를 아주 쉽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니, 못 배워서 환장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서양으로 유학을 간 사람들이 과학 기술과 군사를 중심으로 실용적인 학문을 배워 와서 금방 산업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선비는 왜 이공계통의 학문을 않았을까]
반면에 한국은 조선초의 극히 짧았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그 후 약 600년간 사농공상에서 사(士)는 철저히 붓을 잡은 선비를 의미했고 이들은 상공업은 원수 보듯 깔보았다. 아니 그것을 인륜을 파괴하는 악의 근원으로 보았다. 그래서 한국인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유학을 가더라도 실용적인 과학, 기술, 군사를 배우는 게 아니라 거창한 국제 정치학, 외교학, 법학, 영문학 등을 배워 와서 국민들에게 아무 도움을 못 주었던 것이다.
이런 고급 신학문을 배웠다는 것이 본인에게는 한껏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켜 주는 수단이 되었고, 일반 국민에게는 여전히 그들을 나으리로 높이 우러러 봐야 할 명분이 되었다. 그들은 이 새로운 학문을 무기로 장기를 되살렸다. 정쟁만 일삼았던 것이다. 이공계통을 전공한 사람은 정말 드물었다.
[일본이 산업화에 일찍 눈 뜬 것은 문화 때문이다]
이렇게 일본 문화가 상공업을 중시했기 때문에 일본은 페리 제독이 슬쩍 라이터 불을 보여 준 정도에 지나지 않는데도, 순식간에 그 라이터를 전 일본열도에 나눠줘서 산업화의 불을 스스로 활활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위정자가 못나서, 우리 양반들이 썩어 빠져서 근대화를 못한 게 아니다. 그것은 겉모습일 따름이고 속내용은 동양 3국 중에 일본만이 게르만 문화와 유사한 문화를 가졌기 때문에 반발이라는 것이 거의 없이 일제히, 순식간에 산업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막부의 쇼군(장군)이 문호를 개방해서 산업화의 길을 연 일이 일본 근대사의 가장 큰 복이라고 하지만, 그런 결단을 내리게 된 이유는 그 사람이 조선의 왕보다 특별히 뛰어난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그는 물론 훌륭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일본열도 전체가 바라는 것을 뭔지 알았기 때문에, 민심을 알았기 때문에 깨끗이 기득권을 포기했던 것이다. 반대해 봤자 피만 뿌릴 뿐, 이미 막부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한두 해 빨리 하느냐, 마느냐 그 차이뿐이었다. 물론 막부가 약간의 저항은 했었지만, 이미 이빨 없는 호랑이가 되어 작은 지방의 반란도 제어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미 대세가 기울었던 것이다.
단지 그는 대세를 따랐을 뿐이다. 대세를 따를 만큼은 훌륭했다. 이것도 그가 장군이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강한 것을 선한 것'으로 여기는 군인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선이 산업화가 늦은 것도 문화 때문이다]
우리 나라는 한말에 설령 세종대왕이 새로 태어났다고 해도 산업화가 불가능했다고 본다. 아마 고종이나 대원군이 전격적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산업화한다고 했다면, 전국의 유생이 손에 손에 도끼를 들고 경복궁에 몰려 와서 거적때기 위에 꿇어앉자 궁전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을 것이다.
--전하, 차라리 내 목을 치소서.
(이 때 그들의 마음속은 부글부글 끓어서 궁전 아래 엎드린다는 전하(殿下)가 아니라 궁전 위에 올라가서 임금에게 호령한다는 전상(殿上)이었을 것이다.)
실학의 전통이 있었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참 과거를 미화해도 어쩌면 그렇게 미화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100년 후 박정희가 산업화하는데도 지식인들이 얼마나 극렬하게 반대했던가. 민주주의하면 저절로 산업화된다면서 말이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절대 없는 법이다. 지식인들은 기득권 곧 사(士)로서 상공업하는 사람을 하인 다루듯 다루면서 잘난 체할 수 있는 권력을 전혀 내놓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진정 그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했다면, 정치인, 고위 관료, 교수, 판사, 검사, 변호사, 언론인이 되지 말고 과감히 상공업에 뛰어 들어 공돌이가 되고 장돌뱅이가 되어야만 했다. 군인이 되고 경찰이 되고 운동 선수가 되고 음악가가 되고 미술가가 되어야 했다. 농부가 되어 농업을 과학화해야 했다. 그들의 의식에는 이런 모든 직업이 천하기 이를 데 없었다. 상놈이나 하고 종놈이나 할 일이었다. 그러한데 이런 일에 종사한 놈들이 자기보다 돈도 많이 벌고 권력도 더 갖고 명예도 더 얻게 되자 배알이 뒤틀렸던 것이다. 제일 쉽게 이들을 욕하는 게 바로 정경유착이었다. 정경유착이 아니면 초등학교도 안 나온 놈이 대기업을 줄줄이 일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맞지, 맞지. 정경유착이 있었지. 그러나 그것이 절대 다는 아니지. 그런 식으로 따지면 공산 국가가 전 세계를 주름잡아야지. 100% 정경 유착이니까. 아무리 뒤를 봐 주어도 성공한 제일 큰 요인은 사람이다. 개인의 능력이다. 아래 사람들의 힘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지도자의 능력이다.
그보다는 양반님네들의 계급 의식이다. 시샘이다. 깔보기다.
--감히 이병철이란 무식쟁이가(실은 와세다대학 출신), 정주영이란 상놈이, 구인회라는 종놈이! 말도 안 돼! 이건 말세야!
--감히 군바리가! 일본군 출신이, 독립군 때려잡던 일본군 출신이! 산지기 아들놈이! 빨갱이 짓하던 놈이! 감히 500년 선비의 철옹성을 총 몇 방으로 강탈해! 군바리가 어떻게 정치를 해! 경제를 해! 이건 말세야! 정말이지 이건, 세상이 뒤집어 져야 돼!
사고의 틀(패러다임)이라는 건 그렇게 바꾸기 힘든 것이다.
시대의 흐름으로 보아 산업화는 저절로 되었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도 조선시대 사농공상의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그들은 이미 우리 나라가 산업화를 넘어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었는데도, 여전히 농업 시대의 사고를 갖고 있다.
그들이 이해하는 산업화와 정보화는 관념의 유희일 뿐이다.
[중국이 동양 삼국 중에서 산업화가 가장 늦은 것은 중화 사상 때문이었다]
중국은 상무 정신과 장인 정신이 일본에 비해 별로 발달하지 않은 데다 결정적으로 중화사상 때문에 아시아에서 산업화가 가장 늦게 되었다. 오랑캐한테 배운다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우리 조상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와 달리 중국은 상공업을 그렇게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원래 실용적인 국민이었다. 성리학이 태동된 송에서조차 농업뿐만 아니라 상공업이 매우 발달해서 경제가 아주 윤택했다.
어찌 보면 중국 역대 왕조 중에 경제적으로는 가장 발달한 시기가 송 특히 남송 시대였다. 매년 요, 금, 몽골에게 엄청난 조공를 바치면서도 전혀 궁핍하지 않았다.
그만큼 상공업을 중시하는 실용적인 문화를 갖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런 전통을 가진 중국이 서양의 것이 매우 좋은 걸 알면서도 중화사상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못 배웠다. 이 점에서 그들은 좋다는 것 자체를 몰랐던 우리와 다르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중국과 홍콩, 자유중국, 싱가포르이다. 자유중국은 대륙에서 쫓겨난 후 상공업을 중시하는 자본주의를 하는데,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원래 실용적인 국민인데다 중화사상을 내세우고 서양을 배우지 않을 만큼 그들은 무슨 대단한 힘이 없었다. 오히려 빨리 근대화해서 경제와 군사에서 크게 힘을 길러 대륙을 다시 되찾자는 절박한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1965년 말레이시아가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화교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생긴 도시 국가가 싱가포르다. 이들이 무슨 중화사상 어쩌네 하면서 외국으로 안 배우려고 했을 리가 없다. 원래부터 장사를 너무 잘해서 말레이시아에서 쫓겨난 인종이었던 것이다.
홍콩은 중국의 한 점이었으나 영국의 지배에 들어가면서 중화 사상을 내세울 수 없었다. 사실 실용적인 중국인은 영국인이 시킬 필요도 없이 돈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했다. 어찌 보면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병폐인 범죄 집단까지 하나의 기업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중국의 무협 영화나 무협 소설은 사실은 홍콩과 자유중국의 범죄 집단(흑도)과 기업 집단(백도)간의 싸움을 칼과 장풍, 내공과 경공으로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무협 소설의 전설인 김용이 백도와 흑도를 선악 두 집단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백도 안에서도 못된 놈이 있고 흑도 안에도 착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홍콩과 자유 중국의 독자들은 열광했다. 현실 세계를 너무도 잘 묘사했기 때문이었다.
김용 얘기만 나오면 그들은 날 새는 줄 모른다.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중국인들이 어찌 보면 그 정도로 통이 크고 어찌 보면 극단적일 정도로 실용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범죄 집단도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실지로 홍콩이나 자유중국에는 삼합회라든지, 청련방이라든지, 홍련방이라든지 하여 범죄 기업 집단이 많다. 버젓이 기업을 한다. 이에 대해 국민도 별 저항이 없다. 이들은 국회에 의원까지 진출시킨다.
거물이 사망하면 사회의 저명 인사가 줄줄이 문상을 간다. 우리 나라 같으면 꼬투리가 잡혀 평생 고생할 일을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대북시 한 가운데로 시민들의 애도를 받으면서 호화롭기 짝이 없는 상여가 지나간다.
명분 문화인 한국인이 보기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이 정도로 그들은 명분과 실리를 구별하는 문화다. 어찌 보면 세계에서 자본주의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민족이 한족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륙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청말에는 나라가 어수선하여 도저히 대대적인 산업화를 시행할 수가 없었다. 모택동이 중국을 통일하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나라의 문을 닫은 일이다. '죽의 장막'을 친 것이다.
통일과 더불어 만주족과 서구 제국주의와 일분 제국주의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졌던 중화 사상을 되찾자, 자신만만하게 이제 자립 경제를 실현하여 서양 오랑캐와 왜적에게 한 수 가르쳐 주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땅이 크고 없는 게 없으니(地大物博) 자기들끼리 얼마든지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큰 소리 쳤던 것이다.
[모택동의 뒤뜰 용광로와 박정희의 포항 제철]
이 때 나온 정책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뒤뜰 용광로'이다.
10년 안에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국이 된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산업의 쌀인 철강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리면 선진국은 절로 된다고 믿었다. 영국을 따라잡기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뒤뜰 용광로'라는 게 뭐 대단한 게 아니라 고작 중국의 전통 기술에 의존한 '대장간'이었다.
장예모의 영화에 가끔 나오는 장면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코미디를 연출했던 것이다.
쇠붙이로 된 것은 다 녹여 쇳덩어리를 만들었다. 전국적인 토론을 거쳐 모택동 주석이 명령한 것이니 전 국민이 이 미친 일에 미친 듯이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는 솥이고 괭이고 호미고 숟가락이고 남아 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밥을 못해 먹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밥을 공동으로 해 먹었다. 이 장면은 영화 '햇빛 쏟아지던 날들'에 잘 나타나 있다.
한창 일할 나이의 청장년들이 그 일에 온통 매달렸다. 모두들 '애국 사업'을 했다. 힘을 내라고 브라스 밴드도 연신 흥을 돋구어 주었다.
들판에 곡식이 누렇게 익었지만, 그걸 거두어 들일 남자가 없었다. 들판에서 썩어 가는 것을 번연히 보면서도 남자들은 '애국 사업'하느라고 사소하게 가정을 돌볼 수 없었다. 곧 엄청난 아사자가 발생했다. 비공식적으로 무려 3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고 했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만 해도 잘 먹고 잘 살던 북한으로 도망을 갔었다. 지금은 그 사람들이 북한의 상권을 다 잡고 있다고 한다.
하여간에 이렇게 해서 만든 쇳덩이는 그야말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선철로 된 그냥 쇳덩어리였을 뿐이다. 오로지 거대하고 무거운 쓰레기를 만들기 위해서 수억의 중국인들이 헛고생을 한 것이다.
이 때 우리 나라는 자원도 기술도 자본도 없는 상태에서 전세계의 조롱을 받으면서, 국내 학자와 언론인들의 충심 어린 비판을 받으면서 포항 제철을 건설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건설된 포철은 기술도 오래지 않아 거의 100% 자립하여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종합 제철소가 되었다. 등소평이 한국의 산업 시설 중에서 포철을 제일 부러워한 것은 그들의 너무나도 쓰라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성공한 것은 앞선 나라에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배웠기 때문이다. 온갖 설움을 삼키면서 배우고 또 배웠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처럼 지도자의 확실한 비전과 기업 책임자의 솔선수범과 실무자들의 희생 정신과 창의력을 뭉치면, 상상을 초월한 성취를 이루는 놀라운 잠재력이 있다.
중국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앞선 외국을 앞섰다고 생각하지 않고 전통 기술에 의존하여 그들을 따라잡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매우 실용적인 중국이 그렇게 근대화에 늦게 동참한 이유는 이와 같이 중화사상이라는 교만 때문이었다.
중국은 '대약진 운동'과 '문화 혁명'을 통해 중화 사상이라는 명분은 근대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신과 같았으나 해외에 나가 보지 않아서 그런지 산업화에 대해서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모택동이 죽자 문제가 풀리기 시작했다.
프랑스 유학 경험이 있던 등소평이 마침내 개방하고 개혁하게 되었다. 그 후 불과 20여 년 만에 미국에만 무역 흑자를 1년에 500억 달러를 기록하는 등 중국은 지금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저 큰 중국도 안 되었는데, 북한같이 작은 나라가 어찌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잘 살기를 바라냐는 것이다.
안 된다는 것을 저들도 벌써 알았겠지만, 주체 사상이라는 명분에 사로잡혀 꼼짝 못하고 있다고 본다. 북한은 남한보다 수십 배 강한 명분 문화를 갖고 있다. 조선시대보다 더 심하다.
[일본 문화와 게르만 문화는 산업화와 궁합이 잘 맞았다]
일본이 게르만 문화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한 독일의 산업화 방식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 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두 국가 모두 후발 산업 국가라는 이유도 있지만, 두 나라 문화가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아시아인들 전체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역으로 우리 나라 사람을 비롯하여 아시아인 전체가 일본인에 대해 열등감을 가진다는 것은 좀 웃기는 말 같다.
산업화의 늦고 이름은 문화 차이였다. 이제 새로이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 또 달라진다. 우리 나라는 일본을 분명히 앞지르게 되어 있다. 일본 문화가 산업화에 딱 맞았듯이 한국 문화는 정보화 시대와 천생배필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이 글 뒷부분에서 다시 말하겠다.)
일본의 식자층이 한국이나 중국의 식자층보다 월등히 똑똑해서 산업화를 일제히 지지하여 곧장 선진국에 진입했던 게 아니다. 오히려 아는 것 자체는 우리 나라와 중국이 훨씬 많았다. 선비들이 평생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문화를 뛰어넘을 수 없는 사고 방식이었다.
일본 문화가 서양 문화와 닮아서 그 둘이 산업화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을 뿐이다. 기독교가 산업화의 원동력이라는 막스 베버의 설이 아직도 무슨 진리처럼 통하는데, 어림도 없는 말이다. 일본이 무슨 기독교와 관련이 있는가. 그런 게 아니다.
봉건제를 통해 상공업을 중시하는 장인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서양과 일본이 산업화에 앞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장인 문화가 없더라도 상공업을 중시하는 풍토만 성립되면 산업화는 가능한 것이다.
우리 나라와 중국, 동남 아시아가 뒤늦게나마 산업화에 성공한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상공업을 중시하게 되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아시아의 산업화를 유교 문화 덕분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언제는 유교 문화가 산업화의 걸림돌이라더니, 참 그분들 기억력 한 번 비상하다. 유교 문화는 농업의 이데올로기지 절대 상공업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절대 백인이나 일본인이 뛰어나서 산업 선진국이 된 게 아니다. 그들 문화에 상공업을 중시하는 장인 정신과 강한 것을 아름답게 여기는 상무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탁' 보고 '턱' 알아차린 건 일본의 식자층만이 그랬던 것이 아니다. 일본인이면 거의 누구나 '산업화의 의미'를 알아차렸던 것이다.
문화는 사고 방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사람치고 흑백론적 사고 방식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은 우리 나라 사람은 어느 누구도 우리 문화에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사람이 누구나 선악의 개념으로 사물이나 사람을 보는 것도 우리 나라 사람이 열등해서 그런 게 절대 아니다. 우리 나라 문화 때문에 그렇다.
[한국의 선악 이분법적 사고는 성리학의 소산]
요, 금,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전쟁 시대에 발달한 학문인 성리학은 힘으로는 안 되니까 명분론을 앞세워 자연스럽게 오랑캐는 흑(黑), 중화민족은 백(白)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를 개발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에 들어오면서 우리는 그 사상적 유래도 모르고 오직 문헌에 의지하여 곧이곧대로 주자를 신처럼 받들어 모시면서 도덕이란 이름으로, 윤리란 이름으로 선악 이분법적 사고 곧 흑백론을 500여 년 동안 심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싫든 좋든 이 흑백론에서 자유롭기가 힘든 것이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 N세대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흑백론이 뒷걸음치고 있다. 문화란 이렇게 끈질긴 것이다.
[한국 문화와 중국 문화]
한국 문화와 중국 문화도 엄청나게 다르다. 수천 년 중국 문화를 받아들여서 마치 한국 문화가 중국 문화의 아류인 양 세계에 널리 알려줘 있지만, 우리 나라 사람 중에서도 특히 지식인 중에 이런 사람이 아주 많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일본의 조선 강점으로 서양에서는 한국 문화를 일본 문화의 아류로 알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
한국 문화와 라틴 문화의 유사성이 한국 문화와 중국 문화의 유사성보다 더 눈에 두드러진다. 중국 문화와 게르만 문화의 차이점이 한국 문화와 중국 문화의 차이점보다 훨씬 적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 나라 사람들은 라틴 문화권의 사람들처럼 아주 낙천적이다. 감정적이다. 우리 나라 사람은 라틴족과는 금방 친해지지만, 일본인이나 중국인과는 흉금을 털어놓는 친구가 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문화 차이 때문이다.
[한국 문화는 라틴 문화와 유사하다]
우리나 라틴족은 둘 다 가무를 즐기는 문화를 가졌다. 그들에게 '삼바'와 '탱고'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사물놀이'와 '판소리'와 '노래방'이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우리 민족을 음주가무를 즐기는 족속이라고 했지 않은가. 이건 굉장한 문화적 의미가 있는 말이다.
중국인들의 눈에는 그게 문화 충격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무슨 저런 족속이 있을까.
전쟁은 그렇게 잘 하면서도 평시에는 모였다 하면 노래고 모였다 하면 춤이었던 것이다. 노래와 춤은 또 어찌나 씩씩하고 신나던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흥이 났던 것이다. 술도 어찌나 호쾌하게 마시던지.
[한국 문화는 감정을 중시하는 신바람 문화]
자기들 문화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두 문화는 전혀 별개였다. 모이면 시시하기 짝이 없는 말로 떠들기만 하는 중국인들과는 달리, 동이족은 영웅 이야기를 대서사시로 만들어 웅대한 곡에 붙여 노래로 부르고 영웅의 활약을 춤으로 췄던 것이다. (잘 안 믿기면 몽골 초원에 가 보라. 아직도 거기엔 이런 전통이 남아 있다고 하니까.)
기껏 서정적인 곡에 시시한 가사를 넣어 노래 부르면서 하느적하느적 춤추던 중국인과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지금도 이 전통은 그대로 이어져서 노랫말은 대통령 이하 높은 사람을 욕하거나 칭송하는 산문으로 바뀌었고
노래 곡조는 실컷 국가 대사를 논한 후에 뒤풀이로 고래고래 목이 쉬도록 부른다. 가사는 이미 말로 다했기 때문에 하나도 안 중요하다. 곡만 있으면 된다. 노랫말이 아무 관계없는 것이 무척이나 슬픈 내용인데도, 춤을 어찌나 그리 신나게 추는가를 보면 된다.
그렇지, 춤이 빠질 수가 없지. 그 옛날 칼춤을 추던 솜씨대로 한국인의 춤은 격렬하기 이를 데 없다. 때로는 말을 타고서 드넓은 초원에서 수천 명이 함께 추기도 했던 춤이다.
수십 만 평이나 되는 초원에서 춤을 추던 조상의 후예가 고작 10평 짜리 무대 위에서 춤을 추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이건 춤이 아니라 숫제 전쟁이다.
블루스도 췄다 하면 한국 사람만큼 화끈하게 추는 민족이 없다. 그러니 아줌마들이 몇 번 당기고 밀다가 이윽고 끌어안다 보면 금방 춤바람이 난다.
술도 마찬가지다. 폭탄주는 기본이고 2차, 3차, 4차, 5차 곤죽이 되도록 마신다. 호쾌하게 마시던 조상들의 그 실력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중국인은 절대 그렇지 않다. 높은 사람을 입에 올리는 일이 없다. --왕서방 개가 강아지를 여섯 마리를 낳았는데,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에는 네 마리 낳더니 두 번째는 다섯 마리 낳았다. 다음에는 일곱 마리 낳을 차례다. 누구한테 팔까. 한 마리 얻을 수는 없을까. 강아지가 크면 잡아 먹어야지. 개 요리는 각 지방마다 다른데, 내가 아는 요리법만 해도 5o가지나 된다. 어디 한 번 말해 볼까? 산동에 가면, 광동에 가면, 소림사 중놈들도 개고기를 먹는다고 .....
이런 따위의 얘기가 끝이 없다. 그러니 국가대사를 논하는 우리처럼 고함지르는 법은 없지만, 와글와글 시끌시끌 얼마나 시끄러운지 모른다.
술도 자기 주량 이상 절대 마시지 않는다. 13억 중국인 중에서 길거리에 술이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은 조선족밖에 없다. 그러다 돈 다 털리고 반죽음이 되도록 맞은 사람이 많다. 쥐도 새도 모르게 만두 속이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왜놈들이 우리 나라 지배를 합리화하고 영속하기 위해서 학자까지 동원하여 우리 문화를 '한(恨)'과 '애수(哀愁)'의 문화라고 비하한 것을 마치 우리 문화의 진수인 양 알고 있는 양반들이 아직도 있다고 한다. 이럴 땐 뭐라고 해야 되나? 멋진 코미디다.
[중국 문화와 게르만 문화는 실리-명분 문화]
게르만 문화와 중국 문화에서 가장 닮은 점은 '실리' 위주의 문화이다. 겉으로는 거창하게 '인권'이니 '사해동포'니 내세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장이다. 그걸 내세워 철저히 '실속'을 차리는 게 그들의 문화이다. (이를 실리-명분 문화라고 하겠다.) 반면에 일본은 다짜고짜 '실리'를 취하는 문화다.(이를 실리 문화라 하겠다.)
[한국 문화는 명분 문화]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철저한 '명분' 문화다. 이미 사태가 기울어 '손해'날 것이 뻔한데도, 자기 목숨을 잃게 되고 자기 가족을 다 죽이게 되고 나라가 망하게 되었는데도, 거창하게 내세운 '명분'은 절대 취소하지 못하는 게 우리 나라 문화이다. 가장 비극적인 희극이 저 유명한 병자호란이다. '대명사대(大明事大)를 내세우다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를 했던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군자(?)로서 의(義)를 중시했고 일본과 중국과 서양인은 소인(?)이어서 이(利)를 중시했던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 박정희가 산업화를 민주화보다 앞세웠으니 군자(?)인 지식인에게 그가 소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죽어도 용서 못할 악인(惡人)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빈국이었다고 하지만 그 당시에도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한 대부분의 지식인과 달리 눈앞의 이익, 곧 먹고사는 문제가 그 어떤 것보다 절박했던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는 구세주였던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가방 끈은 짧으나 슬기로운 서민(실리파)의 대부분은 박정희를 지지하고 가방만 클 뿐 남의 나라 이론만 잔뜩 외고 있는 지식인(명분파)의 다수는 박정희를 증오하여, 말싸움에서는 항상 지식인들이 이기지만, 박정희 팬은 그가 살았을 때나 죽었을 때나 거의 변함이 없다. 현역을 포함해서 역대 대통령 중 인기도는 압도적으로 1등일 뿐 아니라,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3위 안에 들어간다.
우리 문화가 얼마나 '독특'했는지, 임진왜란을 겪은 지 불과 한 세대 만에, 정묘호란을 겪은 지 겨우 9년 만에 배달 민족으로서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했던 것이다.
청나라나 명나라나 다 중국 '되놈' 나라라는
'실리'적인 사고를 그 당시 우리 조상은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설령 있다고 해도 성리학이 아닌 이론보다 실천을 중시하는 양명학을 공부한 극소수의 유학자뿐이었다.
그래도 후세 사가(史家)들은 공정하여 삼전도에서 머리를 조아린 그를 일러 바보 왕이라고 했다. 영국에는 John, the Fool(바보왕 존)이라고 했지만, 우리 조상들은 '어진', '마음씨 좋은'이란 인조(仁祖)라는 말을 썼다. 고려의 인종(仁宗)도 그냥 그런 시호를 받은 게 아니다.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인 기묘한 관계의 이자겸에게 휘둘려 왕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묘청이란 자까지 나타나서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허둥지둥했던 인간이었다.
물론 이 '仁'자는 '바보'란 뜻이다. 맹자가 예를 든 송양지인(宋襄之仁)의 '仁'자가 바로 '바보' 인자다. 우리 조상이 역시 문화 민족임에는 틀림없다. 학문 수준 자체는 아주 높아서 무식하게 '바보 왕(愚祖)'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걸 보면 요사이 우리 네티즌들은 이제 한국 문화보다 서양 문화에 더 친숙해진 듯하다. 어찌나 입들이 험하신지.
[왜 독일과 중국은 통일 전에도 교류하는데 우리는 못할까]
'명분' 문화와 '실리-명분' 문화가 대표적으로 잘 드러나는 게 남북한 관계와 중국-자유중국의 관계이다. 우리는 명분에 얽매여 (이 현상은 의식 구조가 거의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는 북한이 훨씬 심하다) 편지 한 장 주고받지 못한다.
서로가 민족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는 데 한 치의 양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김영삼 정권 이래로 우리가 손을 내밀어 해결의 기미가 많이 보이지 않느냐고 강변하고 싶겠지만, 7년이 지난 지금 도대체 조금이라도 나아진 게 있는가. 우리가 퍼 주고 욕 얻어 먹은 것밖에 없다. 많은 희망들을 갖고 있지만, 어림도 없는 말이다. 이건 명분 문화를 이해 못하면 죽어도 풀 수 없는 고등 수학이다.
