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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의 수도 쿠스코를 가다

박영복(지호) 2009. 3. 21. 09:33



'잊지 못할 첸체로의 관광 경찰'


잉카의 수도 쿠스코를 가다(2)

쿠스코에 도착해 시내 구경을 한 다음날 아침, 숙소의 식당에서 방금 한국으로부터 온 일가족을 만났다. 나처럼 리마에서 새벽 비행기로 도착한 것이다. 별다른 고산증세가 없으면 시내투어를 해보라고 권하고, 나는 첸체로로 향했다.

쿠스코를 중심으로 성스런 계곡을 향해 많은 유적지가 분포되어 있다. 그 계곡에 물론 마추피추도 있다. 성스런 계곡의 유적지는 하루만에 다 보기엔 좀 시간이 벅차다. 보통 유적지 간의 이동거리가 한시간 이상 되고 들릴 만한 유적지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성스러운 계곡 투어가 있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나는 투어체질은 아닌 듯하다. 어제의 경험, 한번 정도로 족하다.

아르마스광장 근처에 가서 관광폴리스에게 인포메이션을 물어보니 그 앞까지 동행해준다. 인포메이션 간판이 손바닥만해서 찾기가 영 힘들다. 첸체로 유적지로 가는 근교 버스를 물어보니까 자세히 알려준다. 쿠스코에서는 버스가 세 가지 종류이다.

시내버스, 근교버스(단거리 콜렉티보), 장거리버스. 유적지들은 근교버스를 타면 되는데, 두 군데의 버스 종점이 있으며 가는 방향이 약간 다르지만 모두 우라밤바까지 가므로 쿠스코 근교 지도를 잘 살펴보고 찾아가야 한다. 인포메이션에서 알려준 버스종점까지 지도를 보며 걸어서 찾아갔다. 쿠스코 중심가도 어지간한 유럽시내만큼 걸어다닐 만하다.

▲ 쿠스코 시내의 엘솔 거리. 쿠스코에서 중심이 되는 거리이다.
ⓒ2004 김성희
버스 종점은 우리나라의 70년대 시골 버스 종점같은 분위기이다. 매표소가 있어서 거기서 표를 사야 한다. 미리 가이드북에서 읽어서 알고 있었으나 혹시 몰랐어도 상관 없을 것 같다. 매표소 앞에서 서자 옆의 원주민아저씨가 뭐라고 뭐라고 한다. 뛰어난 눈치로 보건데 어디 가느냐는 물음인 듯하다.

그래서 첸체로라고 하니까 자기가 매표소에다가 첸체로라고 말하고는 얼마인지까지 친절하게 설명한다. 처음에는 직원인가 싶었는데 보니까 그도 아니다. 그냥 외국인이니까 도와준 것이다. 여행의 출발부터 조짐이 좋다.

매표소에서 표와 거스름돈을 받고 두리번거리자 그 친절한 원주민아저씨가 이 버스라고 손짓을 한다. 버스 앞쪽에 우라밤바라고 커다랗게 써 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버스에 오르니 여행객으로 보이는 유럽인 두세 명이 뒤쪽에 앉아 있다. 나는 목적지를 놓칠까봐 차장이 있는 문 옆에 앉았다. 쿠스코 시내를 벗어나자 금방 시골경치로 바뀐다. 꼬불꼬불한 길을 올라서 시내를 등지고 언덕을 넘어가자 황량한 들판과 산들이 펼쳐진다.

▲ 쿠스코를 벗어나면 황량하기 그지 없는 경치가 펼쳐진다. 안데스!!!
ⓒ2004 김성희
잠시 낯선 경치에 넋을 잃고 있는데, 내 옆자리에 앉은 페루청년이 말을 건다. 매우 서툰 영어로 "어디서 왔느냐, 지금 어디로 가느냐, 몇 살이냐, 직업은 뭐냐" 등. 호기심이 무척 많은 청년이다. 이 청년의 이름은 에드워드고, 지금 법률 회사에서 일하고 있단다. 리마에서 대학을 나왔다고 한다. 내가 지금 첸체로에 간다고 하니까, 혼자서 다니냐며 놀라워 한다.

그러더니 내일은 어디를 갈 거냐고 묻는다. 피삭에 갔다가 우라밤바를 둘러볼까 한다고 하니까, 그러면 내일은 자기랑 같이 가자고 한다. 친구 하자면서. 오늘은 일 때문에 우라밤바에 가야 하지만, 내일부터 자기도 휴가 기간이라나? 나에게는 당연히 고마운 제의였다. 내일 내 숙소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는 첸체로에서 내렸다. 역시 이렇게 버스를 타고 다녀야 현지인 친구가 생긴다.

첸체로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쿠스코에서 첸체로까지는 약 50분 가량 소요된다. 버스에서 내려 좁다란 골목을 따라 10분 가량 올라가면 매표소가 있다. 거기서 어제 산 입장권(주유권)에 구멍을 뚫고, 다시 좁은 골목을 따라 10분 더 올라가니 넓은 마당이 나온다. 그 넓은 마당이 바로 매주 일요일 첸체로 민속시장이 열린다는 곳이다. 그때는 사람들이 북적댄단다.

참고로 쿠스코 근교의 민속시장은 피삭이 제일 규모가 크고 그 다음이 첸체로다. 피삭은 매주 화, 목에 열리고 첸체로는 일요일에 열린다. 둘 다 볼 필요는 없을 듯하고, 상황에 맞게 하나만 구경하면 될 것 같다. 내가 간 날은 첸체로 시장이 안서는 날이었다. 다행히 그 다음날은 피삭의 장이 서는 날이므로 오늘은 조용히 유적지 감상이나 하려고 작정했다.

