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바타르에서 서북쪽으로 1000km 위치에 있는 흡수굴 호수에서 송어낚시를 한 적이 있다. 호수에 동전을 던지면 200미터 아래로 가라앉을 때까지 보인다는 청정호수이다. 무지개 송어를 낚았는데, 맑고 찬 물에서 사는 물고기여서 그런지 탱글탱글한 회맛이 일품이었다. 며칠째 운전하느라 고생하는 안내인에게 한 점을 권했는데 그 몽골 친구는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친다. 몽골인들은 물고기를 천한 음식으로 생각한단다. 익힌 고기도 먹지 않는데 생선회야 오죽할까?
유목민들이 생선을 먹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돼지고기야 원래 돼지를 키울 수 없어서 못먹었다지만, 물고기는 지천에 널려있는 것이 아닌가? 좀 과장하자면, 몽골에선 호수에 낚시대만 넣어도 팔뚝만한 물고기가 잡힌다.
몽골 유목민들은 물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긴다. 평소에도 비가 적은 땅이지만, 서너달씩 가뭄이 들어 초지가 까맣게 타버리는 재해를 수시로 겪는 사람들이기에 물은 말그대로 ‘생명수’이다. 이들이 물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때문이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필시 신성한 생명수를 더럽혀야 하니, 자연스럽게 물고기 낚시나 그물질을 멀리 하게 된 것이다.
칭기스칸이 “옷이 완전히 너덜너덜해지기 전에 빨래를 해서는 안된다”고 성문 헌법격인 [대자사크]에 명시를 한 것을 더럽고 미개한 종족의 발상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들이 모든 종교를 자유롭게 허용하면서도 유독 이슬람교도의 목욕 의식만은 금지시켰던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몽골 유목민들에게 물은 불과 함께 공동체를 지켜내는 최후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물고기를 먹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라마교의 영향이다. 몽골의 국장(國章)인 ‘소욤보’ 문양에 태극무늬가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양은 태극이 아니라 물고기 두 마리의 모습이다. 물고기는 잠을 잘 때에도 눈을 감지 않는 동물이다. 몽골의 소욤보 문양은 “물고기처럼 두 눈 꽃꽃히 세워 나라와 민족을 보호해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공동체의 요구는 후세에 교육되고, 마침내 문화가 된다. 이러한 문화가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다 보니, 몽골인들이 물고기를 먹는 것은 매우 부끄럽고 비루한 삶은 살고 있다는 반증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몽골 최고의 리더였던 칭기스칸이 소년 시절 '푸른 호수'에서 낚시질을 해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아버지가 적들(타타르족)에게 독살을 당하고 부족민들이 모두 떠나버렸을 때, 황량한 초원에 버려진 어린 칭기스칸 가족들은 살 길이 막막했다. 적들이 쳐들어오는 것에도 속수무책이었을 테지만, 무엇보다도 먹고 살 길이 없었다. 양떼나 염소가 없었으니, 타르박(땅굴을 파고 사는 야생 쥐)과 물고기 낚시로 목숨을 연명해야 했다. 칭기스칸 스스로도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하지만 칭기스칸은 그런 시련을 이겨내고 유목민 최고의 칸이 되었다.
유목민들이 먹지 않는 또 한가지 음식이 나물이다. 육식만 하는 사람들이니 그러려니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 유목민들은 육식 체질이기 때문에 나물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물을 먹지 않는 삶을 살기에 육식 체질이 된 것이다.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인간이 나물을 먹는 순간, 말도 양도 소도 먹을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적어도 가축들이 먹어야 하는 먹이의 양이 줄어들게 된다. 인간의 이기심이 작동된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인간이 먹는 음식에 가축들이 침범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다. 이제 초원에는 울타리를 비롯한 수많은 칸막이들이 생겨날 것이다. 초원은 이미 초원이 아니다. 이러니 어떻게 같은 먹이를 인간과 가축이 나눠먹을 수 있겠는가.
몽골 유목민이 육식만을 하는 이유는 이 상황에서 연유한다. 유목이란 경제 시스템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환경에서 시작된다. 풀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 건조한 땅이기에 곡식 농사는 꿈도 꾸지 못한다. 농사는 물을 이용한 식물의 지배 산업이다. 그런데 유라시아 대륙의 심장부가 극한 건조기후로 변했다. 모든 인간과 동물들이 살길을 찾아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떠나간다.
그런데, 생명이 떠난 초원에서 풀이 돋아났다. 아주 적은 양이지만, 그것을 먹고 사는 초식동물이 풀을 먹기 위해 함께 남게 된다. 초식동물을 먹고 사는 육식동물도 남는다. 유목민들은 이 생태 구조를 발견하고 삶의 길을 찾아낸다. 유목을 통해서도 살 수 있는 경제 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유목민이 없었다면, 흥안령 산맥부터 헝가리에 이르는 저 광대한 유라시아 초원이 텅 비어 있었다면, 인류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은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바다를 통한 소통만으로, 해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소통만으로는 지구촌시대를 만들 수 없다.
유목민들은 생태계에 올라탄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풀과 가축과 야생동물이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한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을 유목민들의 친환경적 삶의 태도라고 말한다면 다소 과장된 표현일지 모른다. 그러나 유목민들이 물을 보호하기 위해 물고기를 잡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해 나물을 먹지 않는 음식 문화를 가졌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