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으로 가득찬 나라 티베트
중국 남서부 있는 티베트족의 자치구 히말라야 산맥과 쿤룬 산맥에 둘러싸인
높이 4500 미터 안팎의 고원지대이며 중심도시 라사이다.
오랫동안 티베트인 라마교를 중심으로 제정일치의 통치를해왔다.
1950년에 중국군의 침공이 있었고 1965년에 정식으로 티베트 자치구가 되었다.
(편집모음..)
불심으로 가득 찬 나라, 티베트. 티베트인에게 불교는 삶 자체이다.
팍팍한 생활 속에서도 마니차를 손에서 놓지 않고 쉼없이 돌리며
기도하는 티베트인. 오체투지를 하고 염주와 마니꼬르를 돌리며 코라
(시계방향으로 사원 등 성지를 도는 순례)를 도는 것은 티베트인들의 일상의 모습이다.
티베트인들은 천여 년 동안 윤회사상 등 종교적 가치관에 길들여지며 불교와 하나되는
종교적인 삶을 살아왔다. 티베트의 정체성이나 생활의 중심에는 항상 불교가 자리 잡고 있다.
티베트는 곧 불교라는 인식이 들 정도로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티베트인들의 맹목에 가까운 종교행위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독특하고 특이한 티베트 불교의 특성에 그 답이 있는것 같다.
대개 불교는 성불이라는 자기완성을 직접적인 목표로 삼는다.
티베트불교는 무한히 이타를 바랄뿐 결코 스스로를 위하여 열반을 추구하지 않는다.
출가나 수행의 목적이 혼자 깨달아 윤회에서 벗어나려는데 있지 않고
한 영혼을 가지고 수없이 윤회하면서 전생에 못 다한 원력을 성취하는데 있다.
오체투지
사원과 초르텐, 타루쵸, 룽다(風馬) 마니석 등은 티베트 마을 형성과정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이다.
기도나 보시행위는 그들의 자연적인 일상이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종교행사가 아니다.
아무리 깊은 오지의 고산협곡이나 해발4000m의 황량한 평원이라도 사람 사는 동네가 가까워지면
오색의 타루쵸, 마니꼬르, 스투파 등 불교 상징물들이 먼저 눈에 띈다.
사원, 동네입구, 대문, 지붕, 산마루, 개울가, 줄다리, 나루터, 심지어 깍아지른 절벽에는
어김없이 룽다와 타루쵸가 바람에 나부낀다.
오색의 깃발에는 티베트불교의 불보살상, 호법신상, 불경구절이나 기도문이 인쇄돼 있다.
타루쵸의 청색은 하늘, 노랑은 땅, 녹색은 바다, 백색은 구름,
적색은 불로 불성과 생명을 상징하는 우주만물을 의미한다.
스투파나 초르텐은 불교에서 불타의 사리를 봉안한 건축물을 말하는데
보통 불탑의 의미로 쓰인다. 흰색에 반구형의 돔 형태로 벽돌이나 돌로 만든다.
코발트빛 하늘 아래, 아우성치듯 펄럭이는 오색 깃발에서 티베트인의 심오한 불심과
멀어져만 가는 분리 독립에 대한 비원을 보는 듯하다.
타루쵸와 룽다는 불교전래 이전부터 널리 퍼졌던 티베트 고유의 전통신앙인
뵌뽀교의 무속에서 기원한다. 티베트인들에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죽고 나서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진 영혼은 49일 동안 다음생의 부모를 만나러 여행을 떠난다.
이때 전생의 업보와 수행 및 보시공덕의 결과에 따라 내생에 새롭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부모가 선택된다.
이 49일 동안의 죽음에서 환생으로 가는 여행의 길잡이가 바로
티베트 판 사자의 서인 ‘바르도 퇴돌’이다.
마니석(瑪尼石)은 티베트불교의 경전이나 기도문, 진언을 얇고 넙적한 판석이나
크고 작은 바위에 새겨 넣은 것으로 절집이나 탑주위, 길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대개 옴마니 받메홈(om mani padme hum)이라는 육자진언이 색색으로 예쁘게 새겨져 있다.
관세음보살이나 물고기 등이 조각된 경우도 있다.
티베트어로 마니는 마니주(보석. 지혜)라는 의미로 읽힌다.