명분 문화에서는 어느 한 쪽이 항복을 해야 문제가 풀리게 되어 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약자는 희망을 잃지 않고 끈질기게 버틴다. 병자호란을 다시 생각해 보라.
[명분 문화의 특징]
명분 문화에서는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면까지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확보한 한 쪽이 손을 내밀면 그 때는 화해를 할 수 있다. 어디를 봐도 허점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반칙왕에서 멍청한 송강호에게 그랬듯이 목조르기(head lock)를 걸어 꼼짝 못하게 해 놓은 후 슬슬 달래야 한다. 까불면 즉시 다시 헤드 락에 들어가야 한다.
단, 말을 듣기 시작하더라도 절대 인격적 모독을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조금만 숨을 돌리면 즉시 죽기 살기로 덤빈다. 인격적 모독을 당하게 되면 아무리 많이 줘도 더 이상 받지 않는다. 자존심 상하고 받느니 차라리 칵 죽어 버리는 게 우리 나라의 명분 문화다.
--대추 먹고 이빨 쑤신다.
우리 나라 사람은 실같이 가느다란 허점이 보여도 죽어도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덤비는 정말 집요한 민족이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북한이 경제는 한국한테 상대가 안 되지만, 군사는 한국과 주한 미군을 합해도 밀리지 않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자폭할 힘만 있어도 우리가 내민 손을 절대 잡지 않는다.
명분 문화에서 그것은 곧 항복이기 때문이다. 명분을 희생하고 실리만 취하는 짓은 죽으면 죽었지 한국인은 못한다. 절대 못한다. 낯간지러워 못한다.
[명분 문화를 이해해야 남북 문제가 풀린다]
경수로 건설, 금강산 관광, 식량 지원, 비료 지원 등을 보고 작은 물꼬를 텄다고 좋아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은 북한으로 봐서는 적을 항복시키고 챙긴 전리품일 뿐이다.
잠수정 침투시키고 대포 쏘고 원자탄 개발하고 미사일 발사하니까, 남조선 괴뢰 도당뿐만 아니라 미제국주의자도 벌벌 떨면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바리바리 갖다 바친 것으로 되어 있다.
안 받을까 봐 안달을 해서 성의가 하도 '괘씸해서' 마지못해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남조선과 미제국주의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화국'에 갖다 바친다는 건 전세계가 다 아는 사실로 되어 있다.
잘 지켜 보라. 김정일 정권은 민간인과의 교류는 철저히 차단한다. 민간인끼리의 교류가 없는 한, 햇볕 정책은 바보같이 일방적으로 빼앗기는 '죽을 꾀'에 지나지 않는다. 조조가 제갈공명한테 소나기같이 쏜 화살이 사람은 하나도 다치지 못하고 돛에 다 꽂혀서 그대로 다시 자기한테 날아간 것과 같은 '죽을 꾀'인 것이다.
김정일의 정권 다지기에 이용될 뿐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민간인끼리의 자유로운 교류를 허용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내민 손을 잡는 행위 곧 '화해의 물꼬'인 것이다.
[민간 교류가 없으면 화해가 아니다]
우리가 도와 준 것이 물꼬가 되려면 그 반대급부를 반드시 요구해서 받아내야 한다. 그 반대급부란 게 우리로 봐서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북한으로서는 엄청난 양보이다. 이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것이 바로 화해의 물꼬다. 이산 가족 면회소나 편지 주고받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절대 한꺼번에 될 리는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제3국에 면회소를 설치하는 것이 좋다.
편지 주고받기도 절대 한꺼번에 하려고 하면 안 된다. 판문점에 우체통을 설치해서 이산 가족 중 힘이 없는 노인들부터 이용하게 하는 게 좋다.
[중국과 자유중국의 민간 교류]
중국인들은 어떤가? 우리와 전혀 딴판이다. 아직까지 3불(不) 정책이라 하여 명분상으로는 교류, 접촉, 통신을 할 수 없지만, 등소평의 개방 개혁 정책으로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자, '실리'가 있다고 생각 들자 자유 중국 사람들은 마음대로 중국에 드나들면서 중국에 대대적으로 투자한다. 미국, 일본보다 투자를 많이 한다. 연 2백만 명 자유왕래에 연 2억통의 전화통화, 30만명의 대만인 중국거주, 총400억불의 투자(1999년 기준) 등이 현주소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명분상으로는 절대 자유중국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의 성(省)일 따름이다. 국가간의 교류 즉 외교는 허영하지 않는다. 형식적으로는 명분을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민간 교류는 얼마든지 허용한다. 실리-명분 문화이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한국, 자유 중국, 홍콩, 싱가포르를 아시아 신흥공업국이라 하는데, 전에는 닉스(NICS)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니스(NIES)라고 한다. New Industrializing Countries가 New Industrializing Economies로 바뀌었다. 중국의 입김 때문이다. 홍콩과 자유 중국이 국가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Economies라고 한다. 이것은 '경제권'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중국은 아주 명분을 중시한다. 그러면서도 이익이 있으면 이 명분을 그대로 둔 채로 제까닥 실리를 챙긴다. 서양과 똑같다. 미국을 보라.
인권을 엄청나게 내세우면서도 어디까지나 국가 이익과 관계될 때만 이것을 무기로 휘두른다. 쿠르드족에게 언제 관심이라도 두던가? 티베트의 인권에 대해 공식적으로 왈가왈부하던가? 김일성의 인권 탄압에는 한 마디도 않고 박정희의 인권 탄압에는 왜 그리 미국이 길길이 뛰었던가? 수백만이 죽이고 죽은 나이지리아 내전에 간섭하던가? 동티모르에 왜 호주가 제일 관심이 많을까?
이런 걸 이해 못하면 미국이 박정희를 그렇게 성토하다가 광주학살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을 지지한 이유를 영원히 이해 못한다. 그러면 죽어서도 미국에 대해 이를 북북 갈 수밖에 없다.
미국은 또 그러한 한국의 민주화 세력을 도무지 이해 못한다. 미국에게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하고 남의 나라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실리를 위한 명분일 뿐이다. 그러므로 만약 명분을 내세우다 실리를 잃을 것 같으면 언제든지 그 명분을 버리고 실리를 취한다. 미국이 나쁜 나라라서 그런 게 아니다. 그들의 문화가 그렇다. 이걸 이해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중국이나 서양에게 명분은 실리를 취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한국인에게는 명분이 정의를 실현하는 목적 그 자체인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카터의 인권과 김영삼·김대중의 인권은 그 개념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대륙에 간 자유중국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모택동'이 어떻고 '등소평'이 어떻고 '문화혁명'이 어떻고 '천안문 사태'가 어떻고, 하며 입을 가볍게 놀리지 않는다. 그러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 '명분'의 서슬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명분'의 틀에는 손도 안 대고 '실리'만 쏙 빼간다.
[한국과 북한 관계]
우리 나라 사람은 절대 그렇게 못한다. 입이 근질근질하다. 참다 참다 못해서 '김정일'이 어떻고 '김일성'이 어떻고 기어코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곤욕을 치르는 사람이 꼭 나온다. 우리 나라 사람치고 금강산 구경 갔다가 '금강산은 과연 천하절경이로구나'라는 느낌만 갖고 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거기 한 명도 안 보이지만, 독재 치하에서 굶어 죽어 가는 동포를 생각하며 다 속으로는 눈물을 흘린다. 김일성 부자에게 이가 빠질 정도로 이를 빡빡 간다. 안 그러면 그는 한국인이 아니다. 아마 미국에 입양된 사람일 것이다.
표현만 안 했을 뿐 다른 사람도 모두, 속에 있는 말을 슬쩍 내비쳤다가 십년 감수한 문영미와 같은 마음이다.
금강산 절경을 영원히 버려 놓은 큰 바위의 큰 글씨를 보고, '천출장군의 천출을 사전에서 찾으면 천출(賤出) 곧 천한 신분 출신이란 말밖에 안 나온다, 아마 천출(天出) 곧 하늘이 낸 뜻으로 쓴 모양인데 영 이상하다'라는 말을 했다가 혼난 한 공무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인은 절대 그렇지 않다. 모택동이나 등소평은 전혀 생각도 않는다.
--야, 동정호 아름답구나.
--야, 계림 좋구나.
--아, 저기가 적벽대전이 벌어졌던 곳이구나, 뭐 별로 안 크네.
--만리장성, 자금성 --역시 우리 중국 '살람' 위대해.
--중화민족 만세.
--중국 문화는 세계 제일일 수밖에 없어. 아, 자부심 느껴지네.
중국인들은 이처럼 철저히 소시민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 '실리'가 뭔지 안다.
누구나 '영웅'의 기개가 있는 우리 한국 사람은 절대 그렇게 쫀쫀한 생각을 하며 관광만 즐기지 못한다.
오늘날 탈북자가 수십만 명 떠도는 만주에서 이 '영웅'들의 정의감이 잘 나타난다. 생명과 인권만 보장해 주는 걸로는 도무지 만족 못한다. 틈만 나면 '김정일'을 물고 늘어진다. 배부르게 해 주는 '실리' 그건 눈에도 안 찬다. '김정일'을 욕하지 않고는 못 참는다.
속으로 끊임없이 욕하다가 주위를 둘러보고 안 잡혀 갈 것 같으면 속사포같이 욕을 해댄다. 그러다가 숨어서 보던 북한 안전원에게 잡혀 조금 과장하면 철사 줄에 코가 꿰어 북송된다. 철저한 '명분' 문화다.
이 점에서 소망 교회의 곽선희 목사, 옥수수 박사 김순권, 두레 마을의 김진홍 목사은 참 넉넉한 분들이다. 새 시대의 지도자들이다. 우리 문화의 단점을 뛰어넘은 대단한 분들이다.
이분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서양의 기독교 문화를 내면화시켰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들은 명분 문화의 병폐를 자기도 모르게 극복하고 속으로는 북한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절대 그런 허튼 말을 않고 철저하게 실리를 취할 줄 알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과는 달리 이들은 누구보다 김정일 정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걸 철저히 숨길 줄 안다.
우리의 명분 문화와 서양의 '실리-명분 문화'의 장점을 다 갖춘 것이다. (이를 '명분-실리' 문화라고 하자.) 그래서 이들이 미래 한국의 지도자 상이라는 말을 한 것이다.
명분 문화가 문제가 있다고 해서 이걸 그냥 버리고 서양 문화나 중국 문화를 곧이곧대로 모방한다면 이미 그 사람은 서양이나 중국의 문화적 식민지 주민으로 전락한 사람이다.
이처럼 명분 문화에서는 주는 것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개인들이 절대 그 사회에 들어가서 명분에 먹칠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바로 죽음이다. 개죽음이다.
[독일의 실리-명분 문화]
통일 전의 독일은 어떠했는가. 중국과 똑같았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서로가 인정하지 않았지만(명분), 서독과 동독은 1972년 브란트의 '동방 정책(Ostpolitik)' 이후 거의 제한 없이 민간 교류, 경제 교류를 했던 것이다(실리).
아니 그 이전부터 민간인 교류는 꾸준했다. 1964년 11월 동독각료이사회에서 연금수령자가 4주간 서독을 방문할 수 있게 허용함에 따라 매년 1백만 이상이 1인당 100마르크를 받고 서독을 방문했던 것이다. 1970년에 이르면 서독인의 동독 방문 265만 명, 동독인의 서독 방문이 105만 명이나 되었다. 그러다가 저 유명한 동방정책(Ostpolitik)이 동독의 손과 마주치는 1972년에 '통행조약'이 발효된 이후에는 연금생활자 이외의 동독인도 긴급한 사유가 있을 때는 서독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서독에서 동독을 방문하는 것은 그 이전부터 거의 자유로웠고. 마침내 통일 직전인 1988년에는 동독에서 서독 여행이 675만 명, 서독에서 동독 여행이 667만 명이나 되었다. 사실상 동서독은 민간인 입장에서 보면 1972년에 통일된 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실리-명분 문화인 것이다. 중국과 똑같다.
다만 베를린 장벽을 몰래 뛰어넘는 놈에게는 사정없이 총을 갈겼다. 명분은 아직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실리-명분 문화는 명분과 실리를 구분할 줄 아는 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필요하면 이 둘을 분리해서 따로따로 취하되, 실리를 우선하는 문화인 것이다.
(기껏 100명씩 금강산에서, 호텔에서 이산가족을 만나게 해 주고는 온갖 생색을 다 내는 북한과 비교해 보라. 그네들과 우리 문화는 판이하다. 명분 문화에서는 서로 평소에 이미 다 알고 있고 매일 마주쳐서 숨길 수 없는 사이가 아닌 한, 부끄러운 것이 있을 때는 절대 보여 주지 못한다. 그건 목숨을 내놓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실지로 그 날로 모든 것이 무너진다. 북한의 현실을 너무도 잘 알지만, 그것을 대외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 대문을 열고 보여 주지 않는다. 이산가족의 자유로운 만남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한국의 명분 문화는 명분과 실리를 분리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어떤가. 1972년 박정희 정권 시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했고, 1991년에는 노태우 정권의 북방 정책에 의해 역사적인 '남북 합의서'까지 서명했지만, 한 발짝도 더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같은 해에 간접적으로 서로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당당한 주권국으로 UN에 동시 가입까지 했지만 실질적으로 아무 변화가 없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김영삼 전대통령 이후 경수로 건설이다, 금강산 개발이다 뭐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민간 교류를 차단한 상태에서 행해지는 일이다. 그것을 무슨 역사적인 쾌거라고 하는 것은 10년 결산 코미디 MVP 감이다.
어디까지나 한국이 '조공'을 바치는 형식이다.
편지만 마음놓고 주고받을 수 있으면, 그게 금강산 관광이나 경수로 건설보다 100배는 나은 햇볕 정책이다.
왜 독일인도 하고 중국인도 하는데, 우리는 못하는가?
그것은 꼭 정치를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외교 정책을 잘못 써서 그런 것도 아니다. 물론 그런 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 주로 문화 차이 때문에 그런 것이다. 문제는 이 문화 차이를 연구하지 않고 서양의 정치 이론, 외교 이론을 그대로 흉내냈기 때문에 안 된 것이다.
[북한이 민간인 교류를 허용하지 못하는 속사정]
김정일 정권은 민간인들이 하다 못해 이산 가족들이 왜 편지 한 통 못 주고받게 할까. 비공식적으로 지극히 예외적으로 할 수밖에 없도록 할까.
그것은 명분 문화의 취약점 때문에 그렇다.
진실은 순식간에 밝혀지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명분 문화의 특징은 똑똑함과 평등함이다]
잠시 명분 문화의 특징에 대해 얘기해 보자.
명분 문화 속에 사는 사람은 명분에 대해 누구나 배워야 한다. 그래서 다들 '똑똑하다'. 서울역 노숙자들도 박정희, 김대중이, 김영삼이, 김종필이와는 오랜 친구 사이다. 이회창이와 이인제, 노무현이는 새로 사귄 친구다.
명분을 아는 사람은 명분을 모르는 사람과 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끼리는 마음속으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지위가 높을수록 자기와 비슷하다고 보고 그들에 대해 관심이 지대하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심리적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명분 문화의 특징은 '똑똑함'과 '평등함'이다.
[명분 사회에서의 똑똑함은 일반적인 것이지 전문적인 것이 아니다]
외국 사람이 한국 사람보고 놀라는 것은 어찌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리도 똑똑하냐는 것이다. 일자 무식자도 정치에 관한 말을 하면 정치학자 못지 않은 말이 술술 나온다. 또한 높은 사람들을 어찌 그리 잘 아느냐는 것이다. 장관과 국회의원은 막내 동생 친구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나 쩨쩨한 경제 이야기, 과학 이야기, 기술 이야기, 연주회 이야기, 전람회 이야기 등이 나오면 대범하게 입을 꾹 다문다. 친구 사이인 전직 대통령이나 여러 국회의원도 이런 쩨쩨한 것들은 잘 알지 못한다. 역시 친구끼리는 서로 닮는가 보다.
돈이 되는 주식, 부동산 이야기만 나오면 여기도 대단한 사람들이 즐비하다.
발언 차례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아, 또 있다. 기아, 삼성, 대우, 현대, SK, LG, 한보 이들의 회장들을 오랜 지기로 사귀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경제 문제도 굵직굵직한 노동법, IMF, 금융 개혁, 부채 비율 200% 맞추기, 실업 대책 등에 대해서는 한 번 입이 열렸다 하면 밤을 새운다.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조금이나마 꺼내려고 하면, 술을 5차까지는 가야 한다.
[명분 문화에서는 명분을 잃으면 누구든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다]
명분 문화에서는 일단 진실을 알게 되면 국민을 기만한 자는 순식간에 국민 마음속에는 개돼지가 된다. 그는 명분을 모르는 자이기 때문이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그가 명분을 잃었다 싶으면 그가 아무리 높아도 절대 자기 윗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발가락 사이의 때'일 뿐이다. 단지 힘이 없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기회만 와 봐라.
오로지 권력으로 명분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아랫사람을 누른 사람은 그 권력이 떨어지는 순간 '골목 강아지', '주막 강아지'가 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라도 사람들이 그가 내세운 명분이 사실은 허위라는 것을 알게 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어제 아침까지도 벌벌 기던 사람도 동조자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완전히 딴 사람이 된다.
[한국의 민주화는 왜 그리 격렬했을까]
우리 나라의 격렬한 민주화 운동을 생각해 보라.
12년 동안 학교에서 아무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가르쳐도 MT 가서 선배들에게 사흘만 '진실'에 대해서 배우게 되면, 당장 화염병을 들고 길거리로 뛰쳐나간다.
'진실'이라는 명분을 얻는 순간 아무리 부모가 말려도 듣지 않는다. 가정은 국가가 있고 난 다음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살 꽃다운 나이로 참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기꺼이 '분신 자살'을 한다.
--민주주의 만세! 민주주의여, 영원하라!
부모님,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
그 다음에는 그 부모 차례다. 독재자에게 감연히 맞서 싸운다.
--내 아들아, 장하다. 종철아, 장하다. 한열아, 장하다.
네가 못다 이룬 꿈 이 아비, 어미가 이뤄 주겠다.
우리 천국에서 웃으며 만나자.
그 때 꼭 부둥켜안고 실컷 울자꾸나.
독재자, 물러가라!
정부가 '산업화'라는 '실리'를 아무리 안겨 주어도 '민주화'라는 '명분'이 약하면 국민은 노도와 같이 일어난다. 힘의 누수가 조금만 보이면 벌떼같이 일어난다. 정말 무서운 민족이다.
[김정일은 국민이 진실을 아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이걸 김정일 정권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국민을 극심하게 탄압하는 것은 '국민이 너무 무섭기 때문에' 그런 거다. 주체사상이라는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진 '명분'이 사실은 다 말짱 헛것임을 국민들이 모두 알게 되는 순간 내일 당장 굶어 죽을지라도, 당장 총살을 당할지라도 일제히 일어나게 되어 있다.
60년 동안 아무리 세뇌를 해도 한국인에겐 안 통한다. 단 하루면 깨닫는다. 한국인은 이렇게 머리가 좋은 것이다.
[김정일은 한국, 일본, 러시아, 중국, 미국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김정일 정권은 바로 이것이 두렵다.
명분 문화의 이런 폭발적인 취약성 때문에 그는 발가락 하나 꼼짝달싹할 힘만 있어도 절대 민간인끼리의 교류를 허용하지 않는다. 도망 간 놈은 악착같이 따라가 잡아와서 족친다. 남의 나라 법도 조금도 겁내지 않는다.
조선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것이다. 피죽도 못 먹어 숨이 넘어 가는 사람도 그가 조선 사람이면 마주 보기가 두려운 것이다. 조금도 틈을 주지 않고 하늘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잡아와야 할 이유가 바로 거기 있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이 제일 두려워하는 상대는 절대 미국이나 한국이 아니다. 중국도 러시아도 일본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무리 그들의 군사력이 강하고 경제력이 대단하다 해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상대는 바로 아무 힘없고 시키는 대로 하는 저 북한 인민이다. 김일성 동상 앞에서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눈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저 조선 인민들이다. 이들을 호랑이보다 더 무서워한다.
[북한 주민이 개방을 통해 진실을 아는 순간 북한 정권은 무너진다]
주체사상이라는 '명분'이 '엉터리'임을 인민들이 일시에 알게 되는 순간,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김일성 부자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조직이고 뭐고 필요 없는 것이다. 60년 동안 속았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북한 전체는 아수라장이 된다는 것을 김정일 정권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다른 나라 사람이야 외국에 숨으면 되지만, 한국인은 악착같이 물귀신처럼 제 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수백 수천 명이 저승사자로 줄줄이 찾아간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두렵다. 갈 데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김정일 정권은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9회말 역전 홈런을 노리고 호시탐탐 전쟁의 기회를 노릴 게 틀림없다.
명분 문화를 이해하면 이걸 짐작하는 게 과히 어렵지 않다. 아마 내 글을 읽는 순간 김정일은 혼비백산할 것이다.
[주체 사상의 허구성은 김일성 부자가 제일 잘 안다]
주체 사상이 허위라는 것을 김일성 부자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만약 그것이 '진짜'라면 북한은 옛날에 개방을 해서 아무 정보나 다 북한으로 들어가게 했을 것이다. 진실은 허위가 아무리 인해전술을 써서 밀려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이 햇빛이라면 허위는 안개인 것이다.
런던의 안개가 제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나폴리의 햇빛한테는 꼼짝 못하는 법이다.
[명분에 대한 끝없는 집착]
한국인이 마음속으로 명분을 잃었다 싶으면 그를 얼마나 증오하는지는, 옛날에 박정희를 그렇게 욕하던 미국의 TIME 지가 1998년 8월에 20세기 아시아 위인 20인 중 한 사람으로
그를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손꼽았지만,
코방귀도 안 뀌고 지금도 이를 부득부득 갈다가 잠을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박정희에게는 민주주의라는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끈질김은 장기수에게도 잘 나타난다. 죽으면 죽었지 공산주의라는 명분을 버리지 않는다. 공산주의가 좋다는 생각을 했으면 그건 바로 그의 종교가 된다. 30년, 40년, 50년을 독방에서 살아도 종교가 변할 리 없다.
이게 바로 명분 문화다.
만약 남북의 민간인들이 전면적으로 편지를 마음대로 주고받기만 해도 우리 나라는 1년은커녕 한 달도 못 되어 통일되어 버릴 수 있다.
'명분'이 엉터리라는 진실을 알게 되면 하루아침에 뒤집어엎어 버리는 게 우리 나라의 민족성이다. 바꾸기까지는 무척 힘들지만, 일단 '임계치'에 도달하면 화산이 폭발하듯이 천지개벽을 시키는 민족이 바로 한민족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갑갑하다면서 그렇게도 안 쓰던 안전띠를 한국인들은 어느 순간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질 즈음해서 단속을 강화하자 거짓말같이 운전자들이 안전띠를 착용했었다.
쓰레기 분리 수거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적 공감대가 성립되자 사람들이 일시에 쓰레기를 분리 수거했던 것이다.
[한국의 지도자들도 무의식적으로 국민을 매우 두려워한다]
북한의 김정일만이 아니라 우리 지도자들도 사실은 국민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 마음이 일제히 돌아서는 순간 누구도 못 말린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것이 거짓이든 참이든 명분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그 명분에 매달린다. 그들의 명분을 자기 지지자들조차 안 믿게 되는 순간을 그들은 제일 두려워한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에 적극 동조하는 사람이 많은 한 아무리 반대자가 격렬하게 반대하더라도 그들은 당당하다. 그러나 자기들의 명분에 동조하는 사람이 없어지는 순간, 그들의 정치 생명이 끝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명분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매달리는 것이다. 국민이 두렵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더 명분에 매달리고 권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지식인이 빨리 명분 문화의 잠에서 깨어나 일반 국민들의 실리 문화를 배워야 한다]
이제 지식인들이 명분 문화의 잠에서 깨어나는 일만 남았다. 일반 국민들은 이미 저 멀리 앞장 서 있다. 일본이 개항을 하면서 지배층인 무사들이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새 시대에 순응하여 국민들이 충심으로 따르는 새로운 지배층으로 거듭났듯이
우리 지식인들도 일반 국민을 지도한다는
그 '정신적 기득권'을 깨끗이 포기하고 이미 자기들보다 앞서 가고 있는 국민들을 어서 뒤쫓아가야 한다.
실리 문화의 장점을 빨리 배워야 한다. 이것을 명분 문화에 접목시켜야 한다. 사농공상은 모두 평등한 산업임을 빨리 인정하고 농업, 상업, 공업에 최고의 두뇌들이 골고루 진출해서 겸손하게 먼저 일반 국민과 농민과 노동자와 장사꾼에게 배워야 한다.
그러면 그 똑똑한 머리로 서로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힘을 합해 일하느라고 밤낮을 잊게 될 것이고
모두가 '평등하게' 세계 모든 사람이 부러워 할 정도로 화목하게 잘 살게 될 것이다. 평등은 절대 강제적인 법과 제도로 오지 않는다. 그것도 필요하지만, 다시 그것은 또 다른 갈등을 가져온다.
공산국가들의 강압적인 무조건적 평등이 이전보다 더 심한 불평등을 가져오고 모든 사람이 무기력하고 수동적이고 멍청하고 재미없는 삶을 살게 하지 않았는가.
[평등은 정신적 기득권자인 지식인이 그 기득권을 포기해야 비로소 갈등 없이 실현된다]
평등은 기득권자가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잘난 척하지 않는 데서 온다. 우리의 지식인이 군사와 상업과 공업과 농업과 예체능을 무시하는 한 그들은 여전히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된다.
이런 분야를 평등하게 대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자기가 최고 계층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은근한 협박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지식인은 조선 500년 동안 확고부동했던 그 기득권과 그 후 다시 100년 동안 누려 오던 정신적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조선 500년의 침체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 시대에 대해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
그 모든 고통은 지식인들이 만든 '명분' 문화 때문임을 깨달아야 한다. 군인과 상공인을 천시한 데서 온 불행임을 이제라도 반성해야 한다.
더 이상 지식인이 학문과 권력과 토지와 명예와 미인을 모두 차지했던 향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젠 일반 국민들이 더 이상 그 정신적 기득권마저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모두 똑똑해지고 있다는 것을 빨리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과 관료뿐 아니라 교수와 언론인도 무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말'뿐임을 알게 된 것이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고 하는 것은 두 번째 문제다. 이런 정신적인 봉건 사상에 젖어 있는 한 그들은 절대 정보화 시대에 적응할 수 없다.
이제는 지식과 정보를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지식인이라는 계층이 따로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더 이상 명문대 출신, 유학 출신, 박사, 교수, 언론인 등을 지식인이라고 대접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빨리 지식인들이 새 시대의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과거의 지식만으로는 이제 더 이상 지식인이 될 수 없다.
[정보화 시대는 한국 문화와 찰떡궁합이다]
정보화 시대는 바로 한국인의 시대다. 똑똑함과 평등함이 정보화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정보화 시대가 다가오면서 상공업과 군사, 예체능에 대한 천시 사상이 우리 지식인들 사이에서 급격히 없어진다. 명분 못지 않게 실리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드디어 과학, 기술, 군사, 음악, 미술, 체육, 상업, 공업, 농업도 법학, 정치학, 의학과 같이 중요한 분야라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인재가 본격적으로 골고루 흘러 들어갈 날이 머지 않았다.
벤처 산업이 한국인의 명분 문화와 일본의 실리 문화, 중국과 서구의 실리-명분 문화를 동시에 충족시켜 주면서 이미 거센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새로 태어나는 한국 고유의 명분-실리 문화는 정보화와 천생배필이다. 찰떡궁합이다.
코스닥이 뜨자,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 있는 벤처 산업이 각광을 받으면서 더 이상 상공업을 천시하지 않게 되었다. 같은 상공업이라도 벤처 기업은 땀 질질 흘리는 전통 제조업이 주는 천한 직업 이미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돈은 되어도 명예를 줄 수 없었던 제조업과 상업이 아니라 돈도 되고(실리) 명예도 얻을 수 있는(명분) 직업이 바로 정보 산업이요, 생명공학 산업이요, 금융업이다. 머잖아 재래식 제조업들마저 정보 기술(IT)과 결합하면 이 쪽도 천한 직업이란 느낌을 안 줄 것이다.
권력 문제도 해결된다.
우리 나라의 양반들은 과거 시험을 통해 권력과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었다. 그 짜릿한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몽매에도 잊지 못한다.
다른 문화에서는 이 셋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서양과 일본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것은 장인 정신에 의해 각자가 자기의 분수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명분 문화에 의해 자기 분수를 모른다.
재벌이 되어도 회고록을 잘 지어내서 명예를 얻으려 하고 정계에 진출하려고 한다. 돈으로는 해결 안 되는 것이다. 명예와 권력도 가져야 한다. 그러다가 비참한 인간이 된다.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이 되어도 돈을 수천 억 받아 먹고 자기가 무슨 무결점의 인간인 양, 온 매스컴을 동원하여 대통령 찬가를 부르게 한다. 외국에서 명예 박사 학위 하나 주면 좋아서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학자도 마찬가지다. 학자라는 명예만으로는 절대 만족 못한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곡학아세하여 권력의 한 자락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이 셋을 다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한국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는 지식이 분산됨으로써 권력도 분산된다. 똑똑한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에 권력을 독과점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다. 지식을 가진 사람은 모두가 권력에 참여한다.
정보화 시대에 앞장선 사람은 마침내 조선의 양반들이 한 손에 움켜 쥐었던 부와 명예와 권력을 다 얻을 수 있다.
분수를 모르는 한국인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단연 선두에 서게 되어 있다. 분수를 모르는 것이 오히려 복이 되는 시대인 것이다.
정보화 시대는 감성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제는 감성을 만족시켜 주는 물건이 아니면 안 팔린다. 이성적으로 보아 아무리 품질이 우수해도 감성적인 차원에서 아름답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시대다. 인터넷도 콘텐츠(contents)가 아무리 알차도 디자인이 시원찮으면 네티즌들이 순식간에 클릭 아웃(click out)한다.
어디서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렇다고 품질이 무시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은 넘어야 한다. 다만 이제는 상품으로 말하면 품질보다 디자인의 부가 가치가 훨씬 높아진다는 말이다.
물론 예술품 자체도 가치가 아주 높아진다. 진기하고 아름다운 것은 모두 예술품이 된다. 대중 예술이든 본격 예술이든 예술가의 주가가 끝없이 치솟는다.
지금은 비록 우리 나라가 자유중국보다 디자인 수준이 떨어지지만 전국적으로 해마다 3만 명씩 쏟아져 나오는 디자인 전공자들이 프로 의식을 갖게 되면, 우리 나라가 디자인 왕국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우리 민족은 감성이 누구보다 발달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기분파가 아닌가. 이것이 장점인 시대가 온 것이다. 예술적 감성을 마음껏 펼칠 시대가 온 것이다.
정보화 시대는 직관의 시대이기도 하다. 생각들이 요모조모 따져서 떠오르면 이미 늦다. 이성은 늦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진실을 순식간에 깨닫는 데는 모두들 도사가 아닌가. 직관이 엄청나게 발달한 민족이다. 그런 문화 속에서 살았다.
이 직관을 머리로 하고 이성을 팔다리로 이용해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고 치밀한 계획과 시의적절한 시작과 주도면밀한 과정을 거치면, 일은 잘 되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하면 한국은 유태인을 분명 능가하게 되어 있다. 직관만 중시하면 허점이 너무 많지만, 이성을 그 부하로 부리게 되면 완벽을 기할 수 있다.
직관과 이성의 결합, 이것이 바로 한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바로 직관과 이성을 다 갖춘 분이셨다. 한 눈에 모든 상황을 알아보되 준비는 단 한치의 소홀함도 허용하지 않으셨다. 왜적을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얕본 일도 절대 없었다. 두려워하지 않음은 직관이요, 얕보지 않음은 이성이다. 누가 그런 분을 당하랴! 이건 한국인이 아니면 참 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한 그분은 다정다감했다. 12척밖에 안 남은 전선에 필요한 군사와 군량미를 구하려 이미 적지로 변한 호남 지방을 구석구석 다니면서 말을 타고 가다가 촌로가 쌀 한 줌이라도 주면 즉시 말에서 내려 손을 잡고 마냥 우신 분이었다.
직관과 이성과 감성을 모두 갖춘 분이셨다.
서울대 경제학과의 송병락 교수도 이순신 장군이 우리의 군사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에도 완벽한 지도자 상이라고 극찬했다.
정보화 시대는 놀이의 시대이기도 하다. 모든 게 오락이 된다. 노는 것 하면 우리 한민족 아닌가.
정보화 시대는 정보 공유화 시대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 사람은 적대적일 때는 상종도 않지만, 내 편이라는 판단만 서면 간이라도 빼주고 쓸개라도 뚝 떼어준다. 우리 정치가 언제까지나 저러진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아직 제대로 된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아웅다웅 하는 게 아니라,
모두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틀림없이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이, 세종대왕 같은 분이 홀연히 나타날 것이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평등 의식이 강한 국민을 무서워 할 줄 모르고 제 잘난 맛에 사는 현 위정자들은 머잖아 공멸하리라고 본다.
여야가 따로 없을 것이다. 그 후에 국민의 높은 기대에 합당한 새 지도자가 나오고 그와 같이 일할 새로운 집단이 나타날 것이다.
이전에 위정자였던 사람도 이제는 정보화 시대에 맞게 새로 태어나야만 국민들이 위정자로 인정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새로운 정보화 시대의 지도자들은 우리 국민과 한 마음이 될 것이다. 모두들 한 편이 되어 마음을 활짝 열고 서로 가르쳐 주고 배우려고 야단날 것이다.
정보화 시대는 속도의 시대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은 얼마나 성질들이 급한가. 식당에서 1분도 못 기다려 그 짠 깍두기도 다 먹어 치우는 민족이다. 세계 어느 민족이 우리의 속도를 따라올까?
정보화 시대는 창의력의 시대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은 얼마나 잘 난 척하나. 풀어 놓기만 하면 제 멋대로인 것이다.
정말 말 안 듣는다. 이것은 잠재적인 창의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반증이다. 대상만 제대로 찾으면 무섭게 파고드는 민족이다.
아이디어 백출한다. 전현직 대통령을 욕하거나 칭찬할 그 에너지로 제품 개발하거나 전세계를 누비며 물건 판다고 생각해 보라. 무엇을 못하겠나.
메디슨의 이민화 사장 말처럼 우리 민족은 여건만 갖추어 주면, 신바람나게 해 주면, 최대한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면, 선진국의 10분의 1의 돈으로 2배의 효과를 올린다고 했다. 20배의 잠재력이 있는 민족이다. 본인이 직접 제품 개발과 마케팅까지 다 해 보고 하는 말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모토롤라 본사는 한국 지사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어필 텔레콤을 이끌던 이가형 사장 이하의 연구진들이 자기들보다 20배 이상의 효율성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미래 지도자 상]
이순신 장군 이래 현대에 와서 드디어 한국인의 미래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나타났다.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이병철, 최종현, 김우중, 정인욱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훌륭한 점이 있지만, 한국인의 높은 기준에는 한두 개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빌 게이츠도, 마가렛 대처도, 등소평도, 이광요도, 넬슨 만델라도, 마하트마 간디도, 앨버트 아인슈타인도, 존 폰 노이만도 우리 나라 사람들의 높은 기대에는 못 미친다.
직관과 이성과 감성과 도덕을 빠짐없이 갖추고 어떤 직업도 천시하지 않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부와 명예에 초연하나 부와 명예가 그들을 뒤쫓아가는 분들이 드디어 나타났다.
이들은 끊임없이 배우며 작은 실패를 딛고 화려한 성공 신화를 창조해서 무수한 사람들에게 부와 명예와 성취감을 한아름씩 가득가득 안겨 준다. 다산 정약용도 훌륭한 지도자 상이나 이런 성공 신화가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성공 신화 하면 이순신 장군이다. 누구도 견줄 수 없다.
이순신 장군과 같이 전투에 나서면 아군은 거의 피해가 없었다. 다들 멀쩡했다. 대신
그 이전에는 천하무적으로 통하던 적군도 일방적으로 두들겨 부수었다. 그 이유는
비전이었다.
정보였다.
작전이었다.
훈련이었다.
무엇보다 이순신 장군은 탁월한 직관력으로 필승의 비전을 보여 주었다. 이어 어부, 포로, 나무꾼, 농부, 해류, 해안, 조류, 날짜, 날씨, 지형 등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적을 손바닥에 올려다 놓고 볼 수 있게 완벽하게 '정보'를 수집했다.
다음으로 장수, 장교들뿐 아니라 필요한 군졸들까지 난상 토론을 시켜 거기서 얻은 지혜를 종합하여 정확한 판단으로 한치의 오차 없이 치밀하게 '작전'을 세웠다. 자연히 모든 군사가 작전을 숙지했다.
또한 평소의 힘든 훈련을 통해 전 군대가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마침내 전투에 돌입하면
아군의 '장점'으로 적의 '약점'을 쳤다. 아군의 약점은 전혀 보여 주지 않았다.
이건 모두 우리가 아주 익숙한 것들이다. 그렇다.
바로 정보화 시대의 기업 경영이다.
16세기 후반에 20세기 후반의 전법을 썼던 것이다.
손가락으로 더하기 빼기하는 적을 슈퍼 컴퓨터로 상대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리 불리한 상황에서도 아랫사람들이 잠재력을 최고도로 발휘하도록 하여 싸움마다 '퍼펙트(perfect)' 승리를 했다.
우리 민초들에게 무한한 성취감을 맛보게 했던 것이다. 축구나 야구 경기로 비유하면 100전 100승했는데, 99번을 10:0으로 이기고 딱 한 번 10:1로 이겼다. 그 1점도 자살골 내지 투수 폭투였다.
(935척의 적선을 깨뜨리고 단 한 척의 아군 전선을 좌초시켰다.)
돌멩이 들고 양민을 학살하며 기고만장하던 놈들한테 M-16으로 갈긴 격이다.
이순신 장군은 전란 중에도 농사를 짓게 하고 소금을 만들게 해서 호남 사람들은 거의 배고픔을 모르게 했다.
다산 정약용은 뛰어난 경륜을 갖고 명분과 실리를 함께 갖추었지만, 이런 성공 신화를 만들지 못했다.
그런데 영원히 나타날 것 같지 않더니만, 드디어 이순신 장군 이후 처음으로 민초들이 간절히 바라던 한국의 지도자들이 우르르 나타난 것이다!
13년 동안 KIST 소장과 과기처 장관을 역임하면서 세계 100위 근방을 헤매던 한국의 기술 수준을 일약 세계 30위권으로 끌어 올린
최형섭 박사,
기술을 최우선으로 하고 청소부 아줌마까지 인간적인 대우를 해 주고 회사원 전원에게 주식을 나눠 주어 그들을 억대 부자로 만들어준 벤처 기업의 대부이신 미래 산업의
정문술 사장,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려다가 정보화 시대에 이 정보화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인간들의 삐뚤어진 마음을 치료하고 있는
안철수 박사,
정보통신부(구 체신부)에서 8년간 장차관을 역임하면서 '산업화는 뒤졌어도 정보화는 앞서자'란 말을 국민 누구나 한 마디 할 수 있도록 우리 나라의 정보통신에 혁명의 씨앗을 쫙 깔아 놓은 오명 현 동아일보 사장.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잘 살아 갈 수 있게 해주는 기아 해방자 옥수수 박사 김순권.
(제일 동포 3세로 세계 인터넷을 뒤흔들고 있는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도 여기에 넣을 수도 있는데 국내 지도자와는 다른 점이 더러 있다.)
이들이 바로 이순신 장군 이후 한국의 민초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한국의 지도자 상이다.
[미래 한국 지도자상의 10대 특징]
이들은 첫째, 도덕적으로 흠이 없다. 개인의 도덕성은 잘 알 수 없다고 해도 각기 하는 일에서 손가락 짓 받을 일은 절대 안 한다. 이전의 재벌이나 관료나 학자들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회사 문을 닫거나 하던 일을 그만 둘 사람들이다. 명분 문화를 최대한 만족시킨다.
둘째, 직업 천시 사상이 없다. 오히려 기술을 가장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실리 문화를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환영한다.
셋째, 유능하다. 아주 똑똑하다. 한국에선 제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어도 무능하고 멍청하면 존경을 받지 못하는 나라다. 이것도 명분 문화의 소산이다. 이들은 이 조건도 만족시킨다.
넷째, 이들은 돈에 무관심하다. 돈을 벌려면 천문학적으로 벌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정작 본인은 돈에 무관심하다. 본인과 가족을 위해서 사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최형섭 박사는 장관이 된 뒤에도 집이 없어서 KIST의 사택에서 살았다. KIST의 소장과는 아무래도 머쓱했다. 이를 안 박정희 대통령이 집을 한 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장관직을 물러나며 그걸 다시 국가에 헌납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깨끗하게 번 돈으로 우아하게 사치하는 정도는 국민이 모두 용납하리라. 이제 국민도 웬만큼 살게 되어 마음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다섯째, 이들은 겸손하다. 어떤 사람도 무시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은 철저한 명분 문화의 영향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평등 의식이 강한 민족이다. 아무리 못 살고 못 배우고 힘이 없어도 무시당하는 것만은 참지 못한다.
이들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일을 잘못하는 것도 용서하지 않지만, 인간을 무시하는 일은 없다. 존경받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의 공통점이 자기 아랫사람의 술 안주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좀 적나라한 말을 쓰면, 아랫사람에게 씹힐 일을 않는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랫사람에게 씹히지 않으면 일단 훌륭한 사람으로 보면 틀림없다. 이들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여섯째, 이들은 정직하다. 자기가 신이 아님을 솔직히 고백한다.
얼마 전에 안철수 컴퓨터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공개한 프로그램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그러자 안철수는 즉시 공개 사과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정직한 사람이다.
명분 문화의 큰 병폐 중의 하나가 위선인데, 이들에게는 그것이 없다. 그러므로 회사든 일이든 유리알같이 드러낸다. 잘잘못을 그대로 밝힌다. 잘못은 즉시 인정하고 시정한다. 계속 발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일곱째, 이들은 일하는 사람들이다. 잠은 언제 자는지 일에 파묻혀 산다. 그 아래 있는 사람도 모두 그렇다. 그러면서도 항상 얼굴 표정이 밝고 건강하다. 이들의 얼굴은 보기만 해도 즐겁다. 어떤 미남 미녀도 이들 얼굴보다 행복감을 주는 사람이 없다.
명분 문화의 가장 큰 병폐가 싸우는 일이다. 일은 하지 않고 매일 싸우기만 한다.
경제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눠 먹을 사람 곧 양반은 자꾸 많아지는데, 토지는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 토지를 개간하거나 농법을 개선하여 소출을 더 내게 하거나 상공업을 장려하여 먹을 떡을 자꾸 키우면 될 건데, 그건 천한 일이라서 못하고 얼마 안 되는 그 토지를 서로 갈라 먹으려고 죽기 살기로 싸웠던 것이다. 명분이야 그럴 듯하지만 속셈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이 지도자들은 다르다. 싸우지 않는다. 일한다. 싸울 시간에 일해서 떡을 자꾸만 키운다. 그렇게 키운 떡을 골고루 나눠 준다. 같이 일하던 사람은 신이 나서 더욱 열심히 일한다.
여덟째, 이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명분 문화의 큰 병폐 중의 하나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단점을 극복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어난다. 명분 문화에서 상대방에 이기기 위해 수백 년을 두고 물고 늘어지는 그 집요함을 긍정적으로 살려 이들은 아무리 실패해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벌떡벌떡 일어난다.
아홉째, 이들은 열린 사람이다. 누구에게든지 배우려 하고 자기가 아는 것은 기꺼이 알려 주어 정보를 공유하려 한다. 자연히 권위적이지 않다. 권위적인 명분 문화의 병폐를 극복했다는 말이다.
안철수 박사가 대표적인 예다. 애써 개발한 것을 인터넷에 띄워 버린다. 필요하다면 누구든지 공짜로 가져가라는 말이다. 다만 공공 기관이나 먹고 살 만한 기업은 돈을 주고 사 가라고 한다. 이를 알고 헤커들도 안철수는 건들지 말자고 한단다. 건드는 사람은 왕따 당한단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비전이 있다. 하나같이 뛰어난 직관력을 갖고서 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훤히 내다보는 눈이 있다.
비전이란 '타임 머신을 타고 미래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다.
이들의 비전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허황되게 보이지만, 이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타임 머신이 있어서 미래는 현재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손정의는 창사 첫날, 사과 궤짝 위에 올라서서 다 합해야 단 둘뿐인 사원 앞에서 몇 시간이고 열변을 토했다. 매출 1조 엔의 회사를 만들겠다는 '천기'를 누설했다. 사원들은 꾸벅꾸벅 졸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비전을 제시했다.
그 두 사원은 오래지 않아 도망가 버렸지만(한국 사람이었으면 끝까지 남았을 것이다), 그는 결국 자기가 본 비전을 실현했다. 아니 그 이상을 실현했다. 그 후 20년도 안 되어 그는 개인 재산만도 1조 엔이 훨씬 넘는 세계 4위의 거부가 되었다.
한국인에게는 이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뛰어난 직관력을 발휘하여 허황될 정도로 큰 비전을 제시한 다음에 날카로운 이성을 동원하여 한 치도 오차 없이 정신없이 몰아붙이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꿈이 클수록 좋다.
작은 꿈으로는 한국인을 움직이지 못한다.
쫀쫀한 꿈을 보여 주면 한국인은 먼 산을 바라보며 딴 짓을 한다.
신바람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비전이 없는 지도자는 한국인 특유의 신바람을 일으키지 못한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가. 세계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지도자 상이다.
민주화로 대표되는 명분 문화와 산업화로 대표되는 실리 문화가 치열한 싸움 끝에 드디어 이 둘의 장점만을 쏙 빼 닮은 정말 멋진 옥동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놀라운 일은 이런 사람이 이제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말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햇빛 찬란한 한국의 미래]
불만 당겨졌다 하면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민족이 한민족이다. 일단 불이 붙으면 아무도 그 불을 끌 수 없는 민족이 한민족이다.
일당 백, 한국인이 드디어 일어서기 시작했다.
머잖아 상상하기도 끔찍한 고통이 따르긴 하겠지만,
통일도 도둑같이 오게 되어 있다. 북한은 우리보다 수십 배 강한 명분 문화를 가졌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다가 무너지면 한꺼번에 무너지게 되어 있다.
대륙을 향해, 대양을 향해 포효할 때가 마침내 바싹 다가오고 있다. 호랑이에서 이제 독수리로 변신할 때다. 대륙과 대양을 모두 날아 다니는 독수리로 변신할 때다. 용이 되어도 좋겠다. 올해가 용의 해라던가.
(2000. 2. 17.)
무려 2000년간 세계 GNP의 30% 내지 40%를 차지했다가 150년간의 혹독한 시련을 겪고서야 곧 죽어도 세계제일이라는 중화주의의 미망에서 깨어나 마침내 기지개를 키고 21세기의 아침을 여는 중원이 황룡(黃龍)이라면, 세계 4대 고등종교 중 불교와 유교 그리고 기독교라는 3대 고등종교를 차례로 받아들여 이들을 하나같이 발상지의 원시종교보다 더 정통적인 종교로 바꾸는 한편 숨돌릴 틈도 없이 20세기에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상이한 두 물신교(物神敎)를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딱 나뉘어 온 마음으로 믿고 온몸으로 겪은 후 바야흐로 21세기를 맞이하여 무의식 중으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나아가는 짙푸른 고속도로를 닦기 위해 아마겟돈의 전쟁터로 청룡열차처럼 아찔아찔 정신없이 달려가는 청구(靑丘)는 청룡(靑龍)이다. 양자강에서 잠시 낮잠 자던 황룡이 승천하려는 순간 동해에서 만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청룡이 구만리 장천(長天)으로 비상할 것이다.
(2004.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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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싣는 중에 과분한 칭찬을 하신 분도 있었지만, 이의를 제기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어느 쪽이든 다 감사합니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고, 더러 표현이 약간 거친 바도 있었지만, 그분들의 열정과 순수함과 날카로움이 하나같이 돋보였습니다. 덕분에 제가 도리어 많이 배웠습니다. 거듭 감사 드립니다. 아무래도 칭찬보다 꾸중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나 봅니다. 여러 '이의' 중에서 대표적인 것 두 개와 그에 대한 제 엉성한 답변을 아래에 적습니다. 제 성의가 부족하여, 일일이 답변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1. 일본 사무라이 정신을 찬양하는 듯한 위험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2. 강약의 사고를 가진 문화가 선악의 사고를 가진 문화보다 개방적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닌가?
1.에 대한 대답입니다.
잘 지적하셨습니다.
문과 무 어느 쪽도 치우치면 위험합니다.
무를 멸시하고 숭문(崇文)에 치우치면 문약(文弱)이 되고
문을 천시하고 상무(尙武)에 빠지면 무단(武斷)이 됩니다.
님이 말씀한
스파르타와 바빌로니아와 몽골 제국과 소비에트와 일제의 신속한
멸망은 모두 상무를 넘어 무단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문약으로 망했고 이들 나라들은 무단으로 순식간에 정말 거짓말같이 한 순간에 멸망했습니다. 그 중에 앞의 셋은 영원히 사라져 버렸거나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신세가 되었습니다.
숭문이 문약으로 떨어지고 상무가 무단으로 거꾸러지는 것은 모두 이유가 있습니다. 숭문의 지배층과 상무의 지배층이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중심인 국민의 삶을 전혀 생각 않고 오로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고혈을 빨아먹는 흡혈귀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상무와 숭문은 항상 국민을 먼저 생각합니다.
국민보다 자기 계층의 이익을 우선할 때 멸망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상무와 숭문은 좋습니다. 둘 다 좋은 것입니다. 균형이 중요합니다.
어느 쪽이든 한쪽에 치우쳐서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숭문도 아니고 상무도 아닙니다. 문약이요, 무단일 뿐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되는 조짐은 폐쇄성에 있습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의논하고 결정합니다.
일본의 무사들이 문호 개방을 하고 산업화의 길로 나아갈 때, 그들은 조선의 선비들과는 달리 모든 기득권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우리 나라를 침략하는 순간부터 교만해지고 기득권을 절대 놓지 않고 그 기득권을 더 확보하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또한 극도로 폐쇄적인 집단으로 바뀌었습니다.
군부끼리만 대화를 했습니다. 또한 국민들의 삶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직 총알받이만 되기를 원했던 겁니다.
멸망의 길을 스스로 활짝 열어놓은 겁니다.
저는 단기적으로는 한국의 장래를 거의 모든 면에서 비관적으로 보지만, 장기적으로는 누구보다 낙관적으로 봅니다. 제가 어설프게 만든 문화 비교의 틀에 비추어 보면, 이것은 거의 확실한 일입니다. 물론 제 생각이 틀릴 수 있습니다.
2.에 대한 답입니다.
제 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고 날카로운 지적을 해주어 고맙습니다.
단정적인 표현은 가능하면 안 쓰려고 애쓰는 편인데, 우리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앞뒤 문맥에서 뒷받침도 안 된 그런 표현을 자꾸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지적해 주어 무엇보다 고맙습니다.
단정적인 표현보다 비단정적 표현을 쓰는 것은 오히려 자기 의사를 부드럽지만 더 확실하게 전달하는 일종의 수사법으로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방법에 익숙하지 않아 토론을 못하고 싸움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그런데 강약의 사고체계가 선악의 사고 체계보다 개방적이라는 표현을 거의 설명이 없이 단정적으로 써서 거부감을 갖게 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분법적인 사고를 지양한다면서 무의식중에 그런 말을 했으니, 역시 저도 한국인 핏줄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맞습니다. 그것은 분명 '그러한 경향이 강하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모든 군인과 모든 운동 선수들이 승부를 깨끗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강약의 사고 체계는 사실 동물 세계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에 가까운 것입니다. 반면에 선악의 사고 체계는 인간이 자연 환경과 인간 문화에 대한 가치 판단에서 온 것이라고 봅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강약이라는 것은 아주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이의가 거의 없습니다. 지면 깨끗이 항복하고 이긴 자의 선처를 바랍니다. 싸움에서 진 동물이 엉덩이를 이긴 동물에게 내보이는 수가 많은데, 이것은 가장 약한 부위를 상대방에게 마음대로 공격해도 좋다는 뜻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긴 자는 더 이상 약자를 공격하지 않고 그 생명을 보장해 줍니다. 한 번 진 자는 대개 다시는 덤비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놈이 젊은 놈일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상대방이 늙길 기다리며 힘을 기르는 거지요.