티베트인들이 자나 깨나 암송하는 옴마니 받메홈이라는 진언은 연꽃(관음보살)위의
보석(摩尼珠) 이라는 뜻으로 관세음보살에게로의 귀의를 염원하는 것이다.
마니퇴는 마니석이나 돌을 쌓아 올린 돌무더기나 돌탑을 말한다.
고갯마루나 강, 호숫가, 마을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룽다와 타루초가 같이 있다.
불교적 삶 때문인지 티베트인들은 나라 없는 설움과 경제적인 궁핍에도 불구,
소박하면서도 넉넉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밝고 온화하고 낙천적인 티베트다운 성품의 밑바탕에는 심오한 불심이 깔려있다.
티베트불교는 1960년대 이후 해외망명 승려들의 해외포교로 유럽과 미주지역에서
명상 등 티베트식 불교수행법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선(禪), 음악, 경전, 명상 등 티베트 불교의 모든 것이 서양인들에게
신비로운 종교의 정신적인 힐링수단으로 다가가면서 많은 사원과
수백만 명의 불교신자가 생겨나며 신드롬에 가까운 붐을 일으키고 있다.
티베트 불교는 중국 땅이 된 서장자치주나 동티베트는 물론
인도, 부탄, 네팔, 유럽 등지에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
티베트 불교는 태생적으로 밑으로 부터가 아닌 위(왕실)로부터 아래(백성)로 전파된 종교다.
달라이라마에의한 신정정치도 이 같은 배경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오늘날 티베트사원이 처한 현실은 어떠한가?
시대의 변화와 중국정부의 교묘한 사원 옥죄기로 신도 수는 계속 줄고
재정 상태는 파탄지경에 이르고 있다.
중국정부가 사원운영에 관한 각종법규와 규칙을 하달, 운용하고 있는데
이는 사원의 자율성과 승려숫자 제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체투지
중국 땅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변방의 서장자치구로 전락한채
지도상에서 사라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인들은 옛날 그대로의
독특한 전통문화와 풍습을 고집스레 간직하고 있다.
불교로 흥하고 불교로 망한, 그러면서도 불교로 인해 티베트의 맥과 정신이 강하고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민족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티베트는 불과 60여년전 중국의 무력 침공 (1950년 )에 의해
모든 주권을 잃기 전까지만 해도 정부와 고유통화, 군대를 가진 엄연한 독립국가였다.
동티베트라 일컫는 티베트동부의 캄과 암도지역 대부분이 중국의 무력점령후
스촨, 윈난, 칭하이, 간쑤성에 강제 합병 편입되면서 티베트지명이 사라지며
잃어버리고 잊혀진 땅이 됐다.
티베트인구의 절반이 살던 동티벳은 티베트 4대 신산 중 3개가 이곳에 있는 등
풍광이 아름답고 불교유적이 많기로 유명하다.
편입후 윈난의 따리, 리지앙, 호도협 등과 칭하이, 스촨의 많은 명승 유적들이
중국의 유명관광지로, 중띠엔, 야딩은 전설속의 샹그리라로
외국인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쓰촨성에만 중국내 전체 티베트인의 5분의 1인 1백22만명정도 거주하고 있다.
이들을 ‘캄파’라 하는데 옛 차마고도의 상권을 장악하고 장사를 하던 티베트인이다.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성격이 급하고 과격해 이들 지역에서 시위와 분신자살이 자주 일어난다.
"티베트역사를 오늘의 비극에 이르게한 씨앗들중 하나는 불법에 지나치게 치우쳤던 잘못이 크다.
불교에 대한 애착이 지나쳐 불교지도자 들은 종교와 사원과 종파를 최우선시 하고
티베트라는 국가나 민족, 정치, 백성의 삶은 그다음이었다.
웅장한 사원과 거대한 불상, 탑만이 진정한 불법인양 어리석은 믿음이 이어지고있다.
티베트인들은 마니차를 돌리거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거기에 적힌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 것으로 생각한다.
집안의 평안과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룽다는 긴 장대에 세로 줄로 매단 한 폭의 깃발로 마치 휘날리는 깃발의 모습이
바람을 박차고 달리는 말과 비슷해 풍마(風馬. 티베트어로 룽다)라 한다.