인간 사회에서 이런 동물의 약육강식에 가장 가까운 형태가 전쟁과 스포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 세상에 들어오면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님이 지적한 대로 이 사회에서는 결과에 대해 승복하는 것이 하나의 당위가 되어 있지만, (이 당위라는 것은 약자가 강자에게 깨끗이 승복하는 동물세계의 법을 따르라는 말과 거의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니만큼 그렇지가 못한 경우가 생깁니다.
일본의 무사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약자로서 강자를 배울 때는 참 아름다웠지만, 강자가 되어 약자에게 군림하면서부터 자기 힘에 도취되었고 그 순간 그들이 제가 말한 무단으로 흘러서 질 줄 뻔히 아는 전쟁에서도 이를 받아들이길 한사코 거부했습니다. 사고의 유연성을 잃었다는 거지요.
이처럼 어느 나라든 지배층이 비판 세력을 압도하거나 압살할 만큼 권력이 강해지면 자기도 모르게 교만해져서 상무는 무단으로 타락하고 숭문은 문약으로 전락하고(조선은 중기 이후에는 군대가 없는 나라나 마찬가지가 되어 한말에는 2천만 인구에 월급도 못 받는, 신식 총 한 자루 제대로 없는 군인이 겨우 3천 명 정도밖에 없는 씨족 사회로 전락하고 '또 다른 조선'은 그와 정반대로 문인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어 선군 정치라며 300만이 굶어 죽어도 총칼만 벼리는 병영국가로 타락합니다) 그 순간 사고의 유연성을 잃게 되어 개방성을 잃고 자신이 도리어 약한 자거나 악한 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워지게 되는가 봅니다. 그러다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지배층이 몰락하면 정신이 번쩍 드는 거지요.
선악의 사고 체계는 인간의 가치관이 개입된 만큼 주관성이 강해서 합의점에 도달하기가 자연에 그 유래를 두고 있는 강약의 사고 체계보다 상대적으로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선악의 사고 체계를 가진 명분 사회에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패를 쫙 갈라서 속은 더 지저분한 경우가 많지만 이를 절대 내색하지 않고 그럴 듯한 명분을 내걸고 벼랑 끝에 몰렸을 때의 '극적인 타협' 외에는 타협이 거의 없이 맹렬히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상대방을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항상 자기 패거리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니까요.
아니면 오로지 하나의 절대적 가치를 공유한 상황에서(조선의 성리학, 북한의 주체사상, 구 공산권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등)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서 모든 것을 차지하기 위해(실리) 누가 그 가치에 어긋나느냐 어긋나지 않느냐, 누가 더 순수한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를 두고(명분) 살벌하게 싸웁니다. 이렇게 경직된 나라에서는 말 한 마디(명분)에 생사가 달렸기 때문에 농담 한 마디도 함부로 못하고 누구나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애들마저 일곱 살만 넘으면 발랄함과 생동감을 거의 잃고 하나같이 진지하고 점잖습니다.
인식 능력의 한계 때문에 인간사는 상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이 대부분인데, 자신은 절대적으로 옳고 상대방은 절대적으로 그르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학문에서는 인문 사회계통이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회과학이니 인문과학이니, '과학'이란 말을 써도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과 계통은 옳고 그름이 비교적 쉽게 드러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을 다루지 않고 자연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인간도 인간의 몸을 다루면 그것이 자연이나 마찬가지가 되겠지요.) 자연은 객체로서 관찰의 대상이지만, 인간은 객체임과 동시에 주체이기 때문에 문제가 아주 복잡해집니다. 그러나 자연과학도 토마스 쿤이 말한 대로 어떤 패러다임에 갇히면, 설령 불세출의 천재라도 나중에 누구나 인정하게 될 새로운 이론조차 이해하지 못합니다. 뉴턴의 절대 시간 개념에 갇혀 있던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것이 좋은 예이지요. 이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마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원자 세계 안으로 들어가면 '불확정성의 원리'가 적용된다는 하이젠베르크의 주장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지요.
하물며 프랑스 혁명 이후 전세계적으로 가장 두 큰 명분이 된 자유와 평등이 맞부딪칠 때, 지금은 이 둘이 손등과 손바닥처럼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쪽으로 수렴되고 있지만, 팽팽하게 맞설 수밖에 없지요. 우리나라는 세계적 흐름에는 아랑곳없이 김대중 정부 이후 자유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보수주의로 평등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진보주의로 갈려서 치열하게 싸웁니다. 나아가 보수주의는 미국, 진보주의는 북한 정부(북한이 아니라)와 각각 연결되면서 제2의 6·25 직전에 이르지 않았나 합니다. 양자가 상대방을 악의 세력으로 확신하고 있으니까요.
강약의 자연 세계로 돌아가서 주체가 자기 자신을 가능하면 배제하고 자신도 하나의 객체로 보면 사고가 유연해진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건 어린이처럼 순수한 사람이나 수양이 아주 잘된 사람의 이야기이고 보통은 그러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악의 사고 체계를 가진 사람은 아무래도 자기가 옳다는 주관성이 강해서 개방적이기가 힘들고 사고가 유연해지기 힘드는 것 같습니다. 성리학이나 기독교 또는 이슬람교, 20세기의 최대 종교인 공산주의나 김씨 왕조의 주체사상에 갇혀 그것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확신하는 근본주의자들이 특히 이런 우를 범하기 쉬운 듯합니다.
또한 선악의 사고 체계를 가진 문화에서는 상대방이 물리적 힘을 사용할 수 없으면(현대에 근접할수록 이것은 법을 지키는 것으로 바뀝니다) 생명의 위협을 전혀 받지 않으므로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익이나 자존심 등의 요인으로 상대방을 '옳다'고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치사한 싸움을 하게 되는가 봅니다.
대답이 제대로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근거가 박약하고 논리의 비약이 심한 졸고에 관심을 가져 주신 데 대해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한국, 중국, 일본은 흔히 동양 3국이라고 불린다. 뭉뚱그려서 '젓가락 문화권'이라고도 하고, '유교 문화권'이라고도 한다.
세 나라 국민이 한결같이 손재주가 뛰어나고 부지런한 것이 젓가락 문화에서 온 것이라면,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하고 교육열이 높아서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되어도 자식에게 교육을 시키는 것이 유교 문화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 공통적인 특성도 뚜렷한 차이점이 있지만, 유사점이 많은 만큼 이 정도로 말하고 차이점에 대해 말하겠다.
[문화란 사고 체계]
한중일 세 나라는 도저히 같은 문화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점이 많다. 달라도 보통 다른 게 아니다. 무심코 보아 넘겨서 그렇지 엄청나게 다르다. 그래서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같거나 유사한 문화를 공유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각과 말이 끝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경우가 많다.
문화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공유하는 사고 체계'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동양 삼국은 사실상 각기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거의 일치하지 않을 정도로 다르다. 그러면서도 지리적 근접성과 역사적 경험의 일부 공유 때문에 이 쪽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다른 쪽에서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줄 지레 짐작하고 자기 좋은 대로 일을 진행하다가 서로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 문화에 대해 지식인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것을 자세히 연구하지 않고 높으신 분들이 경제, 정치, 사회, 교육, 외교, 군사 등의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고 정책을 입안해서 '소신껏' 추진하기 때문에 일이 이상하게 꼬인다. 그러면서 왜 그런지 모른다. 알 턱이 없다. 문화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 차이를 연구는커녕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는 이른바 '석학'이라는 사람이 TV에 초빙되어 자기가 최불암이나 된 듯이 무슨 드라마 주인공인 양 아주 그럴 듯하게 실감나게 연기를 하고
저명한 교수가 터줏대감처럼 신문에 떡 하니 자리잡고 앉아
자기가 나관중이나 되는 듯이 장쾌하고 아름다운 소설을 써대는 바람에 멀쩡하던 똑똑한 시청자와 독자들마저 그만 헷갈려 버린다.
우리 나라에서는 배운 사람일수록 우리 문화에 대해 무지한 편이다. 근대 이후 학문이라는 것이 서양 학문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양 문화 특히 미국 문화에 중독되어 자기가 말을 하면서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고 방식을 지배하는 우리 문화에 대해 너무 무지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중국 문화에 중독되어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흉내를 잘 내어 박수를 받더니, 이제는 또 미국 문화에 중독되어 앵무새 같은 말을 해서 미국인들에게 귀염을 받고 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나이다.
[동양 삼국의 문화는 동일 문화권이 아니다]
동양 삼국의 문화는 아주 다르다. 달라도 보통 다르지 않다. 어떤 경우는 게르만 문화와 일본 문화 차이가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보다 더 작을 때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상무 정신과 장인 정신이다.
[일본 문화와 게르만 문화]
게르만 문화와 일본 문화에서는 어디서나 상무 정신과 장인 정신을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눈을 씻고 봐도 이 두 정신이 안 보인다. 먼저 장인 정신에 관해 말하면, 한국에는 이 정신이 있더라도 구석진 자리에서 초라하게 이름은 그럴 듯하게 '인간 문화재'라고 하지만 사실은 '전통 문화유산 담당 생활보호 대상자'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한다. 그나마 인간 문화재로 지정 받지 못한 사람은 거지와 진 배 없는 생활을 한다.
독일을 비롯한 서구와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 어디나 장인 정신이 넘쳐 흘렀다. 장인 정신이란 게 딴 것 아니다.
[장인 정신은 상공업을 중시하는 문화]
상공업을 중시하는 문화가 바로 장인 정신이다.
상공업을 천하게 여기지 않고 최선을 다해 평생 동안 자기가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며 사는 정신이다.
죽으면서 자기 아들에게도 꼭 자기가 갔던 길을 이어 받아 열심히 같은 길을 가라고 유언하는 정신이다. 평생을 열심히 상공업에 종사해 놓고도 자식에게는 절대 자기가 걸었던 길을 걷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장인 정신이 아니다.
[선비는 선악의 사고체계를 갖고 있지만, 무사는 강약의 사고 체계를 갖고 있다]
일본에도 사농공상 사상이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우리와 달리 사(士)가 무사(武士)였고 무사들은 실질적이라서 상공업을 천시하기는 했으나 절대 탄압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무사는 선비와 달리 모든 것을 강약(强弱)의 관계로 환원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리학의 영향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조선의 선비가 모든 것을 선악(善惡)의 관계로 보는 것과 이것은 아주 대조적이다.
(우리 나라도 삼국 시대, 통일 신라 시대, 고려 초기까지만 해도 상무 정신이 강하여 사고가 유연했다. 강약과 선악을 구별할 줄 알았다는 말이다.)
지금도 이 사고 체계는 한일 양국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게 일제의 조선 침탈이다. 한국은 그것을 악(惡)으로 보지만, 일본은 어디까지나 강(强)으로 본다. 강한 일본이 약한 조선을 '먹었다'는 식이다. 그래서 그들은 늘 조선 '진출'이라고 한다. 반면에 한국인은 악(惡)한 왜놈이 선(善)한 조선에게 씻을 수 없는 범죄(犯罪)를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조선 '침략'인 것이다.
그러니까 사죄 문제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서로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무사는 강약에 대해 아주 예민하기 때문에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단 4척의 우람한 흑선(黑船)밖에 갖고 오지 않았지만, 그 배와 거기 설치된 어마어마한 대포를 보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즉시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싣고 온 상품을 보고도 홀딱 반했던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장인도 만들 수 없는 환상적인 물건이었던 것이다.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강하다! 멋지다! 배우자! 문을 열자!
우리의 꼬장꼬장한 선비들은 그런 걸 보면 즉시 이렇게 판단했었다. 그래서 병인양요, 신미양요가 일어났던 것이다.
--악하다! 오랑캐다! 죽이자! 문을 닫자!
더군다나 페리가 육지에 내려서 권총 시범을 보여주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을 때, 그들은 평생 잊지 못할 충격을 받았다. 새로운 문물을 배우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소름이 끼치도록 깨달았다. '약육강식의 거대한 세계적 흐름'을 즉시 깨달았던 것이다. 그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 늦으면 늦을수록 '손해'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너희 가운데 천하제일 사무라이가 천하제일의 일본도를 들고
우리 가운데 아파서 다 죽어 가는 병자가 이 권총을 들고
결투 한번 해 볼까?
일본 무사들은 누구나, 한 평생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는 미야모도 무사시조차도 권총을 든 병자에게는 애시당초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일본 무사들의 대변신]
수백만 명이나 되었던 일본의 모든 무사가 실직자가 된다는 엄청난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득권을 깨끗이 포기하기로 무언의 합의를 보았던 것이다. 지방 반란이 일어나고 막부가 약간의 저항을 한 일 등은 찻잔 속의 태풍밖에 안 되었다. 강약의 사고 체계를 가진 사람은 이렇게 개방적이다. 강한 자에 깨끗이 항복하고 그 강한 자를 배우는 것, 그것이 바로 '개방'인 것이다.
이는 선악의 사고 체계를 가진 조선 선비들이 극도로 폐쇄적이었던 것과 대조된다. 고구려, 신라, 백제, 초기 고려가 얼마나 다른 문화에 대해 개방적이었나를 생각해 보라. 그들에겐 강한 것을 숭상하는 상무 정신이 넘쳐 흘렀었다.
그들은 성리학의 선악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다행히 이런 옛 전통이 우리의 깊숙한 무의식 세계에는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일단 한국 사람이 강약의 사고 방식을 받아들이는 순간 무서운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발휘한다.
한강의 기적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다. 북한도 1972년까지만 해도 경이적이었다. 남북 모두 군인 출신이 경제를 일으킨 일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군인은 선비의 전매 특허인 선악 이분법적 사고 체계가 아닌 강약중심의 개방적 사고 체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앞선 서양의 과학 기술을 받아들여 산업화를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군인과 운동 선수는 항복할 줄 아는 사람이다. 졌으면 깨끗이 진 것을 인정하고 다시 실력을 길러 다음 기회를 노리는 사람이다.
원래 일본 무사들은 농업과 상공업에 종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시에 그들은 실업자 신세로 전락할 것이 명약관화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의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선비가 아니라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신학문을 배우고 신상공업에 종사하고 신무기를 개발하기로 작심했다. 과감히 기득권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실력을 기름으로써 새로운 지배층으로 당당히 부활했던 것이다.
이들이 힘을 갖자마자 바로 한국과 중국에게 그 힘을 사용하는데, 이것이 한국과 중국에게는 '침략'이 되었던 것이다.
페리제독의 충격(1853.6., 정식 조약은 1854.3.)에서 정신을 차려 운양호 사건(1875)을 일으키는 데는 불과 2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것은 일본인들이 조금도 마음 속으로 갈등하지 않고 전국적으로 거의 한 마음으로 서양의 근대화를 배웠다는 뜻이다. 조선과 중국이 세계의 흐름을 전혀 모르고 아옹다옹하고 있을 때 일본은 그 흐름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합류하여 목숨을 걸고 서양으로부터 배웠던 것이다.
약자는 현실을 인정하고 강자에게 배워야 한다는 것을 그들이 즉시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문화가 바로 이처럼 상무정신과 장인 정신을 기둥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페리 제독에게 다음 해에 다시 오면 개방을 고려해 보겠다고 했지만, 이미 일본은 압도적으로 강한 세계에 엄청난 매력을 느끼고 그들에게 배워 자기도 강한 나라가 되겠다는 생각을 그 자리서 굳혔던 것이다. 죽기 살기로 하면 페리 제독을 물리치는 것은 과히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 흑선이 상징하는 바를 일본은 잘 알았다. 프랑스와 미국의 상선을 물리치고 환호한 조선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일본의 성리학자들은 무슨 역할을 했을까]
그러면 일본의 유학은 왜 그런 흐름에 반대하지 않았을까?
일본에서도 조선처럼 덕천(도꾸가와) 막부가 주자학을 관학으로 삼았지만, 학자는 항상 무사 아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무사들의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은 행정가 내지 조언자에 지나지 않았다.
이 당시도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이론을 즉시 끌어내어 이제는 힘센 장군이 권력을 쥐고 힘없는 천황은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비정상적인 막부 중심 국가가 아니라 천황이 실질적인 권력을 쥐는 정상적인 천황 중심 국가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무사들이 충성의 대상을 바꾸는 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유학자들이 1868년의 명치 유신을 정당화하는 이론을 제공한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유학자는 정책 결정권이 없었다. 오히려 무사들이 결정하면 그것을 정당화하는 이론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더구나 일본의 학자는 이미 실천을 중시하는 양명학도 연구했고 화란을 연구하여 일부 지역이지만 난학(蘭學)도 발달했었다.
일본 학자들의 사고는 아주 유연했던 것이다. 성리학을 하던 학자조차 선악과 강약을 구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강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산업화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악(惡)이라는 이론을 제공했던 것이다.
[풍신수길은 일본 자본주의의 원조]
일본을 실질적으로 통일한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은 원래 장수 출신이 아니라 재무 담당자였다. 상업의 귀재였다. 군대에서 생명줄인 보급을 가장 원활하게 해 주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남이 보는 데서는 결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체구도 조그만했지만, 무술을 거의 못했기 때문이다.
뭇 장수와 병사들이 다 보는 앞에서 호기롭게 공개적으로 결투를 신청을 한 적은 많았지만, 결투는 언제나 은밀히 둘만이 만나서 했다.
--지금 당장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묵사발을 만들고 싶지만, 사람이란 게 명예가 있느니만큼 아무 날 아무 시에 아무 장소에서 단둘이만 만나자.
단둘이 만나면 풍신수길은 즉시 무릎을 꿇었다. 바로 항복했다. 일류 무사는 자세만 잡아도 벌써 상대방의 무술을 거의 다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세도 취하지 않고 바로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전혀 싸움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솔직히 공개 석상에서 체면 때문에 큰 소리쳤다고 말했다.
--이래 보여도 나 풍신수길이 싸움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당신이 워낙 강적이라서 아무래도 상대가 안 되겠다. 사나이답게 항복한다.
마음대로 해라. 지난 번 일은 미안하다.
그러나 만약 자기를 용서해 주고 자기를 받들어 모시면 앞으로 잘 봐 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꼭 장군이란 법은 없지 않느냐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당신이야말로 내가 본 중에서 가장 무술이 뛰어난 장군'이라고 한 번 더 추켜 주었다.
그렇게 나오는 데야 뭐 뻣뻣하게 나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강자는 항복하는 약자에게는 너그러운 법이다.
(선비들이 항복한 약자에게도 아주 잔인한 것과 선명하게 대조된다. 선비들은 약자(弱者)를 약자로 보지 않고 악(惡)한 자로 보기 때문에 아예 상대방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뿌리를 뽑으려고 한다. 그래서 항복한 약자에게조차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 없이 잔인할 수 있다. 우리 정치사를 보라. 현대도 변함없다.)
여기서 풍신수길이 잘 봐 주겠다고 한 것이 군대 안에서의 위치도 위치지만 보급품(식량, 무기) 곧 돈이었다. 어찌 보면 일본의 자본주의는 풍신수길이 시작한 것이다.
그는 대대적으로 대판(오사까)를 새로 건설해서 전국의 모든 농산물과 공산물을 그 쪽으로 모았다. 전국의 상권을 하나로 통일한 것이다. 그 전에 풍신의 주군이었던 직전신장(오다 노부나가)이 상업의 토대는 어느 정도 닦았지만, 실질적으로 일본의 상권을 통일하고 심화 발전시킨 사람은 풍신수길이다.
그는 전쟁은 곧 무기요, 식량과 의복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전쟁은 곧 돈 싸움임을 알았던 귀재였다.
여기서 무기와 의복은 공업이 되고 식량은 농업이 된다. 이들을 모두 모아서 전국에 유통시키는 것은 상업이다. 상업이 없으면 공업도 농업도 모두 침체한다. 상업은 돈이다. 그는 상업 곧 돈을 장악함으로써 100년 이상 지속된 끔찍한 전쟁을 종식시키고 일본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전통 때문에 비록 신분은 제일 낮았지만, 풍신수길 이후 실질적으로 일본을 움직인 계층은 상업이었다. 상업이 발달하면 공업은 따라서 발달한다. 돈을 주고 만들어 달라면 무슨 물건이든지 다 만들 수 있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덕천가강(도꾸가와 이에야쓰)은 농업을 더 중시했지만, 일본의 상공업은 국내에서는 계속 발전했다.
이렇게 하여 상공업이 실질적으로 국민들 사이에서 전혀 천하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은 상공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서양의 산업화를 아주 쉽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니, 못 배워서 환장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서양으로 유학을 간 사람들이 과학 기술과 군사를 중심으로 실용적인 학문을 배워 와서 금방 산업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선비는 왜 이공계통의 학문을 않았을까]
반면에 한국은 조선초의 극히 짧았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그 후 약 600년간 사농공상에서 사(士)는 철저히 붓을 잡은 선비를 의미했고 이들은 상공업은 원수 보듯 깔보았다. 아니 그것을 인륜을 파괴하는 악의 근원으로 보았다. 그래서 한국인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유학을 가더라도 실용적인 과학, 기술, 군사를 배우는 게 아니라 거창한 국제 정치학, 외교학, 법학, 영문학 등을 배워 와서 국민들에게 아무 도움을 못 주었던 것이다.
이런 고급 신학문을 배웠다는 것이 본인에게는 한껏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켜 주는 수단이 되었고, 일반 국민에게는 여전히 그들을 나으리로 높이 우러러 봐야 할 명분이 되었다. 그들은 이 새로운 학문을 무기로 장기를 되살렸다. 정쟁만 일삼았던 것이다. 이공계통을 전공한 사람은 정말 드물었다.
[일본이 산업화에 일찍 눈 뜬 것은 문화 때문이다]
이렇게 일본 문화가 상공업을 중시했기 때문에 일본은 페리 제독이 슬쩍 라이터 불을 보여 준 정도에 지나지 않는데도, 순식간에 그 라이터를 전 일본열도에 나눠줘서 산업화의 불을 스스로 활활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위정자가 못나서, 우리 양반들이 썩어 빠져서 근대화를 못한 게 아니다. 그것은 겉모습일 따름이고 속내용은 동양 3국 중에 일본만이 게르만 문화와 유사한 문화를 가졌기 때문에 반발이라는 것이 거의 없이 일제히, 순식간에 산업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막부의 쇼군(장군)이 문호를 개방해서 산업화의 길을 연 일이 일본 근대사의 가장 큰 복이라고 하지만, 그런 결단을 내리게 된 이유는 그 사람이 조선의 왕보다 특별히 뛰어난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그는 물론 훌륭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일본열도 전체가 바라는 것을 뭔지 알았기 때문에, 민심을 알았기 때문에 깨끗이 기득권을 포기했던 것이다. 반대해 봤자 피만 뿌릴 뿐, 이미 막부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한두 해 빨리 하느냐, 마느냐 그 차이뿐이었다. 물론 막부가 약간의 저항은 했었지만, 이미 이빨 없는 호랑이가 되어 작은 지방의 반란도 제어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미 대세가 기울었던 것이다.
단지 그는 대세를 따랐을 뿐이다. 대세를 따를 만큼은 훌륭했다. 이것도 그가 장군이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강한 것을 선한 것'으로 여기는 군인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선이 산업화가 늦은 것도 문화 때문이다]
우리 나라는 한말에 설령 세종대왕이 새로 태어났다고 해도 산업화가 불가능했다고 본다. 아마 고종이나 대원군이 전격적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산업화한다고 했다면, 전국의 유생이 손에 손에 도끼를 들고 경복궁에 몰려 와서 거적때기 위에 꿇어앉자 궁전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을 것이다.
--전하, 차라리 내 목을 치소서.
(이 때 그들의 마음속은 부글부글 끓어서 궁전 아래 엎드린다는 전하(殿下)가 아니라 궁전 위에 올라가서 임금에게 호령한다는 전상(殿上)이었을 것이다.)
실학의 전통이 있었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참 과거를 미화해도 어쩌면 그렇게 미화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100년 후 박정희가 산업화하는데도 지식인들이 얼마나 극렬하게 반대했던가. 민주주의하면 저절로 산업화된다면서 말이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절대 없는 법이다. 지식인들은 기득권 곧 사(士)로서 상공업하는 사람을 하인 다루듯 다루면서 잘난 체할 수 있는 권력을 전혀 내놓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진정 그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했다면, 정치인, 고위 관료, 교수, 판사, 검사, 변호사, 언론인이 되지 말고 과감히 상공업에 뛰어 들어 공돌이가 되고 장돌뱅이가 되어야만 했다. 군인이 되고 경찰이 되고 운동 선수가 되고 음악가가 되고 미술가가 되어야 했다. 농부가 되어 농업을 과학화해야 했다. 그들의 의식에는 이런 모든 직업이 천하기 이를 데 없었다. 상놈이나 하고 종놈이나 할 일이었다. 그러한데 이런 일에 종사한 놈들이 자기보다 돈도 많이 벌고 권력도 더 갖고 명예도 더 얻게 되자 배알이 뒤틀렸던 것이다. 제일 쉽게 이들을 욕하는 게 바로 정경유착이었다. 정경유착이 아니면 초등학교도 안 나온 놈이 대기업을 줄줄이 일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맞지, 맞지. 정경유착이 있었지. 그러나 그것이 절대 다는 아니지. 그런 식으로 따지면 공산 국가가 전 세계를 주름잡아야지. 100% 정경 유착이니까. 아무리 뒤를 봐 주어도 성공한 제일 큰 요인은 사람이다. 개인의 능력이다. 아래 사람들의 힘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지도자의 능력이다.
그보다는 양반님네들의 계급 의식이다. 시샘이다. 깔보기다.
--감히 이병철이란 무식쟁이가(실은 와세다대학 출신), 정주영이란 상놈이, 구인회라는 종놈이! 말도 안 돼! 이건 말세야!
--감히 군바리가! 일본군 출신이, 독립군 때려잡던 일본군 출신이! 산지기 아들놈이! 빨갱이 짓하던 놈이! 감히 500년 선비의 철옹성을 총 몇 방으로 강탈해! 군바리가 어떻게 정치를 해! 경제를 해! 이건 말세야! 정말이지 이건, 세상이 뒤집어 져야 돼!
사고의 틀(패러다임)이라는 건 그렇게 바꾸기 힘든 것이다.
시대의 흐름으로 보아 산업화는 저절로 되었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도 조선시대 사농공상의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그들은 이미 우리 나라가 산업화를 넘어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었는데도, 여전히 농업 시대의 사고를 갖고 있다.
그들이 이해하는 산업화와 정보화는 관념의 유희일 뿐이다.
[중국이 동양 삼국 중에서 산업화가 가장 늦은 것은 중화 사상 때문이었다]
중국은 상무 정신과 장인 정신이 일본에 비해 별로 발달하지 않은 데다 결정적으로 중화사상 때문에 아시아에서 산업화가 가장 늦게 되었다. 오랑캐한테 배운다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우리 조상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와 달리 중국은 상공업을 그렇게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원래 실용적인 국민이었다. 성리학이 태동된 송에서조차 농업뿐만 아니라 상공업이 매우 발달해서 경제가 아주 윤택했다.
어찌 보면 중국 역대 왕조 중에 경제적으로는 가장 발달한 시기가 송 특히 남송 시대였다. 매년 요, 금, 몽골에게 엄청난 조공를 바치면서도 전혀 궁핍하지 않았다.
그만큼 상공업을 중시하는 실용적인 문화를 갖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런 전통을 가진 중국이 서양의 것이 매우 좋은 걸 알면서도 중화사상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못 배웠다. 이 점에서 그들은 좋다는 것 자체를 몰랐던 우리와 다르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중국과 홍콩, 자유중국, 싱가포르이다. 자유중국은 대륙에서 쫓겨난 후 상공업을 중시하는 자본주의를 하는데,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원래 실용적인 국민인데다 중화사상을 내세우고 서양을 배우지 않을 만큼 그들은 무슨 대단한 힘이 없었다. 오히려 빨리 근대화해서 경제와 군사에서 크게 힘을 길러 대륙을 다시 되찾자는 절박한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1965년 말레이시아가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화교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생긴 도시 국가가 싱가포르다. 이들이 무슨 중화사상 어쩌네 하면서 외국으로 안 배우려고 했을 리가 없다. 원래부터 장사를 너무 잘해서 말레이시아에서 쫓겨난 인종이었던 것이다.
홍콩은 중국의 한 점이었으나 영국의 지배에 들어가면서 중화 사상을 내세울 수 없었다. 사실 실용적인 중국인은 영국인이 시킬 필요도 없이 돈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했다. 어찌 보면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병폐인 범죄 집단까지 하나의 기업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중국의 무협 영화나 무협 소설은 사실은 홍콩과 자유중국의 범죄 집단(흑도)과 기업 집단(백도)간의 싸움을 칼과 장풍, 내공과 경공으로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무협 소설의 전설인 김용이 백도와 흑도를 선악 두 집단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백도 안에서도 못된 놈이 있고 흑도 안에도 착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홍콩과 자유 중국의 독자들은 열광했다. 현실 세계를 너무도 잘 묘사했기 때문이었다.
김용 얘기만 나오면 그들은 날 새는 줄 모른다.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중국인들이 어찌 보면 그 정도로 통이 크고 어찌 보면 극단적일 정도로 실용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범죄 집단도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실지로 홍콩이나 자유중국에는 삼합회라든지, 청련방이라든지, 홍련방이라든지 하여 범죄 기업 집단이 많다. 버젓이 기업을 한다. 이에 대해 국민도 별 저항이 없다. 이들은 국회에 의원까지 진출시킨다.
거물이 사망하면 사회의 저명 인사가 줄줄이 문상을 간다. 우리 나라 같으면 꼬투리가 잡혀 평생 고생할 일을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대북시 한 가운데로 시민들의 애도를 받으면서 호화롭기 짝이 없는 상여가 지나간다.
명분 문화인 한국인이 보기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이 정도로 그들은 명분과 실리를 구별하는 문화다. 어찌 보면 세계에서 자본주의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민족이 한족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륙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청말에는 나라가 어수선하여 도저히 대대적인 산업화를 시행할 수가 없었다. 모택동이 중국을 통일하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나라의 문을 닫은 일이다. '죽의 장막'을 친 것이다.
통일과 더불어 만주족과 서구 제국주의와 일분 제국주의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졌던 중화 사상을 되찾자, 자신만만하게 이제 자립 경제를 실현하여 서양 오랑캐와 왜적에게 한 수 가르쳐 주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땅이 크고 없는 게 없으니(地大物博) 자기들끼리 얼마든지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큰 소리 쳤던 것이다.
[모택동의 뒤뜰 용광로와 박정희의 포항 제철]
이 때 나온 정책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뒤뜰 용광로'이다.
10년 안에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국이 된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산업의 쌀인 철강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리면 선진국은 절로 된다고 믿었다. 영국을 따라잡기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뒤뜰 용광로'라는 게 뭐 대단한 게 아니라 고작 중국의 전통 기술에 의존한 '대장간'이었다.
장예모의 영화에 가끔 나오는 장면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코미디를 연출했던 것이다.
쇠붙이로 된 것은 다 녹여 쇳덩어리를 만들었다. 전국적인 토론을 거쳐 모택동 주석이 명령한 것이니 전 국민이 이 미친 일에 미친 듯이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는 솥이고 괭이고 호미고 숟가락이고 남아 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밥을 못해 먹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밥을 공동으로 해 먹었다. 이 장면은 영화 '햇빛 쏟아지던 날들'에 잘 나타나 있다.
한창 일할 나이의 청장년들이 그 일에 온통 매달렸다. 모두들 '애국 사업'을 했다. 힘을 내라고 브라스 밴드도 연신 흥을 돋구어 주었다.
들판에 곡식이 누렇게 익었지만, 그걸 거두어 들일 남자가 없었다. 들판에서 썩어 가는 것을 번연히 보면서도 남자들은 '애국 사업'하느라고 사소하게 가정을 돌볼 수 없었다. 곧 엄청난 아사자가 발생했다. 비공식적으로 무려 3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고 했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만 해도 잘 먹고 잘 살던 북한으로 도망을 갔었다. 지금은 그 사람들이 북한의 상권을 다 잡고 있다고 한다.
하여간에 이렇게 해서 만든 쇳덩이는 그야말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선철로 된 그냥 쇳덩어리였을 뿐이다. 오로지 거대하고 무거운 쓰레기를 만들기 위해서 수억의 중국인들이 헛고생을 한 것이다.
이 때 우리 나라는 자원도 기술도 자본도 없는 상태에서 전세계의 조롱을 받으면서, 국내 학자와 언론인들의 충심 어린 비판을 받으면서 포항 제철을 건설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건설된 포철은 기술도 오래지 않아 거의 100% 자립하여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종합 제철소가 되었다. 등소평이 한국의 산업 시설 중에서 포철을 제일 부러워한 것은 그들의 너무나도 쓰라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성공한 것은 앞선 나라에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배웠기 때문이다. 온갖 설움을 삼키면서 배우고 또 배웠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처럼 지도자의 확실한 비전과 기업 책임자의 솔선수범과 실무자들의 희생 정신과 창의력을 뭉치면, 상상을 초월한 성취를 이루는 놀라운 잠재력이 있다.
중국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앞선 외국을 앞섰다고 생각하지 않고 전통 기술에 의존하여 그들을 따라잡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매우 실용적인 중국이 그렇게 근대화에 늦게 동참한 이유는 이와 같이 중화사상이라는 교만 때문이었다.
중국은 '대약진 운동'과 '문화 혁명'을 통해 중화 사상이라는 명분은 근대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신과 같았으나 해외에 나가 보지 않아서 그런지 산업화에 대해서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모택동이 죽자 문제가 풀리기 시작했다.
프랑스 유학 경험이 있던 등소평이 마침내 개방하고 개혁하게 되었다. 그 후 불과 20여 년 만에 미국에만 무역 흑자를 1년에 500억 달러를 기록하는 등 중국은 지금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저 큰 중국도 안 되었는데, 북한같이 작은 나라가 어찌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잘 살기를 바라냐는 것이다.
안 된다는 것을 저들도 벌써 알았겠지만, 주체 사상이라는 명분에 사로잡혀 꼼짝 못하고 있다고 본다. 북한은 남한보다 수십 배 강한 명분 문화를 갖고 있다. 조선시대보다 더 심하다.
[일본 문화와 게르만 문화는 산업화와 궁합이 잘 맞았다]
일본이 게르만 문화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한 독일의 산업화 방식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 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두 국가 모두 후발 산업 국가라는 이유도 있지만, 두 나라 문화가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아시아인들 전체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역으로 우리 나라 사람을 비롯하여 아시아인 전체가 일본인에 대해 열등감을 가진다는 것은 좀 웃기는 말 같다.
산업화의 늦고 이름은 문화 차이였다. 이제 새로이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 또 달라진다. 우리 나라는 일본을 분명히 앞지르게 되어 있다. 일본 문화가 산업화에 딱 맞았듯이 한국 문화는 정보화 시대와 천생배필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이 글 뒷부분에서 다시 말하겠다.)
일본의 식자층이 한국이나 중국의 식자층보다 월등히 똑똑해서 산업화를 일제히 지지하여 곧장 선진국에 진입했던 게 아니다. 오히려 아는 것 자체는 우리 나라와 중국이 훨씬 많았다. 선비들이 평생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문화를 뛰어넘을 수 없는 사고 방식이었다.
일본 문화가 서양 문화와 닮아서 그 둘이 산업화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을 뿐이다. 기독교가 산업화의 원동력이라는 막스 베버의 설이 아직도 무슨 진리처럼 통하는데, 어림도 없는 말이다. 일본이 무슨 기독교와 관련이 있는가. 그런 게 아니다.
봉건제를 통해 상공업을 중시하는 장인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서양과 일본이 산업화에 앞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장인 문화가 없더라도 상공업을 중시하는 풍토만 성립되면 산업화는 가능한 것이다.
우리 나라와 중국, 동남 아시아가 뒤늦게나마 산업화에 성공한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상공업을 중시하게 되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아시아의 산업화를 유교 문화 덕분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언제는 유교 문화가 산업화의 걸림돌이라더니, 참 그분들 기억력 한 번 비상하다. 유교 문화는 농업의 이데올로기지 절대 상공업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절대 백인이나 일본인이 뛰어나서 산업 선진국이 된 게 아니다. 그들 문화에 상공업을 중시하는 장인 정신과 강한 것을 아름답게 여기는 상무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탁' 보고 '턱' 알아차린 건 일본의 식자층만이 그랬던 것이 아니다. 일본인이면 거의 누구나 '산업화의 의미'를 알아차렸던 것이다.
문화는 사고 방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사람치고 흑백론적 사고 방식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은 우리 나라 사람은 어느 누구도 우리 문화에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사람이 누구나 선악의 개념으로 사물이나 사람을 보는 것도 우리 나라 사람이 열등해서 그런 게 절대 아니다. 우리 나라 문화 때문에 그렇다.
[한국의 선악 이분법적 사고는 성리학의 소산]
요, 금,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전쟁 시대에 발달한 학문인 성리학은 힘으로는 안 되니까 명분론을 앞세워 자연스럽게 오랑캐는 흑(黑), 중화민족은 백(白)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를 개발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에 들어오면서 우리는 그 사상적 유래도 모르고 오직 문헌에 의지하여 곧이곧대로 주자를 신처럼 받들어 모시면서 도덕이란 이름으로, 윤리란 이름으로 선악 이분법적 사고 곧 흑백론을 500여 년 동안 심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싫든 좋든 이 흑백론에서 자유롭기가 힘든 것이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 N세대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흑백론이 뒷걸음치고 있다. 문화란 이렇게 끈질긴 것이다.
[한국 문화와 중국 문화]
한국 문화와 중국 문화도 엄청나게 다르다. 수천 년 중국 문화를 받아들여서 마치 한국 문화가 중국 문화의 아류인 양 세계에 널리 알려줘 있지만, 우리 나라 사람 중에서도 특히 지식인 중에 이런 사람이 아주 많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일본의 조선 강점으로 서양에서는 한국 문화를 일본 문화의 아류로 알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
한국 문화와 라틴 문화의 유사성이 한국 문화와 중국 문화의 유사성보다 더 눈에 두드러진다. 중국 문화와 게르만 문화의 차이점이 한국 문화와 중국 문화의 차이점보다 훨씬 적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 나라 사람들은 라틴 문화권의 사람들처럼 아주 낙천적이다. 감정적이다. 우리 나라 사람은 라틴족과는 금방 친해지지만, 일본인이나 중국인과는 흉금을 털어놓는 친구가 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문화 차이 때문이다.
[한국 문화는 라틴 문화와 유사하다]
우리나 라틴족은 둘 다 가무를 즐기는 문화를 가졌다. 그들에게 '삼바'와 '탱고'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사물놀이'와 '판소리'와 '노래방'이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우리 민족을 음주가무를 즐기는 족속이라고 했지 않은가. 이건 굉장한 문화적 의미가 있는 말이다.
중국인들의 눈에는 그게 문화 충격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무슨 저런 족속이 있을까.
전쟁은 그렇게 잘 하면서도 평시에는 모였다 하면 노래고 모였다 하면 춤이었던 것이다. 노래와 춤은 또 어찌나 씩씩하고 신나던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흥이 났던 것이다. 술도 어찌나 호쾌하게 마시던지.
[한국 문화는 감정을 중시하는 신바람 문화]
자기들 문화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두 문화는 전혀 별개였다. 모이면 시시하기 짝이 없는 말로 떠들기만 하는 중국인들과는 달리, 동이족은 영웅 이야기를 대서사시로 만들어 웅대한 곡에 붙여 노래로 부르고 영웅의 활약을 춤으로 췄던 것이다. (잘 안 믿기면 몽골 초원에 가 보라. 아직도 거기엔 이런 전통이 남아 있다고 하니까.)
기껏 서정적인 곡에 시시한 가사를 넣어 노래 부르면서 하느적하느적 춤추던 중국인과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지금도 이 전통은 그대로 이어져서 노랫말은 대통령 이하 높은 사람을 욕하거나 칭송하는 산문으로 바뀌었고
노래 곡조는 실컷 국가 대사를 논한 후에 뒤풀이로 고래고래 목이 쉬도록 부른다. 가사는 이미 말로 다했기 때문에 하나도 안 중요하다. 곡만 있으면 된다. 노랫말이 아무 관계없는 것이 무척이나 슬픈 내용인데도, 춤을 어찌나 그리 신나게 추는가를 보면 된다.
그렇지, 춤이 빠질 수가 없지. 그 옛날 칼춤을 추던 솜씨대로 한국인의 춤은 격렬하기 이를 데 없다. 때로는 말을 타고서 드넓은 초원에서 수천 명이 함께 추기도 했던 춤이다.
수십 만 평이나 되는 초원에서 춤을 추던 조상의 후예가 고작 10평 짜리 무대 위에서 춤을 추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이건 춤이 아니라 숫제 전쟁이다.
블루스도 췄다 하면 한국 사람만큼 화끈하게 추는 민족이 없다. 그러니 아줌마들이 몇 번 당기고 밀다가 이윽고 끌어안다 보면 금방 춤바람이 난다.
술도 마찬가지다. 폭탄주는 기본이고 2차, 3차, 4차, 5차 곤죽이 되도록 마신다. 호쾌하게 마시던 조상들의 그 실력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중국인은 절대 그렇지 않다. 높은 사람을 입에 올리는 일이 없다. --왕서방 개가 강아지를 여섯 마리를 낳았는데,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에는 네 마리 낳더니 두 번째는 다섯 마리 낳았다. 다음에는 일곱 마리 낳을 차례다. 누구한테 팔까. 한 마리 얻을 수는 없을까. 강아지가 크면 잡아 먹어야지. 개 요리는 각 지방마다 다른데, 내가 아는 요리법만 해도 5o가지나 된다. 어디 한 번 말해 볼까? 산동에 가면, 광동에 가면, 소림사 중놈들도 개고기를 먹는다고 .....
이런 따위의 얘기가 끝이 없다. 그러니 국가대사를 논하는 우리처럼 고함지르는 법은 없지만, 와글와글 시끌시끌 얼마나 시끄러운지 모른다.
술도 자기 주량 이상 절대 마시지 않는다. 13억 중국인 중에서 길거리에 술이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은 조선족밖에 없다. 그러다 돈 다 털리고 반죽음이 되도록 맞은 사람이 많다. 쥐도 새도 모르게 만두 속이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왜놈들이 우리 나라 지배를 합리화하고 영속하기 위해서 학자까지 동원하여 우리 문화를 '한(恨)'과 '애수(哀愁)'의 문화라고 비하한 것을 마치 우리 문화의 진수인 양 알고 있는 양반들이 아직도 있다고 한다. 이럴 땐 뭐라고 해야 되나? 멋진 코미디다.
[중국 문화와 게르만 문화는 실리-명분 문화]
게르만 문화와 중국 문화에서 가장 닮은 점은 '실리' 위주의 문화이다. 겉으로는 거창하게 '인권'이니 '사해동포'니 내세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장이다. 그걸 내세워 철저히 '실속'을 차리는 게 그들의 문화이다. (이를 실리-명분 문화라고 하겠다.) 반면에 일본은 다짜고짜 '실리'를 취하는 문화다.(이를 실리 문화라 하겠다.)
[한국 문화는 명분 문화]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철저한 '명분' 문화다. 이미 사태가 기울어 '손해'날 것이 뻔한데도, 자기 목숨을 잃게 되고 자기 가족을 다 죽이게 되고 나라가 망하게 되었는데도, 거창하게 내세운 '명분'은 절대 취소하지 못하는 게 우리 나라 문화이다. 가장 비극적인 희극이 저 유명한 병자호란이다. '대명사대(大明事大)를 내세우다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를 했던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군자(?)로서 의(義)를 중시했고 일본과 중국과 서양인은 소인(?)이어서 이(利)를 중시했던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 박정희가 산업화를 민주화보다 앞세웠으니 군자(?)인 지식인에게 그가 소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죽어도 용서 못할 악인(惡人)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빈국이었다고 하지만 그 당시에도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한 대부분의 지식인과 달리 눈앞의 이익, 곧 먹고사는 문제가 그 어떤 것보다 절박했던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는 구세주였던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가방 끈은 짧으나 슬기로운 서민(실리파)의 대부분은 박정희를 지지하고 가방만 클 뿐 남의 나라 이론만 잔뜩 외고 있는 지식인(명분파)의 다수는 박정희를 증오하여, 말싸움에서는 항상 지식인들이 이기지만, 박정희 팬은 그가 살았을 때나 죽었을 때나 거의 변함이 없다. 현역을 포함해서 역대 대통령 중 인기도는 압도적으로 1등일 뿐 아니라,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3위 안에 들어간다.
우리 문화가 얼마나 '독특'했는지, 임진왜란을 겪은 지 불과 한 세대 만에, 정묘호란을 겪은 지 겨우 9년 만에 배달 민족으로서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했던 것이다.
청나라나 명나라나 다 중국 '되놈' 나라라는
'실리'적인 사고를 그 당시 우리 조상은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설령 있다고 해도 성리학이 아닌 이론보다 실천을 중시하는 양명학을 공부한 극소수의 유학자뿐이었다.
그래도 후세 사가(史家)들은 공정하여 삼전도에서 머리를 조아린 그를 일러 바보 왕이라고 했다. 영국에는 John, the Fool(바보왕 존)이라고 했지만, 우리 조상들은 '어진', '마음씨 좋은'이란 인조(仁祖)라는 말을 썼다. 고려의 인종(仁宗)도 그냥 그런 시호를 받은 게 아니다.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인 기묘한 관계의 이자겸에게 휘둘려 왕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묘청이란 자까지 나타나서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허둥지둥했던 인간이었다.
물론 이 '仁'자는 '바보'란 뜻이다. 맹자가 예를 든 송양지인(宋襄之仁)의 '仁'자가 바로 '바보' 인자다. 우리 조상이 역시 문화 민족임에는 틀림없다. 학문 수준 자체는 아주 높아서 무식하게 '바보 왕(愚祖)'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걸 보면 요사이 우리 네티즌들은 이제 한국 문화보다 서양 문화에 더 친숙해진 듯하다. 어찌나 입들이 험하신지.
[왜 독일과 중국은 통일 전에도 교류하는데 우리는 못할까]
'명분' 문화와 '실리-명분' 문화가 대표적으로 잘 드러나는 게 남북한 관계와 중국-자유중국의 관계이다. 우리는 명분에 얽매여 (이 현상은 의식 구조가 거의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는 북한이 훨씬 심하다) 편지 한 장 주고받지 못한다.
서로가 민족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는 데 한 치의 양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김영삼 정권 이래로 우리가 손을 내밀어 해결의 기미가 많이 보이지 않느냐고 강변하고 싶겠지만, 7년이 지난 지금 도대체 조금이라도 나아진 게 있는가. 우리가 퍼 주고 욕 얻어 먹은 것밖에 없다. 많은 희망들을 갖고 있지만, 어림도 없는 말이다. 이건 명분 문화를 이해 못하면 죽어도 풀 수 없는 고등 수학이다.
명분 문화에서는 어느 한 쪽이 항복을 해야 문제가 풀리게 되어 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약자는 희망을 잃지 않고 끈질기게 버틴다. 병자호란을 다시 생각해 보라.
[명분 문화의 특징]
명분 문화에서는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면까지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확보한 한 쪽이 손을 내밀면 그 때는 화해를 할 수 있다. 어디를 봐도 허점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반칙왕에서 멍청한 송강호에게 그랬듯이 목조르기(head lock)를 걸어 꼼짝 못하게 해 놓은 후 슬슬 달래야 한다. 까불면 즉시 다시 헤드 락에 들어가야 한다.
단, 말을 듣기 시작하더라도 절대 인격적 모독을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조금만 숨을 돌리면 즉시 죽기 살기로 덤빈다. 인격적 모독을 당하게 되면 아무리 많이 줘도 더 이상 받지 않는다. 자존심 상하고 받느니 차라리 칵 죽어 버리는 게 우리 나라의 명분 문화다.
--대추 먹고 이빨 쑤신다.
우리 나라 사람은 실같이 가느다란 허점이 보여도 죽어도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덤비는 정말 집요한 민족이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북한이 경제는 한국한테 상대가 안 되지만, 군사는 한국과 주한 미군을 합해도 밀리지 않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자폭할 힘만 있어도 우리가 내민 손을 절대 잡지 않는다.
명분 문화에서 그것은 곧 항복이기 때문이다. 명분을 희생하고 실리만 취하는 짓은 죽으면 죽었지 한국인은 못한다. 절대 못한다. 낯간지러워 못한다.
[명분 문화를 이해해야 남북 문제가 풀린다]
경수로 건설, 금강산 관광, 식량 지원, 비료 지원 등을 보고 작은 물꼬를 텄다고 좋아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은 북한으로 봐서는 적을 항복시키고 챙긴 전리품일 뿐이다.
잠수정 침투시키고 대포 쏘고 원자탄 개발하고 미사일 발사하니까, 남조선 괴뢰 도당뿐만 아니라 미제국주의자도 벌벌 떨면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바리바리 갖다 바친 것으로 되어 있다.
안 받을까 봐 안달을 해서 성의가 하도 '괘씸해서' 마지못해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남조선과 미제국주의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화국'에 갖다 바친다는 건 전세계가 다 아는 사실로 되어 있다.
잘 지켜 보라. 김정일 정권은 민간인과의 교류는 철저히 차단한다. 민간인끼리의 교류가 없는 한, 햇볕 정책은 바보같이 일방적으로 빼앗기는 '죽을 꾀'에 지나지 않는다. 조조가 제갈공명한테 소나기같이 쏜 화살이 사람은 하나도 다치지 못하고 돛에 다 꽂혀서 그대로 다시 자기한테 날아간 것과 같은 '죽을 꾀'인 것이다.
김정일의 정권 다지기에 이용될 뿐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민간인끼리의 자유로운 교류를 허용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내민 손을 잡는 행위 곧 '화해의 물꼬'인 것이다.
[민간 교류가 없으면 화해가 아니다]
우리가 도와 준 것이 물꼬가 되려면 그 반대급부를 반드시 요구해서 받아내야 한다. 그 반대급부란 게 우리로 봐서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북한으로서는 엄청난 양보이다. 이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것이 바로 화해의 물꼬다. 이산 가족 면회소나 편지 주고받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절대 한꺼번에 될 리는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제3국에 면회소를 설치하는 것이 좋다.
편지 주고받기도 절대 한꺼번에 하려고 하면 안 된다. 판문점에 우체통을 설치해서 이산 가족 중 힘이 없는 노인들부터 이용하게 하는 게 좋다.
[중국과 자유중국의 민간 교류]
중국인들은 어떤가? 우리와 전혀 딴판이다. 아직까지 3불(不) 정책이라 하여 명분상으로는 교류, 접촉, 통신을 할 수 없지만, 등소평의 개방 개혁 정책으로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자, '실리'가 있다고 생각 들자 자유 중국 사람들은 마음대로 중국에 드나들면서 중국에 대대적으로 투자한다. 미국, 일본보다 투자를 많이 한다. 연 2백만 명 자유왕래에 연 2억통의 전화통화, 30만명의 대만인 중국거주, 총400억불의 투자(1999년 기준) 등이 현주소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명분상으로는 절대 자유중국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의 성(省)일 따름이다. 국가간의 교류 즉 외교는 허영하지 않는다. 형식적으로는 명분을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민간 교류는 얼마든지 허용한다. 실리-명분 문화이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한국, 자유 중국, 홍콩, 싱가포르를 아시아 신흥공업국이라 하는데, 전에는 닉스(NICS)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니스(NIES)라고 한다. New Industrializing Countries가 New Industrializing Economies로 바뀌었다. 중국의 입김 때문이다. 홍콩과 자유 중국이 국가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Economies라고 한다. 이것은 '경제권'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중국은 아주 명분을 중시한다. 그러면서도 이익이 있으면 이 명분을 그대로 둔 채로 제까닥 실리를 챙긴다. 서양과 똑같다. 미국을 보라.
인권을 엄청나게 내세우면서도 어디까지나 국가 이익과 관계될 때만 이것을 무기로 휘두른다. 쿠르드족에게 언제 관심이라도 두던가? 티베트의 인권에 대해 공식적으로 왈가왈부하던가? 김일성의 인권 탄압에는 한 마디도 않고 박정희의 인권 탄압에는 왜 그리 미국이 길길이 뛰었던가? 수백만이 죽이고 죽은 나이지리아 내전에 간섭하던가? 동티모르에 왜 호주가 제일 관심이 많을까?
이런 걸 이해 못하면 미국이 박정희를 그렇게 성토하다가 광주학살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을 지지한 이유를 영원히 이해 못한다. 그러면 죽어서도 미국에 대해 이를 북북 갈 수밖에 없다.
미국은 또 그러한 한국의 민주화 세력을 도무지 이해 못한다. 미국에게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하고 남의 나라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실리를 위한 명분일 뿐이다. 그러므로 만약 명분을 내세우다 실리를 잃을 것 같으면 언제든지 그 명분을 버리고 실리를 취한다. 미국이 나쁜 나라라서 그런 게 아니다. 그들의 문화가 그렇다. 이걸 이해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중국이나 서양에게 명분은 실리를 취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한국인에게는 명분이 정의를 실현하는 목적 그 자체인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카터의 인권과 김영삼·김대중의 인권은 그 개념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대륙에 간 자유중국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모택동'이 어떻고 '등소평'이 어떻고 '문화혁명'이 어떻고 '천안문 사태'가 어떻고, 하며 입을 가볍게 놀리지 않는다. 그러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 '명분'의 서슬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명분'의 틀에는 손도 안 대고 '실리'만 쏙 빼간다.