타루쵸는 오색의 깃발을 빨래 줄처럼 길게 엮어 바람에 날리게 한것으로 얼핏 보면
초등학교 운동회 때의 만국기를 보는 것 같다.
한번 달면 닳아 헤어져 없어질 때까지 그대로 둔다.
(휘날리는 타르쵸)
티베트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정신적 지주역할을 했던 사원의 활불들은
영향력이 땅에 떨어지고 그나마 활불의 계승자가 없어 대가 끊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다시 말해 지원은 없고 규제만 늘어나다 보니 대다수의 사원이 독자생존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그나마 유명 대형사원들은 관광수입, 시주 등으로 사세를 늘려가고 있으나
시골오지 등 나머지 대다수의 사원들은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한마디로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이다.
이래저래 사원의 역할이나 권위, 영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 같은 사원의 위기는 곧바로 티베트의 정체성의 위기와 미래의 불안으로 직결된다.
중국정부의 보이지 않는 규제로 쇠심줄 같은 결속의 고리였던 불교와 사원이
제기능을 못하게 되면 티베트정신의 구심점이 없어지면서 티베트민족이나
사회는 자연스레 분열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티베트의 분열은 결국 중국이 바라는 대로 티베트의 정체성이나 티베트다움에
큰혼란을 가져올 것은 불 보듯 뻔하다.
1950년 중국의 무력침공 당시 티베트관리나 불교지도자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오는 중국 무력침공 징후 보고를 ‘든든한 부처님이 있는데 무슨 침략이냐’며
번번이 묵살했다는 웃지못할 일화가 있다.
"수만 명의 승려들이 성스러운 종교의식을 치르고 불교에 헌신하는한
불교가 군대 없이도 외세의 침략을 막아주고 부처님의 땅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무지몽매하고 맹목적인 신앙심으로 위기를 애써 외면했다는 것이다.
또 중국군이 티베트 동부국경을 첫 무력 침공했을때 1959년 달라이 라마가 라사를 탈출,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할 당시 티베트에서 대규모 독립민중봉기가 발생,
무력진압으로 사망 8만6000명 등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냈다.
문화혁명 당시 사원6천여 개가 파괴되며 수십개의 사원만 남았고,
승려수도 30여만 명에서 1천명 이하로 줄었다.
불경은 불쏘시개가 되거나 소와 말의 사료가 되고 불상은 용광로에 녹여 고철로 사라졌다.
1980년 등소평, 호요방의 자유파가 들어서며 일부 사원이 복구되고
사원 순례, 티베트 전통의상 착용 , 축제, 두발, 분향 등이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은 승려들의 교리연구금지, 공산주의 사상교육 사원운영 규제등
많은 부문에서 아직도 보이지 않는 통제를 받고 있다.
서장자치주에서는 달라이 라마의 사진이나 초상은 소지하거나 보고 거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동티베트지역인 깐즈나 아바장족자치주 사원에서는 달라이라마 사진을 쉽게
볼수있어 규제가 많이 느슨해진것 같고 사원들이 속속 복구되고
티베트정신을 옭아맸던 각종 규제들이 많이 풀려 티베트불교가 다시 되살아나는 듯하다.
그러나 티베트불교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심상치 않은 균열들이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문혁 때의 상처가 워낙 컸던 데다 계속 이어온 중국의 보이지 않는
옥죄임으로 내상(內傷)이 깊어지고 있다.
결혼식
아름다운 자연
휘돌아가는 물길이 아름답다.
티베트의 미래는 ‘티베트 불교가 살아야 티베트가 산다.
티베트인들은 “자신의 마음은 텅 빈 투명의 빛이고 특성이 없고 구름이 없는 하늘과 같다”라고 말한다.
불가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최고 경지인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과 맥이 통하는 말이다.
불교선종의 제6대조인 혜능의 게(偈)에서 유래된 말로 '본래 하나의 물건도 없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무소유'의 청정한 마음,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깨달음의 경지를 비유하는 말이다.
티베트와 티베트불교가 외부의 어떠한 압력에도 끄덕도 하지 않고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영원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Kelsang Chukie Tethong(켈상 추키 떼똥=티벳의 여가수) - Voice From Ta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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