[한국과 북한 관계]
우리 나라 사람은 절대 그렇게 못한다. 입이 근질근질하다. 참다 참다 못해서 '김정일'이 어떻고 '김일성'이 어떻고 기어코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곤욕을 치르는 사람이 꼭 나온다. 우리 나라 사람치고 금강산 구경 갔다가 '금강산은 과연 천하절경이로구나'라는 느낌만 갖고 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거기 한 명도 안 보이지만, 독재 치하에서 굶어 죽어 가는 동포를 생각하며 다 속으로는 눈물을 흘린다. 김일성 부자에게 이가 빠질 정도로 이를 빡빡 간다. 안 그러면 그는 한국인이 아니다. 아마 미국에 입양된 사람일 것이다.
표현만 안 했을 뿐 다른 사람도 모두, 속에 있는 말을 슬쩍 내비쳤다가 십년 감수한 문영미와 같은 마음이다.
금강산 절경을 영원히 버려 놓은 큰 바위의 큰 글씨를 보고, '천출장군의 천출을 사전에서 찾으면 천출(賤出) 곧 천한 신분 출신이란 말밖에 안 나온다, 아마 천출(天出) 곧 하늘이 낸 뜻으로 쓴 모양인데 영 이상하다'라는 말을 했다가 혼난 한 공무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인은 절대 그렇지 않다. 모택동이나 등소평은 전혀 생각도 않는다.
--야, 동정호 아름답구나.
--야, 계림 좋구나.
--아, 저기가 적벽대전이 벌어졌던 곳이구나, 뭐 별로 안 크네.
--만리장성, 자금성 --역시 우리 중국 '살람' 위대해.
--중화민족 만세.
--중국 문화는 세계 제일일 수밖에 없어. 아, 자부심 느껴지네.
중국인들은 이처럼 철저히 소시민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 '실리'가 뭔지 안다.
누구나 '영웅'의 기개가 있는 우리 한국 사람은 절대 그렇게 쫀쫀한 생각을 하며 관광만 즐기지 못한다.
오늘날 탈북자가 수십만 명 떠도는 만주에서 이 '영웅'들의 정의감이 잘 나타난다. 생명과 인권만 보장해 주는 걸로는 도무지 만족 못한다. 틈만 나면 '김정일'을 물고 늘어진다. 배부르게 해 주는 '실리' 그건 눈에도 안 찬다. '김정일'을 욕하지 않고는 못 참는다.
속으로 끊임없이 욕하다가 주위를 둘러보고 안 잡혀 갈 것 같으면 속사포같이 욕을 해댄다. 그러다가 숨어서 보던 북한 안전원에게 잡혀 조금 과장하면 철사 줄에 코가 꿰어 북송된다. 철저한 '명분' 문화다.
이 점에서 소망 교회의 곽선희 목사, 옥수수 박사 김순권, 두레 마을의 김진홍 목사은 참 넉넉한 분들이다. 새 시대의 지도자들이다. 우리 문화의 단점을 뛰어넘은 대단한 분들이다.
이분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서양의 기독교 문화를 내면화시켰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들은 명분 문화의 병폐를 자기도 모르게 극복하고 속으로는 북한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절대 그런 허튼 말을 않고 철저하게 실리를 취할 줄 알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과는 달리 이들은 누구보다 김정일 정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걸 철저히 숨길 줄 안다.
우리의 명분 문화와 서양의 '실리-명분 문화'의 장점을 다 갖춘 것이다. (이를 '명분-실리' 문화라고 하자.) 그래서 이들이 미래 한국의 지도자 상이라는 말을 한 것이다.
명분 문화가 문제가 있다고 해서 이걸 그냥 버리고 서양 문화나 중국 문화를 곧이곧대로 모방한다면 이미 그 사람은 서양이나 중국의 문화적 식민지 주민으로 전락한 사람이다.
이처럼 명분 문화에서는 주는 것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개인들이 절대 그 사회에 들어가서 명분에 먹칠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바로 죽음이다. 개죽음이다.
[독일의 실리-명분 문화]
통일 전의 독일은 어떠했는가. 중국과 똑같았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서로가 인정하지 않았지만(명분), 서독과 동독은 1972년 브란트의 '동방 정책(Ostpolitik)' 이후 거의 제한 없이 민간 교류, 경제 교류를 했던 것이다(실리).
아니 그 이전부터 민간인 교류는 꾸준했다. 1964년 11월 동독각료이사회에서 연금수령자가 4주간 서독을 방문할 수 있게 허용함에 따라 매년 1백만 이상이 1인당 100마르크를 받고 서독을 방문했던 것이다. 1970년에 이르면 서독인의 동독 방문 265만 명, 동독인의 서독 방문이 105만 명이나 되었다. 그러다가 저 유명한 동방정책(Ostpolitik)이 동독의 손과 마주치는 1972년에 '통행조약'이 발효된 이후에는 연금생활자 이외의 동독인도 긴급한 사유가 있을 때는 서독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서독에서 동독을 방문하는 것은 그 이전부터 거의 자유로웠고. 마침내 통일 직전인 1988년에는 동독에서 서독 여행이 675만 명, 서독에서 동독 여행이 667만 명이나 되었다. 사실상 동서독은 민간인 입장에서 보면 1972년에 통일된 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실리-명분 문화인 것이다. 중국과 똑같다.
다만 베를린 장벽을 몰래 뛰어넘는 놈에게는 사정없이 총을 갈겼다. 명분은 아직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실리-명분 문화는 명분과 실리를 구분할 줄 아는 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필요하면 이 둘을 분리해서 따로따로 취하되, 실리를 우선하는 문화인 것이다.
(기껏 100명씩 금강산에서, 호텔에서 이산가족을 만나게 해 주고는 온갖 생색을 다 내는 북한과 비교해 보라. 그네들과 우리 문화는 판이하다. 명분 문화에서는 서로 평소에 이미 다 알고 있고 매일 마주쳐서 숨길 수 없는 사이가 아닌 한, 부끄러운 것이 있을 때는 절대 보여 주지 못한다. 그건 목숨을 내놓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실지로 그 날로 모든 것이 무너진다. 북한의 현실을 너무도 잘 알지만, 그것을 대외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 대문을 열고 보여 주지 않는다. 이산가족의 자유로운 만남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한국의 명분 문화는 명분과 실리를 분리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어떤가. 1972년 박정희 정권 시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했고, 1991년에는 노태우 정권의 북방 정책에 의해 역사적인 '남북 합의서'까지 서명했지만, 한 발짝도 더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같은 해에 간접적으로 서로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당당한 주권국으로 UN에 동시 가입까지 했지만 실질적으로 아무 변화가 없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김영삼 전대통령 이후 경수로 건설이다, 금강산 개발이다 뭐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민간 교류를 차단한 상태에서 행해지는 일이다. 그것을 무슨 역사적인 쾌거라고 하는 것은 10년 결산 코미디 MVP 감이다.
어디까지나 한국이 '조공'을 바치는 형식이다.
편지만 마음놓고 주고받을 수 있으면, 그게 금강산 관광이나 경수로 건설보다 100배는 나은 햇볕 정책이다.
왜 독일인도 하고 중국인도 하는데, 우리는 못하는가?
그것은 꼭 정치를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외교 정책을 잘못 써서 그런 것도 아니다. 물론 그런 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 주로 문화 차이 때문에 그런 것이다. 문제는 이 문화 차이를 연구하지 않고 서양의 정치 이론, 외교 이론을 그대로 흉내냈기 때문에 안 된 것이다.
[북한이 민간인 교류를 허용하지 못하는 속사정]
김정일 정권은 민간인들이 하다 못해 이산 가족들이 왜 편지 한 통 못 주고받게 할까. 비공식적으로 지극히 예외적으로 할 수밖에 없도록 할까.
그것은 명분 문화의 취약점 때문에 그렇다.
진실은 순식간에 밝혀지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명분 문화의 특징은 똑똑함과 평등함이다]
잠시 명분 문화의 특징에 대해 얘기해 보자.
명분 문화 속에 사는 사람은 명분에 대해 누구나 배워야 한다. 그래서 다들 '똑똑하다'. 서울역 노숙자들도 박정희, 김대중이, 김영삼이, 김종필이와는 오랜 친구 사이다. 이회창이와 이인제, 노무현이는 새로 사귄 친구다.
명분을 아는 사람은 명분을 모르는 사람과 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끼리는 마음속으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지위가 높을수록 자기와 비슷하다고 보고 그들에 대해 관심이 지대하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심리적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명분 문화의 특징은 '똑똑함'과 '평등함'이다.
[명분 사회에서의 똑똑함은 일반적인 것이지 전문적인 것이 아니다]
외국 사람이 한국 사람보고 놀라는 것은 어찌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리도 똑똑하냐는 것이다. 일자 무식자도 정치에 관한 말을 하면 정치학자 못지 않은 말이 술술 나온다. 또한 높은 사람들을 어찌 그리 잘 아느냐는 것이다. 장관과 국회의원은 막내 동생 친구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나 쩨쩨한 경제 이야기, 과학 이야기, 기술 이야기, 연주회 이야기, 전람회 이야기 등이 나오면 대범하게 입을 꾹 다문다. 친구 사이인 전직 대통령이나 여러 국회의원도 이런 쩨쩨한 것들은 잘 알지 못한다. 역시 친구끼리는 서로 닮는가 보다.
돈이 되는 주식, 부동산 이야기만 나오면 여기도 대단한 사람들이 즐비하다.
발언 차례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아, 또 있다. 기아, 삼성, 대우, 현대, SK, LG, 한보 이들의 회장들을 오랜 지기로 사귀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경제 문제도 굵직굵직한 노동법, IMF, 금융 개혁, 부채 비율 200% 맞추기, 실업 대책 등에 대해서는 한 번 입이 열렸다 하면 밤을 새운다.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조금이나마 꺼내려고 하면, 술을 5차까지는 가야 한다.
[명분 문화에서는 명분을 잃으면 누구든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다]
명분 문화에서는 일단 진실을 알게 되면 국민을 기만한 자는 순식간에 국민 마음속에는 개돼지가 된다. 그는 명분을 모르는 자이기 때문이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그가 명분을 잃었다 싶으면 그가 아무리 높아도 절대 자기 윗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발가락 사이의 때'일 뿐이다. 단지 힘이 없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기회만 와 봐라.
오로지 권력으로 명분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아랫사람을 누른 사람은 그 권력이 떨어지는 순간 '골목 강아지', '주막 강아지'가 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라도 사람들이 그가 내세운 명분이 사실은 허위라는 것을 알게 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어제 아침까지도 벌벌 기던 사람도 동조자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완전히 딴 사람이 된다.
[한국의 민주화는 왜 그리 격렬했을까]
우리 나라의 격렬한 민주화 운동을 생각해 보라.
12년 동안 학교에서 아무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가르쳐도 MT 가서 선배들에게 사흘만 '진실'에 대해서 배우게 되면, 당장 화염병을 들고 길거리로 뛰쳐나간다.
'진실'이라는 명분을 얻는 순간 아무리 부모가 말려도 듣지 않는다. 가정은 국가가 있고 난 다음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살 꽃다운 나이로 참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기꺼이 '분신 자살'을 한다.
--민주주의 만세! 민주주의여, 영원하라!
부모님,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
그 다음에는 그 부모 차례다. 독재자에게 감연히 맞서 싸운다.
--내 아들아, 장하다. 종철아, 장하다. 한열아, 장하다.
네가 못다 이룬 꿈 이 아비, 어미가 이뤄 주겠다.
우리 천국에서 웃으며 만나자.
그 때 꼭 부둥켜안고 실컷 울자꾸나.
독재자, 물러가라!
정부가 '산업화'라는 '실리'를 아무리 안겨 주어도 '민주화'라는 '명분'이 약하면 국민은 노도와 같이 일어난다. 힘의 누수가 조금만 보이면 벌떼같이 일어난다. 정말 무서운 민족이다.
[김정일은 국민이 진실을 아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이걸 김정일 정권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국민을 극심하게 탄압하는 것은 '국민이 너무 무섭기 때문에' 그런 거다. 주체사상이라는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진 '명분'이 사실은 다 말짱 헛것임을 국민들이 모두 알게 되는 순간 내일 당장 굶어 죽을지라도, 당장 총살을 당할지라도 일제히 일어나게 되어 있다.
60년 동안 아무리 세뇌를 해도 한국인에겐 안 통한다. 단 하루면 깨닫는다. 한국인은 이렇게 머리가 좋은 것이다.
[김정일은 한국, 일본, 러시아, 중국, 미국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김정일 정권은 바로 이것이 두렵다.
명분 문화의 이런 폭발적인 취약성 때문에 그는 발가락 하나 꼼짝달싹할 힘만 있어도 절대 민간인끼리의 교류를 허용하지 않는다. 도망 간 놈은 악착같이 따라가 잡아와서 족친다. 남의 나라 법도 조금도 겁내지 않는다.
조선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것이다. 피죽도 못 먹어 숨이 넘어 가는 사람도 그가 조선 사람이면 마주 보기가 두려운 것이다. 조금도 틈을 주지 않고 하늘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잡아와야 할 이유가 바로 거기 있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이 제일 두려워하는 상대는 절대 미국이나 한국이 아니다. 중국도 러시아도 일본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무리 그들의 군사력이 강하고 경제력이 대단하다 해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상대는 바로 아무 힘없고 시키는 대로 하는 저 북한 인민이다. 김일성 동상 앞에서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눈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저 조선 인민들이다. 이들을 호랑이보다 더 무서워한다.
[북한 주민이 개방을 통해 진실을 아는 순간 북한 정권은 무너진다]
주체사상이라는 '명분'이 '엉터리'임을 인민들이 일시에 알게 되는 순간,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김일성 부자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조직이고 뭐고 필요 없는 것이다. 60년 동안 속았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북한 전체는 아수라장이 된다는 것을 김정일 정권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다른 나라 사람이야 외국에 숨으면 되지만, 한국인은 악착같이 물귀신처럼 제 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수백 수천 명이 저승사자로 줄줄이 찾아간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두렵다. 갈 데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김정일 정권은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9회말 역전 홈런을 노리고 호시탐탐 전쟁의 기회를 노릴 게 틀림없다.
명분 문화를 이해하면 이걸 짐작하는 게 과히 어렵지 않다. 아마 내 글을 읽는 순간 김정일은 혼비백산할 것이다.
[주체 사상의 허구성은 김일성 부자가 제일 잘 안다]
주체 사상이 허위라는 것을 김일성 부자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만약 그것이 '진짜'라면 북한은 옛날에 개방을 해서 아무 정보나 다 북한으로 들어가게 했을 것이다. 진실은 허위가 아무리 인해전술을 써서 밀려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이 햇빛이라면 허위는 안개인 것이다.
런던의 안개가 제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나폴리의 햇빛한테는 꼼짝 못하는 법이다.
[명분에 대한 끝없는 집착]
한국인이 마음속으로 명분을 잃었다 싶으면 그를 얼마나 증오하는지는, 옛날에 박정희를 그렇게 욕하던 미국의 TIME 지가 1998년 8월에 20세기 아시아 위인 20인 중 한 사람으로
그를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손꼽았지만,
코방귀도 안 뀌고 지금도 이를 부득부득 갈다가 잠을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박정희에게는 민주주의라는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끈질김은 장기수에게도 잘 나타난다. 죽으면 죽었지 공산주의라는 명분을 버리지 않는다. 공산주의가 좋다는 생각을 했으면 그건 바로 그의 종교가 된다. 30년, 40년, 50년을 독방에서 살아도 종교가 변할 리 없다.
이게 바로 명분 문화다.
만약 남북의 민간인들이 전면적으로 편지를 마음대로 주고받기만 해도 우리 나라는 1년은커녕 한 달도 못 되어 통일되어 버릴 수 있다.
'명분'이 엉터리라는 진실을 알게 되면 하루아침에 뒤집어엎어 버리는 게 우리 나라의 민족성이다. 바꾸기까지는 무척 힘들지만, 일단 '임계치'에 도달하면 화산이 폭발하듯이 천지개벽을 시키는 민족이 바로 한민족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갑갑하다면서 그렇게도 안 쓰던 안전띠를 한국인들은 어느 순간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질 즈음해서 단속을 강화하자 거짓말같이 운전자들이 안전띠를 착용했었다.
쓰레기 분리 수거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적 공감대가 성립되자 사람들이 일시에 쓰레기를 분리 수거했던 것이다.
[한국의 지도자들도 무의식적으로 국민을 매우 두려워한다]
북한의 김정일만이 아니라 우리 지도자들도 사실은 국민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 마음이 일제히 돌아서는 순간 누구도 못 말린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것이 거짓이든 참이든 명분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그 명분에 매달린다. 그들의 명분을 자기 지지자들조차 안 믿게 되는 순간을 그들은 제일 두려워한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에 적극 동조하는 사람이 많은 한 아무리 반대자가 격렬하게 반대하더라도 그들은 당당하다. 그러나 자기들의 명분에 동조하는 사람이 없어지는 순간, 그들의 정치 생명이 끝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명분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매달리는 것이다. 국민이 두렵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더 명분에 매달리고 권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한중일 세 나라 국민이 위기에 처하면]
한중일 세 나라 국민이 위기에 처하면 어떠한가를 예화를 통해 살펴보자. 한국의 명분 문화와 일본의 실리 문화, 중국의 실리-명분 문화가 잘 나타난다.
왜놈들이(지금은 일본인) 한국인 독립 운동가를 잡았다. 잡고 보니 너무 한심했다. 꾀죄죄한 촌로였다. 갓을 갖추어 쓰긴 썼으나 다 헤졌다. 옷도 깨끗이 빨기는 했으나 곳곳에 기운 흔적이 역력했다. 그래서 훈방이나 하고 보내 줄 생각을 하고 몇 마디 호통을 쳤다.
그 순간 그 노인은 눈을 지긋이 감았다. 자세를 꼿꼿이 하고 꼼짝도 않았다. 아주 태도가 불손했다. 갑자기 열이 받혀서 그만 냅다 정강이뼈를 걷어찼다. 욱, 하더니 푹 고꾸라졌다.
그래도 이 영감은 눈을 안 뜬 채 다시 자세를 꼿꼿이 했다. 사정없이 걷어차고 주먹으로 때렸다. 신음 소리만 할 뿐 눈을 끝내 안 떴다. 말도 한 마디도 않았다.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나중에는 인사불성이 되었다. 이윽고 때리던 놈이 지쳤다. 마지막으로 딱 한 마디만 묻겠다면서 20대 초반의 새파란 왜놈이 한 마디했다.
--너, 독립 운동했지? 누구랑 같이 했어? 다 알고 있으니 솔직하게 말해.
마침내 노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딱 한 마디 했다.
--너희 천황을 불러 오너라. 그러면 내가 말하겠노라.
왜놈들이 모두 기절초풍했다. 자기들은 경찰 서장만 해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데, 도대체 거지같은 영감이 그런 어마어마한 말을 하다니!
노인은 끝내 맞아 죽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그는 독립 운동한 적도 없었다.
--일제 시대에 맞아서 장독(杖毒)에 걸려 죽은 사람이 무려 100만 명이라고 역사학자 조동걸 교수가 말씀했다. 후유증으로 해방 이후에 죽은 사람까지 포함해서 한 말이다. ---
왜놈들이 거물 항일 투사를 잡았다. 중국인이었다. 왜놈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심문에 들어갔다.
--너 대일본제국에게 덤볐지?
--예예예,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아주 비굴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 영웅은 무릎을 탁 꿇고 손으로는 싹싹 빌었다. 왜놈들은 갑자기 맥이 빠졌다. 뭐 저 따위가 있어?
--너 이 녀석, 사내자식 맞냐?
--예예예,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이젠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싹싹 빌었다. 왜놈 한 놈이 그에게 침을 탁 뱉었다. 중국의 영웅은 얼굴에 묻은 침을 닦을 생각도 않고 계속 빌었다.
--뭐 이 따위가 있어.
--예예예,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마침내 왜놈들은 그에게 일제히 침을 뱉고는 엉덩이를 세게 한 번 차고는 내쫓았다. 아무래도 가짜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 1000미터쯤 비실비실 걸어갔을까, 그 중국인은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도망을 갔다.
--야, 이 쪽발이들아. 기다려라. 내일 이 어르신이 네놈들 다 죽여 주마.
그는 언제 나타났는지 말을 몰고 온 부하들과 쏜살같이 달아났다.
--그는 알고 보니 진짜 거물이었다.---
왜놈들이 2차 대전에 패전하고(일본인은 절대 패전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종전(終戰)이라는 말을 쓴다.) 전범 재판이 있었다. 패하게 되면 1억 명이 옥쇄한다니 어떠니 하더니 자결한 놈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너 OO지? 너 조선에서 사람 많이 죽였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저는 명령대로 했습니다.
저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너 XX지? 너 중국 남경에서 무고한 사람을 학살했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저는 명령대로 했습니다.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모조리 이런 식이었다. 모두 책임을 위로 미루고 자기는 아무 죄가 없다고 했다. 육군 원수까지 그랬다. 그들은 '진' 것이지 '잘못'했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항복했으면 되었지 죄를 묻는 것이 그들에겐 참 이상했다.
대신 그들은 패배한 자로서 승자인 미국에게 절대 복종했다. 승자가 새로운 상관이요 주인이었다. 법이고 정책이고 그들이 만들어 주는 대로 군말 없이 따랐다.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도 미국이 시키는 대로 했다. 패자가 승자의 말을 듣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야 가장 많은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 일본 문화가 일본인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다. 그들의 문화는 '강약'의 사고 체계에 바탕을 둔 철두철미한 '실리' 문화이다.
일본 문화에서 '강(强)'은 '선(善)'이고 '약(弱)'은 '악(惡)'이다.
그들은 절대 거창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고 설령 큰 목표를 세워도 차근차근 벽돌 쌓아 올리듯이 일한다. 매일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내일부터 한다며 빈둥빈둥거리는 사람이 많은 한국인과 전혀 다른 민족이 일본인이다.
일본인은 군인이면 바로 위 상관의 말만 따른다. 이유가 없다. 무조건 복종이다. '너, 저 굴속에 들어가 있어!'라고 하면 10년이고, 20년이고, 30년이고 그 안에 죽을 때까지 들어앉아 있다.
지금도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에 2차 대전 때 굴속에 들어가서 몰래 나무 열매 따먹으며 틀어 박혀 있는 사람이 일본 군인이 있을지 모른다. 30년 토굴 생활한 사람은 여러 명 나왔다. 한국인 같은 융통성이 그들에겐 없다.
이것이 사회 생활을 할 때는 법과 질서를 잘 지키는 걸로 나타난다. 민주 시민 사회의 미덕이 된다.
어쩌면 독일 전범 재판할 때도 일본의 경우와 똑같았다고 한다. 두 문화가 흡사하다는 증거이다. 상무 정신과 장인 정신이 몸에 밴 실리 문화인 것이다. 다만 독일은 기독교 문화의 영향으로 명분을 일본보다는 훨씬 중시한다.
문화란 것이 이렇게 사람을 온통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새로운 문화가 용틀임하고 있다]
[신바람과 한(恨)]
한국인의 명분 문화는 모든 사람을 똑똑하고 평등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기(氣)를 팍팍 살려 주어야 한다.
이 기(氣)를 살려 주면 한국인은 신바람이 나서
간이라도 빼주지만
이 기(氣)를 누르면 한(恨)을 품고
산 사람의 간이라도 빼 먹으려 한다.
한국인은 누구나 영웅의 기개가 있다. 지위로 보아 위에 있는 사람은 아랫사람들의 가슴 가슴에 응어리진 이 영웅의 기개를 존중해 줘야 한다.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
그렇게 영웅 대접을 해 주면
한국인은 신바람을 일으켜
일요일도 없고
밤도 없이
스스로 알아서
자진해서
몰래몰래
가족도 안 돌보고
온갖 머리를 다 짜내어
젖 먹던 힘까지 다 끌어 올려
상상을 초월한 일을 한다.
지위로 보아 아래에 있는 사람은 큰 뜻은 가슴에 묻어 둘 줄 알아야 한다. 지위만 높을 뿐, 돈만 많을 뿐 속에 든 것은 욕심밖에 없는 소인배들하고 쓸데없이 다툴 필요가 없다.
하나하나 실리를 챙겨 훗날 자기가 진짜 영웅임을 보여 주어야 한다. 아니꼽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들을 오히려 어린애같이 생각하고 '재미있다' 생각하고 불쌍하게 생각하고
묵묵히 영웅의 길을 가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큰 뜻을 실현할 날이 온다. 분하다고 칵 죽지 말고 낑낑낑 살아서 먼 훗날 자기가 영웅임을 입증해야 한다.
유교의 명분 문화를 버릴 게 아니다. 버릴래야 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 장점을 취하면 된다. 명분 문화의 장점은 일반론적인 면이지만 누구나 똑똑하게 만들고, 모든 사람을 마음속에서지만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실지로 그렇게 만들면 된다. 진짜 똑똑하고 진짜 평등하게 만들면 된다.
똑똑함이 일반론적 똑똑함이 아니라 각론적인 똑똑함을 갖추면 누구도 만만히 볼 수 없는 '전문 지식'이 된다.
명분 문화의 사람은 시야가 넓고 높기 때문에 일단 어떤 분야에 전문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좁고 낮은 시야를 가진 실리 문화의 사람보다 발전 속도가 월등하다.
평등도 마찬가지이다. 이 평등을 마음속에만 머물게 하여 가슴 가득 울분만 가득 차게 할 게 아니라 실지로 평등하게 대우해 주면 된다. 한국인은 누구나 잠재적인 영웅이기 때문에 충분히 평등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자기가 낮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력으로 윗사람을 압도하면 된다. 그러면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그 실력이라는 것이 정보화 시대에서는 바로
'정보와 지식'이다.
이 정보와 지식으로 무장하면 누구도 무시하지 못한다.
권력도 지위도 돈도 이 정보와 지식에는 굴복한다.
그런데 이 정보와 지식은 더 이상 일반론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일반론적인 정보와 지식도 있지만, 이것을 높은 수준에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은 천재밖에 못한다. 천재는 타고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
일반 상대성 원리는 천재 아니면 죽었다 깨어나도 깨우칠 수 없다. 그런 일반론적인 지식을 맨 처음 알아내는 일은 천재의 고유 권한이다. 천재도 밥 먹고살게 해 주어야 안 되겠나.
더 이상 이런 거창한 일반론을 만들어 내어 노벨상을 받겠다는 헛된 망상을 꿈꾸며 4천만이 잠을 못 이루면 안 된다. 그건 천만 명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하는 천재에게 맡겨야 한다.
그러나 영웅은 누구나 될 수 있다. 현대의 영웅은
남들이 갖지 않은 전문 정보와 지식을 끊임없이 소유해 가는 사람이다. 이런 영웅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될 수 있다.
둔재라도 노력만 하면 영웅은 될 수 있다. 둔재가 주제를 모르고 천재 흉내를 내다가는 '돌 아이'가 된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은 일반 정보와 지식이 아니라 전문 정보와 지식으로 무장하여 정보화 시대의 영웅이 되면 된다. 그러면
평등한 대우는 광속도로 뒤쫓아온다.
이렇게 현실 사회에서도 평등한 사회를 누리게 되면, 마르크스가 그렇게 꿈꾸던 평등 사회가 아무 갈등 없이 실현될 수 있다. 강제적인 평등은 강제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또 다른 소외를 낳게 된다.
마르크스의 꿈을 전혀 다른 방법으로 우리 한국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영웅이 됨으로써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똑똑함은 자유를 먹고사니까 자유는 당연히 누리게 된다. 마르크스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자유와 평등의 결합이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게다가 기독교 문화의 영향으로 모두 서로 사랑하게 되면(기독교인이 되라는 말이 아님)
프랑스 혁명 이후 삼색기로 나부끼기만 했을 뿐, 언제나 갈등의 요소였던 자유와 평등이 한꺼번에 박애 안에서 녹아 버려 아무 갈등 없이, 소외 없이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 프랑스 혁명 이후 200년 이상 인류의 비원이었던 자유, 평등, 박애를 모두 갖춘 민주주의가 전세계에서 최초로 이루어진다.
이게 바로 천년왕국이다.
[한국의 유교 문화와 서구 기독교 문화의 결합]
나는 우리 나라에만 독특하게 극단적으로 발달한 이 유교의 명분 문화와 서구 기독교의 실리-명분 문화를 결합하면
한국이 천년 왕국이 되리라 믿는다.
일본식 실리 문화와 우리 문화는 절대 결합 못한다. 서로 상극이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교훈만 얻으면 된다. 실리가 명분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된다.
그러면 실리는 어디서 배우느냐.
서구다.
우리 나라는 정치에서는 민주주의, 종교에서는 기독교가 이미 우리에게 너무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우리는 서구화를 지향하지 일본화를 지향하지 않는 것이다.
서구화를 지향하면, 자연히 서구 문화의 핵심인 기독교 문화를 싫든 좋든 받아들이게 된다.
오늘날 서구에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희귀 인간 취급을 받지만, 그들 중에서 기독교 문화에 자유로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구 문화는 기독교 문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서구 문화를 동경하게 되면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기독교 문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은 한국의 어떤 기독교인도 유교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곽선희 목사, 김진홍 목사, 김순권 박사를 '북한 돕기 국가 대표선수'로 소개한 적 있지만, 이분들을 자세히 보면 하나같이 토종 한국인이다. 선비다. 유교의 명분 문화의 정수를 터득한 분이다. 그러면서도 철두철미한 기독교인이다. 소탈하다. 일본 사람보다 더 실리를 추구한다. 서구 기독교의 실리-명분 문화의 정수를 터득한 분이다.
한 마디로 말해 유교의 명분 문화와 기독교의 실리-명분 두 문화의 장점만 배운 사람들이다.
(왜 우리 나라 사람이 기독교라면 이를 가는 사람까지 기독교 문화를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하는 이유는 다른 기회에 말할까 한다.)
유교의 명분 문화에다 서구 기독교의 실리-명분 문화를 접합시키면, 한국은 세계를 주름잡을 수 있다. 한국형 '명분-실리' 문화로 세계를 주름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산업화를 통해 한국인도 실리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다. 아니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실리 문화를 되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삼국 시대, 통일 신라, 고려 초기의 왕성했던 실리 문화 전통이 서구식으로 근대화하면서 일본의 실리 문화와 기독교의 실리-명분 문화와의 충격적인 만남을 통해 의식 저편에 잠자던 실리 문화가 잠을 깨고 떨치고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현대화하여 세련될 뿐이다.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와
동아시아의 해상을 주름잡던 백제와
세계 최강의 당나라를 실컷 이용하고 엉덩이를 걷어차 쫓아 버린 신라의 실리 문화를 다시 무의식 세계에서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한중일 세 나라 국민이 위기에 처하면 어떠한가를 예화를 통해 살펴보자. 한국의 명분 문화와 일본의 실리 문화, 중국의 실리-명분 문화가 잘 나타난다.
왜놈들이(지금은 일본인) 한국인 독립 운동가를 잡았다. 잡고 보니 너무 한심했다. 꾀죄죄한 촌로였다. 갓을 갖추어 쓰긴 썼으나 다 헤졌다. 옷도 깨끗이 빨기는 했으나 곳곳에 기운 흔적이 역력했다. 그래서 훈방이나 하고 보내 줄 생각을 하고 몇 마디 호통을 쳤다.
그 순간 그 노인은 눈을 지긋이 감았다. 자세를 꼿꼿이 하고 꼼짝도 않았다. 아주 태도가 불손했다. 갑자기 열이 받혀서 그만 냅다 정강이뼈를 걷어찼다. 욱, 하더니 푹 고꾸라졌다.
그래도 이 영감은 눈을 안 뜬 채 다시 자세를 꼿꼿이 했다. 사정없이 걷어차고 주먹으로 때렸다. 신음 소리만 할 뿐 눈을 끝내 안 떴다. 말도 한 마디도 않았다.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나중에는 인사불성이 되었다. 이윽고 때리던 놈이 지쳤다. 마지막으로 딱 한 마디만 묻겠다면서 20대 초반의 새파란 왜놈이 한 마디했다.
--너, 독립 운동했지? 누구랑 같이 했어? 다 알고 있으니 솔직하게 말해.
마침내 노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딱 한 마디 했다.
--너희 천황을 불러 오너라. 그러면 내가 말하겠노라.
왜놈들이 모두 기절초풍했다. 자기들은 경찰 서장만 해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데, 도대체 거지같은 영감이 그런 어마어마한 말을 하다니!
노인은 끝내 맞아 죽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그는 독립 운동한 적도 없었다.
--일제 시대에 맞아서 장독(杖毒)에 걸려 죽은 사람이 무려 100만 명이라고 역사학자 조동걸 교수가 말씀했다. 후유증으로 해방 이후에 죽은 사람까지 포함해서 한 말이다. ---
왜놈들이 거물 항일 투사를 잡았다. 중국인이었다. 왜놈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심문에 들어갔다.
--너 대일본제국에게 덤볐지?
--예예예,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아주 비굴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 영웅은 무릎을 탁 꿇고 손으로는 싹싹 빌었다. 왜놈들은 갑자기 맥이 빠졌다. 뭐 저 따위가 있어?
--너 이 녀석, 사내자식 맞냐?
--예예예,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이젠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싹싹 빌었다. 왜놈 한 놈이 그에게 침을 탁 뱉었다. 중국의 영웅은 얼굴에 묻은 침을 닦을 생각도 않고 계속 빌었다.
--뭐 이 따위가 있어.
--예예예,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마침내 왜놈들은 그에게 일제히 침을 뱉고는 엉덩이를 세게 한 번 차고는 내쫓았다. 아무래도 가짜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 1000미터쯤 비실비실 걸어갔을까, 그 중국인은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도망을 갔다.
--야, 이 쪽발이들아. 기다려라. 내일 이 어르신이 네놈들 다 죽여 주마.
그는 언제 나타났는지 말을 몰고 온 부하들과 쏜살같이 달아났다.
--그는 알고 보니 진짜 거물이었다.---
왜놈들이 2차 대전에 패전하고(일본인은 절대 패전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종전(終戰)이라는 말을 쓴다.) 전범 재판이 있었다. 패하게 되면 1억 명이 옥쇄한다니 어떠니 하더니 자결한 놈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너 OO지? 너 조선에서 사람 많이 죽였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저는 명령대로 했습니다.
저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너 XX지? 너 중국 남경에서 무고한 사람을 학살했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저는 명령대로 했습니다.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모조리 이런 식이었다. 모두 책임을 위로 미루고 자기는 아무 죄가 없다고 했다. 육군 원수까지 그랬다. 그들은 '진' 것이지 '잘못'했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항복했으면 되었지 죄를 묻는 것이 그들에겐 참 이상했다.
대신 그들은 패배한 자로서 승자인 미국에게 절대 복종했다. 승자가 새로운 상관이요 주인이었다. 법이고 정책이고 그들이 만들어 주는 대로 군말 없이 따랐다.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도 미국이 시키는 대로 했다. 패자가 승자의 말을 듣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야 가장 많은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 일본 문화가 일본인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다. 그들의 문화는 '강약'의 사고 체계에 바탕을 둔 철두철미한 '실리' 문화이다.
일본 문화에서 '강(强)'은 '선(善)'이고 '약(弱)'은 '악(惡)'이다.
그들은 절대 거창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고 설령 큰 목표를 세워도 차근차근 벽돌 쌓아 올리듯이 일한다. 매일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내일부터 한다며 빈둥빈둥거리는 사람이 많은 한국인과 전혀 다른 민족이 일본인이다.
일본인은 군인이면 바로 위 상관의 말만 따른다. 이유가 없다. 무조건 복종이다. '너, 저 굴속에 들어가 있어!'라고 하면 10년이고, 20년이고, 30년이고 그 안에 죽을 때까지 들어앉아 있다.
지금도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에 2차 대전 때 굴속에 들어가서 몰래 나무 열매 따먹으며 틀어 박혀 있는 사람이 일본 군인이 있을지 모른다. 30년 토굴 생활한 사람은 여러 명 나왔다. 한국인 같은 융통성이 그들에겐 없다.
이것이 사회 생활을 할 때는 법과 질서를 잘 지키는 걸로 나타난다. 민주 시민 사회의 미덕이 된다.
어쩌면 독일 전범 재판할 때도 일본의 경우와 똑같았다고 한다. 두 문화가 흡사하다는 증거이다. 상무 정신과 장인 정신이 몸에 밴 실리 문화인 것이다. 다만 독일은 기독교 문화의 영향으로 명분을 일본보다는 훨씬 중시한다.
문화란 것이 이렇게 사람을 온통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새로운 문화가 용틀임하고 있다]
[신바람과 한(恨)]
한국인의 명분 문화는 모든 사람을 똑똑하고 평등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기(氣)를 팍팍 살려 주어야 한다.
이 기(氣)를 살려 주면 한국인은 신바람이 나서
간이라도 빼주지만
이 기(氣)를 누르면 한(恨)을 품고
산 사람의 간이라도 빼 먹으려 한다.
한국인은 누구나 영웅의 기개가 있다. 지위로 보아 위에 있는 사람은 아랫사람들의 가슴 가슴에 응어리진 이 영웅의 기개를 존중해 줘야 한다.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
그렇게 영웅 대접을 해 주면
한국인은 신바람을 일으켜
일요일도 없고
밤도 없이
스스로 알아서
자진해서
몰래몰래
가족도 안 돌보고
온갖 머리를 다 짜내어
젖 먹던 힘까지 다 끌어 올려
상상을 초월한 일을 한다.
지위로 보아 아래에 있는 사람은 큰 뜻은 가슴에 묻어 둘 줄 알아야 한다. 지위만 높을 뿐, 돈만 많을 뿐 속에 든 것은 욕심밖에 없는 소인배들하고 쓸데없이 다툴 필요가 없다.
하나하나 실리를 챙겨 훗날 자기가 진짜 영웅임을 보여 주어야 한다. 아니꼽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들을 오히려 어린애같이 생각하고 '재미있다' 생각하고 불쌍하게 생각하고
묵묵히 영웅의 길을 가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큰 뜻을 실현할 날이 온다. 분하다고 칵 죽지 말고 낑낑낑 살아서 먼 훗날 자기가 영웅임을 입증해야 한다.
유교의 명분 문화를 버릴 게 아니다. 버릴래야 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 장점을 취하면 된다. 명분 문화의 장점은 일반론적인 면이지만 누구나 똑똑하게 만들고, 모든 사람을 마음속에서지만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실지로 그렇게 만들면 된다. 진짜 똑똑하고 진짜 평등하게 만들면 된다.
똑똑함이 일반론적 똑똑함이 아니라 각론적인 똑똑함을 갖추면 누구도 만만히 볼 수 없는 '전문 지식'이 된다.
명분 문화의 사람은 시야가 넓고 높기 때문에 일단 어떤 분야에 전문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좁고 낮은 시야를 가진 실리 문화의 사람보다 발전 속도가 월등하다.
평등도 마찬가지이다. 이 평등을 마음속에만 머물게 하여 가슴 가득 울분만 가득 차게 할 게 아니라 실지로 평등하게 대우해 주면 된다. 한국인은 누구나 잠재적인 영웅이기 때문에 충분히 평등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자기가 낮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력으로 윗사람을 압도하면 된다. 그러면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그 실력이라는 것이 정보화 시대에서는 바로
'정보와 지식'이다.
이 정보와 지식으로 무장하면 누구도 무시하지 못한다.
권력도 지위도 돈도 이 정보와 지식에는 굴복한다.
그런데 이 정보와 지식은 더 이상 일반론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일반론적인 정보와 지식도 있지만, 이것을 높은 수준에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은 천재밖에 못한다. 천재는 타고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
일반 상대성 원리는 천재 아니면 죽었다 깨어나도 깨우칠 수 없다. 그런 일반론적인 지식을 맨 처음 알아내는 일은 천재의 고유 권한이다. 천재도 밥 먹고살게 해 주어야 안 되겠나.
더 이상 이런 거창한 일반론을 만들어 내어 노벨상을 받겠다는 헛된 망상을 꿈꾸며 4천만이 잠을 못 이루면 안 된다. 그건 천만 명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하는 천재에게 맡겨야 한다.
그러나 영웅은 누구나 될 수 있다. 현대의 영웅은
남들이 갖지 않은 전문 정보와 지식을 끊임없이 소유해 가는 사람이다. 이런 영웅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될 수 있다.
둔재라도 노력만 하면 영웅은 될 수 있다. 둔재가 주제를 모르고 천재 흉내를 내다가는 '돌 아이'가 된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은 일반 정보와 지식이 아니라 전문 정보와 지식으로 무장하여 정보화 시대의 영웅이 되면 된다. 그러면
평등한 대우는 광속도로 뒤쫓아온다.
이렇게 현실 사회에서도 평등한 사회를 누리게 되면, 마르크스가 그렇게 꿈꾸던 평등 사회가 아무 갈등 없이 실현될 수 있다. 강제적인 평등은 강제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또 다른 소외를 낳게 된다.
마르크스의 꿈을 전혀 다른 방법으로 우리 한국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영웅이 됨으로써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똑똑함은 자유를 먹고사니까 자유는 당연히 누리게 된다. 마르크스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자유와 평등의 결합이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게다가 기독교 문화의 영향으로 모두 서로 사랑하게 되면(기독교인이 되라는 말이 아님)
프랑스 혁명 이후 삼색기로 나부끼기만 했을 뿐, 언제나 갈등의 요소였던 자유와 평등이 한꺼번에 박애 안에서 녹아 버려 아무 갈등 없이, 소외 없이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 프랑스 혁명 이후 200년 이상 인류의 비원이었던 자유, 평등, 박애를 모두 갖춘 민주주의가 전세계에서 최초로 이루어진다.
이게 바로 천년왕국이다.
[한국의 유교 문화와 서구 기독교 문화의 결합]
나는 우리 나라에만 독특하게 극단적으로 발달한 이 유교의 명분 문화와 서구 기독교의 실리-명분 문화를 결합하면
한국이 천년 왕국이 되리라 믿는다.
일본식 실리 문화와 우리 문화는 절대 결합 못한다. 서로 상극이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교훈만 얻으면 된다. 실리가 명분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된다.
그러면 실리는 어디서 배우느냐.
서구다.
우리 나라는 정치에서는 민주주의, 종교에서는 기독교가 이미 우리에게 너무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우리는 서구화를 지향하지 일본화를 지향하지 않는 것이다.
서구화를 지향하면, 자연히 서구 문화의 핵심인 기독교 문화를 싫든 좋든 받아들이게 된다.
오늘날 서구에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희귀 인간 취급을 받지만, 그들 중에서 기독교 문화에 자유로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구 문화는 기독교 문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서구 문화를 동경하게 되면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기독교 문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은 한국의 어떤 기독교인도 유교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곽선희 목사, 김진홍 목사, 김순권 박사를 '북한 돕기 국가 대표선수'로 소개한 적 있지만, 이분들을 자세히 보면 하나같이 토종 한국인이다. 선비다. 유교의 명분 문화의 정수를 터득한 분이다. 그러면서도 철두철미한 기독교인이다. 소탈하다. 일본 사람보다 더 실리를 추구한다. 서구 기독교의 실리-명분 문화의 정수를 터득한 분이다.
한 마디로 말해 유교의 명분 문화와 기독교의 실리-명분 두 문화의 장점만 배운 사람들이다.
(왜 우리 나라 사람이 기독교라면 이를 가는 사람까지 기독교 문화를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하는 이유는 다른 기회에 말할까 한다.)
유교의 명분 문화에다 서구 기독교의 실리-명분 문화를 접합시키면, 한국은 세계를 주름잡을 수 있다. 한국형 '명분-실리' 문화로 세계를 주름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산업화를 통해 한국인도 실리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다. 아니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실리 문화를 되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삼국 시대, 통일 신라, 고려 초기의 왕성했던 실리 문화 전통이 서구식으로 근대화하면서 일본의 실리 문화와 기독교의 실리-명분 문화와의 충격적인 만남을 통해 의식 저편에 잠자던 실리 문화가 잠을 깨고 떨치고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현대화하여 세련될 뿐이다.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와
동아시아의 해상을 주름잡던 백제와
세계 최강의 당나라를 실컷 이용하고 엉덩이를 걷어차 쫓아 버린 신라의 실리 문화를 다시 무의식 세계에서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지식인이 빨리 명분 문화의 잠에서 깨어나 일반 국민들의 실리 문화를 배워야 한다]
이제 지식인들이 명분 문화의 잠에서 깨어나는 일만 남았다. 일반 국민들은 이미 저 멀리 앞장 서 있다. 일본이 개항을 하면서 지배층인 무사들이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새 시대에 순응하여 국민들이 충심으로 따르는 새로운 지배층으로 거듭났듯이
우리 지식인들도 일반 국민을 지도한다는
그 '정신적 기득권'을 깨끗이 포기하고 이미 자기들보다 앞서 가고 있는 국민들을 어서 뒤쫓아가야 한다.
실리 문화의 장점을 빨리 배워야 한다. 이것을 명분 문화에 접목시켜야 한다. 사농공상은 모두 평등한 산업임을 빨리 인정하고 농업, 상업, 공업에 최고의 두뇌들이 골고루 진출해서 겸손하게 먼저 일반 국민과 농민과 노동자와 장사꾼에게 배워야 한다.
그러면 그 똑똑한 머리로 서로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힘을 합해 일하느라고 밤낮을 잊게 될 것이고
모두가 '평등하게' 세계 모든 사람이 부러워 할 정도로 화목하게 잘 살게 될 것이다. 평등은 절대 강제적인 법과 제도로 오지 않는다. 그것도 필요하지만, 다시 그것은 또 다른 갈등을 가져온다.
공산국가들의 강압적인 무조건적 평등이 이전보다 더 심한 불평등을 가져오고 모든 사람이 무기력하고 수동적이고 멍청하고 재미없는 삶을 살게 하지 않았는가.
[평등은 정신적 기득권자인 지식인이 그 기득권을 포기해야 비로소 갈등 없이 실현된다]
평등은 기득권자가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잘난 척하지 않는 데서 온다. 우리의 지식인이 군사와 상업과 공업과 농업과 예체능을 무시하는 한 그들은 여전히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된다.
이런 분야를 평등하게 대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자기가 최고 계층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은근한 협박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지식인은 조선 500년 동안 확고부동했던 그 기득권과 그 후 다시 100년 동안 누려 오던 정신적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조선 500년의 침체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 시대에 대해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
그 모든 고통은 지식인들이 만든 '명분' 문화 때문임을 깨달아야 한다. 군인과 상공인을 천시한 데서 온 불행임을 이제라도 반성해야 한다.
더 이상 지식인이 학문과 권력과 토지와 명예와 미인을 모두 차지했던 향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젠 일반 국민들이 더 이상 그 정신적 기득권마저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모두 똑똑해지고 있다는 것을 빨리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과 관료뿐 아니라 교수와 언론인도 무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말'뿐임을 알게 된 것이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고 하는 것은 두 번째 문제다. 이런 정신적인 봉건 사상에 젖어 있는 한 그들은 절대 정보화 시대에 적응할 수 없다.
이제는 지식과 정보를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지식인이라는 계층이 따로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더 이상 명문대 출신, 유학 출신, 박사, 교수, 언론인 등을 지식인이라고 대접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빨리 지식인들이 새 시대의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과거의 지식만으로는 이제 더 이상 지식인이 될 수 없다.
[정보화 시대는 한국 문화와 찰떡궁합이다]
정보화 시대는 바로 한국인의 시대다. 똑똑함과 평등함이 정보화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정보화 시대가 다가오면서 상공업과 군사, 예체능에 대한 천시 사상이 우리 지식인들 사이에서 급격히 없어진다. 명분 못지 않게 실리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드디어 과학, 기술, 군사, 음악, 미술, 체육, 상업, 공업, 농업도 법학, 정치학, 의학과 같이 중요한 분야라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인재가 본격적으로 골고루 흘러 들어갈 날이 머지 않았다.
벤처 산업이 한국인의 명분 문화와 일본의 실리 문화, 중국과 서구의 실리-명분 문화를 동시에 충족시켜 주면서 이미 거센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새로 태어나는 한국 고유의 명분-실리 문화는 정보화와 천생배필이다. 찰떡궁합이다.
코스닥이 뜨자,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 있는 벤처 산업이 각광을 받으면서 더 이상 상공업을 천시하지 않게 되었다. 같은 상공업이라도 벤처 기업은 땀 질질 흘리는 전통 제조업이 주는 천한 직업 이미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돈은 되어도 명예를 줄 수 없었던 제조업과 상업이 아니라 돈도 되고(실리) 명예도 얻을 수 있는(명분) 직업이 바로 정보 산업이요, 생명공학 산업이요, 금융업이다. 머잖아 재래식 제조업들마저 정보 기술(IT)과 결합하면 이 쪽도 천한 직업이란 느낌을 안 줄 것이다.
권력 문제도 해결된다.
우리 나라의 양반들은 과거 시험을 통해 권력과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었다. 그 짜릿한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몽매에도 잊지 못한다.
다른 문화에서는 이 셋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서양과 일본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것은 장인 정신에 의해 각자가 자기의 분수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명분 문화에 의해 자기 분수를 모른다.
재벌이 되어도 회고록을 잘 지어내서 명예를 얻으려 하고 정계에 진출하려고 한다. 돈으로는 해결 안 되는 것이다. 명예와 권력도 가져야 한다. 그러다가 비참한 인간이 된다.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이 되어도 돈을 수천 억 받아 먹고 자기가 무슨 무결점의 인간인 양, 온 매스컴을 동원하여 대통령 찬가를 부르게 한다. 외국에서 명예 박사 학위 하나 주면 좋아서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학자도 마찬가지다. 학자라는 명예만으로는 절대 만족 못한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곡학아세하여 권력의 한 자락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이 셋을 다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한국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는 지식이 분산됨으로써 권력도 분산된다. 똑똑한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에 권력을 독과점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다. 지식을 가진 사람은 모두가 권력에 참여한다.
정보화 시대에 앞장선 사람은 마침내 조선의 양반들이 한 손에 움켜 쥐었던 부와 명예와 권력을 다 얻을 수 있다.
분수를 모르는 한국인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단연 선두에 서게 되어 있다. 분수를 모르는 것이 오히려 복이 되는 시대인 것이다.
정보화 시대는 감성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제는 감성을 만족시켜 주는 물건이 아니면 안 팔린다. 이성적으로 보아 아무리 품질이 우수해도 감성적인 차원에서 아름답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시대다. 인터넷도 콘텐츠(contents)가 아무리 알차도 디자인이 시원찮으면 네티즌들이 순식간에 클릭 아웃(click out)한다.
어디서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렇다고 품질이 무시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은 넘어야 한다. 다만 이제는 상품으로 말하면 품질보다 디자인의 부가 가치가 훨씬 높아진다는 말이다.
물론 예술품 자체도 가치가 아주 높아진다. 진기하고 아름다운 것은 모두 예술품이 된다. 대중 예술이든 본격 예술이든 예술가의 주가가 끝없이 치솟는다.
지금은 비록 우리 나라가 자유중국보다 디자인 수준이 떨어지지만 전국적으로 해마다 3만 명씩 쏟아져 나오는 디자인 전공자들이 프로 의식을 갖게 되면, 우리 나라가 디자인 왕국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우리 민족은 감성이 누구보다 발달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기분파가 아닌가. 이것이 장점인 시대가 온 것이다. 예술적 감성을 마음껏 펼칠 시대가 온 것이다.
정보화 시대는 직관의 시대이기도 하다. 생각들이 요모조모 따져서 떠오르면 이미 늦다. 이성은 늦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진실을 순식간에 깨닫는 데는 모두들 도사가 아닌가. 직관이 엄청나게 발달한 민족이다. 그런 문화 속에서 살았다.
이 직관을 머리로 하고 이성을 팔다리로 이용해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고 치밀한 계획과 시의적절한 시작과 주도면밀한 과정을 거치면, 일은 잘 되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하면 한국은 유태인을 분명 능가하게 되어 있다. 직관만 중시하면 허점이 너무 많지만, 이성을 그 부하로 부리게 되면 완벽을 기할 수 있다.
직관과 이성의 결합, 이것이 바로 한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바로 직관과 이성을 다 갖춘 분이셨다. 한 눈에 모든 상황을 알아보되 준비는 단 한치의 소홀함도 허용하지 않으셨다. 왜적을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얕본 일도 절대 없었다. 두려워하지 않음은 직관이요, 얕보지 않음은 이성이다. 누가 그런 분을 당하랴! 이건 한국인이 아니면 참 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한 그분은 다정다감했다. 12척밖에 안 남은 전선에 필요한 군사와 군량미를 구하려 이미 적지로 변한 호남 지방을 구석구석 다니면서 말을 타고 가다가 촌로가 쌀 한 줌이라도 주면 즉시 말에서 내려 손을 잡고 마냥 우신 분이었다.
직관과 이성과 감성을 모두 갖춘 분이셨다.
서울대 경제학과의 송병락 교수도 이순신 장군이 우리의 군사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에도 완벽한 지도자 상이라고 극찬했다.
정보화 시대는 놀이의 시대이기도 하다. 모든 게 오락이 된다. 노는 것 하면 우리 한민족 아닌가.
정보화 시대는 정보 공유화 시대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 사람은 적대적일 때는 상종도 않지만, 내 편이라는 판단만 서면 간이라도 빼주고 쓸개라도 뚝 떼어준다. 우리 정치가 언제까지나 저러진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아직 제대로 된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아웅다웅 하는 게 아니라,
모두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틀림없이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이, 세종대왕 같은 분이 홀연히 나타날 것이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평등 의식이 강한 국민을 무서워 할 줄 모르고 제 잘난 맛에 사는 현 위정자들은 머잖아 공멸하리라고 본다.
여야가 따로 없을 것이다. 그 후에 국민의 높은 기대에 합당한 새 지도자가 나오고 그와 같이 일할 새로운 집단이 나타날 것이다.
이전에 위정자였던 사람도 이제는 정보화 시대에 맞게 새로 태어나야만 국민들이 위정자로 인정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새로운 정보화 시대의 지도자들은 우리 국민과 한 마음이 될 것이다. 모두들 한 편이 되어 마음을 활짝 열고 서로 가르쳐 주고 배우려고 야단날 것이다.
정보화 시대는 속도의 시대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은 얼마나 성질들이 급한가. 식당에서 1분도 못 기다려 그 짠 깍두기도 다 먹어 치우는 민족이다. 세계 어느 민족이 우리의 속도를 따라올까?
정보화 시대는 창의력의 시대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은 얼마나 잘 난 척하나. 풀어 놓기만 하면 제 멋대로인 것이다.
정말 말 안 듣는다. 이것은 잠재적인 창의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반증이다. 대상만 제대로 찾으면 무섭게 파고드는 민족이다.
아이디어 백출한다. 전현직 대통령을 욕하거나 칭찬할 그 에너지로 제품 개발하거나 전세계를 누비며 물건 판다고 생각해 보라. 무엇을 못하겠나.
메디슨의 이민화 사장 말처럼 우리 민족은 여건만 갖추어 주면, 신바람나게 해 주면, 최대한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면, 선진국의 10분의 1의 돈으로 2배의 효과를 올린다고 했다. 20배의 잠재력이 있는 민족이다. 본인이 직접 제품 개발과 마케팅까지 다 해 보고 하는 말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모토롤라 본사는 한국 지사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어필 텔레콤을 이끌던 이가형 사장 이하의 연구진들이 자기들보다 20배 이상의 효율성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미래 지도자 상]
이순신 장군 이래 현대에 와서 드디어 한국인의 미래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나타났다.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이병철, 최종현, 김우중, 정인욱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훌륭한 점이 있지만, 한국인의 높은 기준에는 한두 개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빌 게이츠도, 마가렛 대처도, 등소평도, 이광요도, 넬슨 만델라도, 마하트마 간디도, 앨버트 아인슈타인도, 존 폰 노이만도 우리 나라 사람들의 높은 기대에는 못 미친다.
직관과 이성과 감성과 도덕을 빠짐없이 갖추고 어떤 직업도 천시하지 않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부와 명예에 초연하나 부와 명예가 그들을 뒤쫓아가는 분들이 드디어 나타났다.
이들은 끊임없이 배우며 작은 실패를 딛고 화려한 성공 신화를 창조해서 무수한 사람들에게 부와 명예와 성취감을 한아름씩 가득가득 안겨 준다. 다산 정약용도 훌륭한 지도자 상이나 이런 성공 신화가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성공 신화 하면 이순신 장군이다. 누구도 견줄 수 없다.
이순신 장군과 같이 전투에 나서면 아군은 거의 피해가 없었다. 다들 멀쩡했다. 대신
그 이전에는 천하무적으로 통하던 적군도 일방적으로 두들겨 부수었다. 그 이유는
비전이었다.
정보였다.
작전이었다.
훈련이었다.
무엇보다 이순신 장군은 탁월한 직관력으로 필승의 비전을 보여 주었다. 이어 어부, 포로, 나무꾼, 농부, 해류, 해안, 조류, 날짜, 날씨, 지형 등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적을 손바닥에 올려다 놓고 볼 수 있게 완벽하게 '정보'를 수집했다.
다음으로 장수, 장교들뿐 아니라 필요한 군졸들까지 난상 토론을 시켜 거기서 얻은 지혜를 종합하여 정확한 판단으로 한치의 오차 없이 치밀하게 '작전'을 세웠다. 자연히 모든 군사가 작전을 숙지했다.
또한 평소의 힘든 훈련을 통해 전 군대가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마침내 전투에 돌입하면
아군의 '장점'으로 적의 '약점'을 쳤다. 아군의 약점은 전혀 보여 주지 않았다.
이건 모두 우리가 아주 익숙한 것들이다. 그렇다.
바로 정보화 시대의 기업 경영이다.
16세기 후반에 20세기 후반의 전법을 썼던 것이다.
손가락으로 더하기 빼기하는 적을 슈퍼 컴퓨터로 상대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리 불리한 상황에서도 아랫사람들이 잠재력을 최고도로 발휘하도록 하여 싸움마다 '퍼펙트(perfect)' 승리를 했다.
우리 민초들에게 무한한 성취감을 맛보게 했던 것이다. 축구나 야구 경기로 비유하면 100전 100승했는데, 99번을 10:0으로 이기고 딱 한 번 10:1로 이겼다. 그 1점도 자살골 내지 투수 폭투였다.
(935척의 적선을 깨뜨리고 단 한 척의 아군 전선을 좌초시켰다.)
돌멩이 들고 양민을 학살하며 기고만장하던 놈들한테 M-16으로 갈긴 격이다.
이순신 장군은 전란 중에도 농사를 짓게 하고 소금을 만들게 해서 호남 사람들은 거의 배고픔을 모르게 했다.
다산 정약용은 뛰어난 경륜을 갖고 명분과 실리를 함께 갖추었지만, 이런 성공 신화를 만들지 못했다.
그런데 영원히 나타날 것 같지 않더니만, 드디어 이순신 장군 이후 처음으로 민초들이 간절히 바라던 한국의 지도자들이 우르르 나타난 것이다!
13년 동안 KIST 소장과 과기처 장관을 역임하면서 세계 100위 근방을 헤매던 한국의 기술 수준을 일약 세계 30위권으로 끌어 올린
최형섭 박사,
기술을 최우선으로 하고 청소부 아줌마까지 인간적인 대우를 해 주고 회사원 전원에게 주식을 나눠 주어 그들을 억대 부자로 만들어준 벤처 기업의 대부이신 미래 산업의
정문술 사장,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려다가 정보화 시대에 이 정보화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인간들의 삐뚤어진 마음을 치료하고 있는
안철수 박사,
정보통신부(구 체신부)에서 8년간 장차관을 역임하면서 '산업화는 뒤졌어도 정보화는 앞서자'란 말을 국민 누구나 한 마디 할 수 있도록 우리 나라의 정보통신에 혁명의 씨앗을 쫙 깔아 놓은 오명 현 동아일보 사장.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잘 살아 갈 수 있게 해주는 기아 해방자 옥수수 박사 김순권.
(제일 동포 3세로 세계 인터넷을 뒤흔들고 있는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도 여기에 넣을 수도 있는데 국내 지도자와는 다른 점이 더러 있다.)
이들이 바로 이순신 장군 이후 한국의 민초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한국의 지도자 상이다.
[미래 한국 지도자상의 10대 특징]
이들은 첫째, 도덕적으로 흠이 없다. 개인의 도덕성은 잘 알 수 없다고 해도 각기 하는 일에서 손가락 짓 받을 일은 절대 안 한다. 이전의 재벌이나 관료나 학자들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회사 문을 닫거나 하던 일을 그만 둘 사람들이다. 명분 문화를 최대한 만족시킨다.
둘째, 직업 천시 사상이 없다. 오히려 기술을 가장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실리 문화를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환영한다.
셋째, 유능하다. 아주 똑똑하다. 한국에선 제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어도 무능하고 멍청하면 존경을 받지 못하는 나라다. 이것도 명분 문화의 소산이다. 이들은 이 조건도 만족시킨다.
넷째, 이들은 돈에 무관심하다. 돈을 벌려면 천문학적으로 벌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정작 본인은 돈에 무관심하다. 본인과 가족을 위해서 사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최형섭 박사는 장관이 된 뒤에도 집이 없어서 KIST의 사택에서 살았다. KIST의 소장과는 아무래도 머쓱했다. 이를 안 박정희 대통령이 집을 한 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장관직을 물러나며 그걸 다시 국가에 헌납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깨끗하게 번 돈으로 우아하게 사치하는 정도는 국민이 모두 용납하리라. 이제 국민도 웬만큼 살게 되어 마음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다섯째, 이들은 겸손하다. 어떤 사람도 무시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은 철저한 명분 문화의 영향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평등 의식이 강한 민족이다. 아무리 못 살고 못 배우고 힘이 없어도 무시당하는 것만은 참지 못한다.
이들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일을 잘못하는 것도 용서하지 않지만, 인간을 무시하는 일은 없다. 존경받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의 공통점이 자기 아랫사람의 술 안주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좀 적나라한 말을 쓰면, 아랫사람에게 씹힐 일을 않는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랫사람에게 씹히지 않으면 일단 훌륭한 사람으로 보면 틀림없다. 이들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여섯째, 이들은 정직하다. 자기가 신이 아님을 솔직히 고백한다.
얼마 전에 안철수 컴퓨터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공개한 프로그램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그러자 안철수는 즉시 공개 사과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정직한 사람이다.
명분 문화의 큰 병폐 중의 하나가 위선인데, 이들에게는 그것이 없다. 그러므로 회사든 일이든 유리알같이 드러낸다. 잘잘못을 그대로 밝힌다. 잘못은 즉시 인정하고 시정한다. 계속 발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일곱째, 이들은 일하는 사람들이다. 잠은 언제 자는지 일에 파묻혀 산다. 그 아래 있는 사람도 모두 그렇다. 그러면서도 항상 얼굴 표정이 밝고 건강하다. 이들의 얼굴은 보기만 해도 즐겁다. 어떤 미남 미녀도 이들 얼굴보다 행복감을 주는 사람이 없다.
명분 문화의 가장 큰 병폐가 싸우는 일이다. 일은 하지 않고 매일 싸우기만 한다.
경제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눠 먹을 사람 곧 양반은 자꾸 많아지는데, 토지는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 토지를 개간하거나 농법을 개선하여 소출을 더 내게 하거나 상공업을 장려하여 먹을 떡을 자꾸 키우면 될 건데, 그건 천한 일이라서 못하고 얼마 안 되는 그 토지를 서로 갈라 먹으려고 죽기 살기로 싸웠던 것이다. 명분이야 그럴 듯하지만 속셈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이 지도자들은 다르다. 싸우지 않는다. 일한다. 싸울 시간에 일해서 떡을 자꾸만 키운다. 그렇게 키운 떡을 골고루 나눠 준다. 같이 일하던 사람은 신이 나서 더욱 열심히 일한다.
여덟째, 이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명분 문화의 큰 병폐 중의 하나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단점을 극복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어난다. 명분 문화에서 상대방에 이기기 위해 수백 년을 두고 물고 늘어지는 그 집요함을 긍정적으로 살려 이들은 아무리 실패해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벌떡벌떡 일어난다.
아홉째, 이들은 열린 사람이다. 누구에게든지 배우려 하고 자기가 아는 것은 기꺼이 알려 주어 정보를 공유하려 한다. 자연히 권위적이지 않다. 권위적인 명분 문화의 병폐를 극복했다는 말이다.
안철수 박사가 대표적인 예다. 애써 개발한 것을 인터넷에 띄워 버린다. 필요하다면 누구든지 공짜로 가져가라는 말이다. 다만 공공 기관이나 먹고 살 만한 기업은 돈을 주고 사 가라고 한다. 이를 알고 헤커들도 안철수는 건들지 말자고 한단다. 건드는 사람은 왕따 당한단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비전이 있다. 하나같이 뛰어난 직관력을 갖고서 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훤히 내다보는 눈이 있다.
비전이란 '타임 머신을 타고 미래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다.
이들의 비전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허황되게 보이지만, 이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타임 머신이 있어서 미래는 현재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손정의는 창사 첫날, 사과 궤짝 위에 올라서서 다 합해야 단 둘뿐인 사원 앞에서 몇 시간이고 열변을 토했다. 매출 1조 엔의 회사를 만들겠다는 '천기'를 누설했다. 사원들은 꾸벅꾸벅 졸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비전을 제시했다.
그 두 사원은 오래지 않아 도망가 버렸지만(한국 사람이었으면 끝까지 남았을 것이다), 그는 결국 자기가 본 비전을 실현했다. 아니 그 이상을 실현했다. 그 후 20년도 안 되어 그는 개인 재산만도 1조 엔이 훨씬 넘는 세계 4위의 거부가 되었다.
한국인에게는 이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뛰어난 직관력을 발휘하여 허황될 정도로 큰 비전을 제시한 다음에 날카로운 이성을 동원하여 한 치도 오차 없이 정신없이 몰아붙이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꿈이 클수록 좋다.
작은 꿈으로는 한국인을 움직이지 못한다.
쫀쫀한 꿈을 보여 주면 한국인은 먼 산을 바라보며 딴 짓을 한다.
신바람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비전이 없는 지도자는 한국인 특유의 신바람을 일으키지 못한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가. 세계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지도자 상이다.
민주화로 대표되는 명분 문화와 산업화로 대표되는 실리 문화가 치열한 싸움 끝에 드디어 이 둘의 장점만을 쏙 빼 닮은 정말 멋진 옥동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놀라운 일은 이런 사람이 이제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말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햇빛 찬란한 한국의 미래]
불만 당겨졌다 하면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민족이 한민족이다. 일단 불이 붙으면 아무도 그 불을 끌 수 없는 민족이 한민족이다.
일당 백, 한국인이 드디어 일어서기 시작했다.
머잖아 상상하기도 끔찍한 고통이 따르긴 하겠지만,
통일도 도둑같이 오게 되어 있다. 북한은 우리보다 수십 배 강한 명분 문화를 가졌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다가 무너지면 한꺼번에 무너지게 되어 있다.
대륙을 향해, 대양을 향해 포효할 때가 마침내 바싹 다가오고 있다. 호랑이에서 이제 독수리로 변신할 때다. 대륙과 대양을 모두 날아 다니는 독수리로 변신할 때다. 용이 되어도 좋겠다. 올해가 용의 해라던가.
(2000. 2. 17.)
무려 2000년간 세계 GNP의 30% 내지 40%를 차지했다가 150년간의 혹독한 시련을 겪고서야 곧 죽어도 세계제일이라는 중화주의의 미망에서 깨어나 마침내 기지개를 키고 21세기의 아침을 여는 중원이 황룡(黃龍)이라면, 세계 4대 고등종교 중 불교와 유교 그리고 기독교라는 3대 고등종교를 차례로 받아들여 이들을 하나같이 발상지의 원시종교보다 더 정통적인 종교로 바꾸는 한편 숨돌릴 틈도 없이 20세기에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상이한 두 물신교(物神敎)를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딱 나뉘어 온 마음으로 믿고 온몸으로 겪은 후 바야흐로 21세기를 맞이하여 무의식 중으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나아가는 짙푸른 고속도로를 닦기 위해 아마겟돈의 전쟁터로 청룡열차처럼 아찔아찔 정신없이 달려가는 청구(靑丘)는 청룡(靑龍)이다. 양자강에서 잠시 낮잠 자던 황룡이 승천하려는 순간 동해에서 만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청룡이 구만리 장천(長天)으로 비상할 것이다.
(2004.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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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싣는 중에 과분한 칭찬을 하신 분도 있었지만, 이의를 제기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어느 쪽이든 다 감사합니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고, 더러 표현이 약간 거친 바도 있었지만, 그분들의 열정과 순수함과 날카로움이 하나같이 돋보였습니다. 덕분에 제가 도리어 많이 배웠습니다. 거듭 감사 드립니다. 아무래도 칭찬보다 꾸중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나 봅니다. 여러 '이의' 중에서 대표적인 것 두 개와 그에 대한 제 엉성한 답변을 아래에 적습니다. 제 성의가 부족하여, 일일이 답변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1. 일본 사무라이 정신을 찬양하는 듯한 위험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2. 강약의 사고를 가진 문화가 선악의 사고를 가진 문화보다 개방적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닌가?
1.에 대한 대답입니다.
잘 지적하셨습니다.
문과 무 어느 쪽도 치우치면 위험합니다.
무를 멸시하고 숭문(崇文)에 치우치면 문약(文弱)이 되고
문을 천시하고 상무(尙武)에 빠지면 무단(武斷)이 됩니다.
님이 말씀한
스파르타와 바빌로니아와 몽골 제국과 소비에트와 일제의 신속한
멸망은 모두 상무를 넘어 무단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문약으로 망했고 이들 나라들은 무단으로 순식간에 정말 거짓말같이 한 순간에 멸망했습니다. 그 중에 앞의 셋은 영원히 사라져 버렸거나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신세가 되었습니다.
숭문이 문약으로 떨어지고 상무가 무단으로 거꾸러지는 것은 모두 이유가 있습니다. 숭문의 지배층과 상무의 지배층이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중심인 국민의 삶을 전혀 생각 않고 오로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고혈을 빨아먹는 흡혈귀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상무와 숭문은 항상 국민을 먼저 생각합니다.
국민보다 자기 계층의 이익을 우선할 때 멸망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상무와 숭문은 좋습니다. 둘 다 좋은 것입니다. 균형이 중요합니다.
어느 쪽이든 한쪽에 치우쳐서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숭문도 아니고 상무도 아닙니다. 문약이요, 무단일 뿐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되는 조짐은 폐쇄성에 있습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의논하고 결정합니다.
일본의 무사들이 문호 개방을 하고 산업화의 길로 나아갈 때, 그들은 조선의 선비들과는 달리 모든 기득권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우리 나라를 침략하는 순간부터 교만해지고 기득권을 절대 놓지 않고 그 기득권을 더 확보하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또한 극도로 폐쇄적인 집단으로 바뀌었습니다.
군부끼리만 대화를 했습니다. 또한 국민들의 삶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직 총알받이만 되기를 원했던 겁니다.
멸망의 길을 스스로 활짝 열어놓은 겁니다.
저는 단기적으로는 한국의 장래를 거의 모든 면에서 비관적으로 보지만, 장기적으로는 누구보다 낙관적으로 봅니다. 제가 어설프게 만든 문화 비교의 틀에 비추어 보면, 이것은 거의 확실한 일입니다. 물론 제 생각이 틀릴 수 있습니다.
2.에 대한 답입니다.
제 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고 날카로운 지적을 해주어 고맙습니다.
단정적인 표현은 가능하면 안 쓰려고 애쓰는 편인데, 우리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앞뒤 문맥에서 뒷받침도 안 된 그런 표현을 자꾸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지적해 주어 무엇보다 고맙습니다.
단정적인 표현보다 비단정적 표현을 쓰는 것은 오히려 자기 의사를 부드럽지만 더 확실하게 전달하는 일종의 수사법으로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방법에 익숙하지 않아 토론을 못하고 싸움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그런데 강약의 사고체계가 선악의 사고 체계보다 개방적이라는 표현을 거의 설명이 없이 단정적으로 써서 거부감을 갖게 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분법적인 사고를 지양한다면서 무의식중에 그런 말을 했으니, 역시 저도 한국인 핏줄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맞습니다. 그것은 분명 '그러한 경향이 강하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모든 군인과 모든 운동 선수들이 승부를 깨끗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강약의 사고 체계는 사실 동물 세계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에 가까운 것입니다. 반면에 선악의 사고 체계는 인간이 자연 환경과 인간 문화에 대한 가치 판단에서 온 것이라고 봅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강약이라는 것은 아주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이의가 거의 없습니다. 지면 깨끗이 항복하고 이긴 자의 선처를 바랍니다. 싸움에서 진 동물이 엉덩이를 이긴 동물에게 내보이는 수가 많은데, 이것은 가장 약한 부위를 상대방에게 마음대로 공격해도 좋다는 뜻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긴 자는 더 이상 약자를 공격하지 않고 그 생명을 보장해 줍니다. 한 번 진 자는 대개 다시는 덤비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놈이 젊은 놈일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상대방이 늙길 기다리며 힘을 기르는 거지요.
인간 사회에서 이런 동물의 약육강식에 가장 가까운 형태가 전쟁과 스포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 세상에 들어오면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님이 지적한 대로 이 사회에서는 결과에 대해 승복하는 것이 하나의 당위가 되어 있지만, (이 당위라는 것은 약자가 강자에게 깨끗이 승복하는 동물세계의 법을 따르라는 말과 거의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니만큼 그렇지가 못한 경우가 생깁니다.
일본의 무사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약자로서 강자를 배울 때는 참 아름다웠지만, 강자가 되어 약자에게 군림하면서부터 자기 힘에 도취되었고 그 순간 그들이 제가 말한 무단으로 흘러서 질 줄 뻔히 아는 전쟁에서도 이를 받아들이길 한사코 거부했습니다. 사고의 유연성을 잃었다는 거지요.
이처럼 어느 나라든 지배층이 비판 세력을 압도하거나 압살할 만큼 권력이 강해지면 자기도 모르게 교만해져서 상무는 무단으로 타락하고 숭문은 문약으로 전락하고(조선은 중기 이후에는 군대가 없는 나라나 마찬가지가 되어 한말에는 2천만 인구에 월급도 못 받는, 신식 총 한 자루 제대로 없는 군인이 겨우 3천 명 정도밖에 없는 씨족 사회로 전락하고 '또 다른 조선'은 그와 정반대로 문인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어 선군 정치라며 300만이 굶어 죽어도 총칼만 벼리는 병영국가로 타락합니다) 그 순간 사고의 유연성을 잃게 되어 개방성을 잃고 자신이 도리어 약한 자거나 악한 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워지게 되는가 봅니다. 그러다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지배층이 몰락하면 정신이 번쩍 드는 거지요.
선악의 사고 체계는 인간의 가치관이 개입된 만큼 주관성이 강해서 합의점에 도달하기가 자연에 그 유래를 두고 있는 강약의 사고 체계보다 상대적으로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선악의 사고 체계를 가진 명분 사회에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패를 쫙 갈라서 속은 더 지저분한 경우가 많지만 이를 절대 내색하지 않고 그럴 듯한 명분을 내걸고 벼랑 끝에 몰렸을 때의 '극적인 타협' 외에는 타협이 거의 없이 맹렬히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상대방을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항상 자기 패거리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니까요.
아니면 오로지 하나의 절대적 가치를 공유한 상황에서(조선의 성리학, 북한의 주체사상, 구 공산권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등)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서 모든 것을 차지하기 위해(실리) 누가 그 가치에 어긋나느냐 어긋나지 않느냐, 누가 더 순수한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를 두고(명분) 살벌하게 싸웁니다. 이렇게 경직된 나라에서는 말 한 마디(명분)에 생사가 달렸기 때문에 농담 한 마디도 함부로 못하고 누구나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애들마저 일곱 살만 넘으면 발랄함과 생동감을 거의 잃고 하나같이 진지하고 점잖습니다.
인식 능력의 한계 때문에 인간사는 상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이 대부분인데, 자신은 절대적으로 옳고 상대방은 절대적으로 그르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학문에서는 인문 사회계통이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회과학이니 인문과학이니, '과학'이란 말을 써도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과 계통은 옳고 그름이 비교적 쉽게 드러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을 다루지 않고 자연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인간도 인간의 몸을 다루면 그것이 자연이나 마찬가지가 되겠지요.) 자연은 객체로서 관찰의 대상이지만, 인간은 객체임과 동시에 주체이기 때문에 문제가 아주 복잡해집니다. 그러나 자연과학도 토마스 쿤이 말한 대로 어떤 패러다임에 갇히면, 설령 불세출의 천재라도 나중에 누구나 인정하게 될 새로운 이론조차 이해하지 못합니다. 뉴턴의 절대 시간 개념에 갇혀 있던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것이 좋은 예이지요. 이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마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원자 세계 안으로 들어가면 '불확정성의 원리'가 적용된다는 하이젠베르크의 주장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지요.
하물며 프랑스 혁명 이후 전세계적으로 가장 두 큰 명분이 된 자유와 평등이 맞부딪칠 때, 지금은 이 둘이 손등과 손바닥처럼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쪽으로 수렴되고 있지만, 팽팽하게 맞설 수밖에 없지요. 우리나라는 세계적 흐름에는 아랑곳없이 김대중 정부 이후 자유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보수주의로 평등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진보주의로 갈려서 치열하게 싸웁니다. 나아가 보수주의는 미국, 진보주의는 북한 정부(북한이 아니라)와 각각 연결되면서 제2의 6·25 직전에 이르지 않았나 합니다. 양자가 상대방을 악의 세력으로 확신하고 있으니까요.
강약의 자연 세계로 돌아가서 주체가 자기 자신을 가능하면 배제하고 자신도 하나의 객체로 보면 사고가 유연해진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건 어린이처럼 순수한 사람이나 수양이 아주 잘된 사람의 이야기이고 보통은 그러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악의 사고 체계를 가진 사람은 아무래도 자기가 옳다는 주관성이 강해서 개방적이기가 힘들고 사고가 유연해지기 힘드는 것 같습니다. 성리학이나 기독교 또는 이슬람교, 20세기의 최대 종교인 공산주의나 김씨 왕조의 주체사상에 갇혀 그것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확신하는 근본주의자들이 특히 이런 우를 범하기 쉬운 듯합니다.
또한 선악의 사고 체계를 가진 문화에서는 상대방이 물리적 힘을 사용할 수 없으면(현대에 근접할수록 이것은 법을 지키는 것으로 바뀝니다) 생명의 위협을 전혀 받지 않으므로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익이나 자존심 등의 요인으로 상대방을 '옳다'고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치사한 싸움을 하게 되는가 봅니다.
대답이 제대로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근거가 박약하고 논리의 비약이 심한 졸고에 관심을 가져 주신 데 대해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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