▲ 일요일에는 민속시장이 서서 사람들로 북적댄다는 첸체로의 광장
ⓒ2004 김성희
마당의 위쪽으로 아주 예쁜 성당이 있다. 성당 앞에는 몇 명의 원주민 여인들이 뜨개질을 하면서 물건을 팔고 있다. 역시 조용하다. 원주민들이 혼자서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나를 쳐다본다. 웃으며 가볍게 인사를 하고 성당 앞에 앉았다. 성당문이 잠겨서 어떻게 하면 들어가볼까 하고 궁리하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관광 경찰을 데리고 와서 뭐라고 뭐라고 한다.

그러더니 관광 경찰이 성당입구로 가서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구경하라고 손짓한다. 아마도 그 아저씨가 혼자 온 나를 보고는 관광경찰에게 알려서 일부러 와서 문을 열어준 듯하다. 아이고, 고마워라.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성당 안을 구경했다.

▲ 첸체로의 성당은 스페인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내부는 남미의 정열이 느껴진다.
ⓒ2004 김성희
성당의 겉모습은 작고 예쁜데, 내부 장식은 놀랄 만큼 화려하다. 음, 아는 사람들은 이미 알겠지만 남미의 가톨릭은 유럽과 분위기가 다르다. 이들이 개종한 것은 식민지 시대였고, 그것은 강압적인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유럽과는 다른 방식으로 종교가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

즉 남미식 가톨릭이 된 것이다. 성당의 곳곳에 온갖 성자들의 화려한 도자기 인형 장식으로 돼 있다. 유럽 성당들의 대표적인 장식이 모자이크된 스테인드글라스라면, 남미의 성당은 인형들이다. 정말 다양하고 아름다운 인형들이 가득하다.

성당 입구에 사진을 찍지 말라는 푯말이 있다. 성당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고는 아쉬운 표정으로 그 푯말을 쳐다보고 있으려니까, 관광경찰이 웃으며 사진을 찍으라는 시늉을 하면서 대신 밖에서 볼 수 없도록 이쪽에서 찍으란다. 너무 고마운 배려다.

성당에서 나와 성당의 뒤쪽에 있다는 잉카시대의 유적지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아까 그 관광 경찰이 따라온다. 그러더니 아예 유적지 안내를 해준다. 물론 이 사람은 영어를 못한다. 단어 몇 마디도 겨우 할 정도 수준. 내가 스페인어를 전혀 못한다고 했는데도 정말 열심히 설명하면서 안내를 해준다. 성당 뒤쪽의 유적지는 생각보다 넓었다. 이 경찰 아저씨의 안내가 없었다면 그냥 넓구나 하면서 잠시 다니다 돌아왔을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고마운 아저씨다.

혼자 온 배낭여행객을 위해서 2시간 가량 일일이 유적지 구석구석을 가이드를 해주다니…. 사실, 처음엔 유적지가 너무 한적하고 아무도 없어 조금 의심도 들었다. 게다가 중간에 나보고 참 예쁘다(?)고 하는데, 혹시 딴맘 먹는 것은 아닐까 싶었지만 마지막에 처음 성당 입구까지 안내하고는 악수하고 헤어지는데, 너무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의심하다니…. 관광경찰들이 모두 친절하거나 착한 것은 아니었지만 첸체로의 이 경찰 아저씨는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 첸체로의 네모진 경작지들.. 우리나라 피아골이 연상되지만, 그 선의 아름다움은 아무래도 피아골을 따르지 못하는 듯하다.
ⓒ2004 김성희
첸체로 유적지는 계단식 경작지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피아골을 연상하면 된다. 하지만 피아골의 계단식 밭들이 부드러운 선을 이루는 반면 여기의 밭들은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은 이 경작지에서 작물을 재배하지는 않는다. 경작지 저 안쪽에 가보면 채석장이 있다. 잉카인들의 돌을 다루는 솜씨에 대해 극찬을 한 글이 생각난다. 정말 네모반듯하게 돌들을 깍아낸 솜씨가 대단하다.

▲ 채석장의 흔적을 보니 저 돌들을 어떻게 저렇게 깼을지 궁금하다.
ⓒ2004 김성희
계단식 밭을 어떻게 경작했을까? 물을 흘려보내는 수로의 흔적을 보고는 어제 본 땀보마차이가 생각났다. 수로의 아래쪽으로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바위에 대해서 한참을 뭐라고 뭐라고 설명하면서 바위 아래로 위로 오르락 내리락 한다.

아! 껜코, 어제 껜코도 하나의 바위를 파서 제례장을 만들었다고 했다. 지금 이 바위도 하나의 바위를 파서 미로처럼 만들어 놓았으며 바위 위쪽에 제례장이 있다. 경찰 아저씨가 제단에서 재물을 바치는 시늉을 해서 퍼득 이해가 되었다. 이와 같은 거대한 바위를 이용한 제례장은 각 마을마다 있던 모양이다.

▲ 저 커다란 바위에 계단도 있고 아래위로 제단도 있다. 이런 것을 껜코라고 부르나보다.
ⓒ2004 김성희
경찰 아저씨와 헤어진 후 마을을 슬슬 둘러보면서 버스 타는 곳으로 걸어나왔다. 그런데 유난히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아, 하교시간이로군. 희한한 것은 초등학생들부터 고등학생들까지 모두 같은 교복을 입었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로 거리가 가득하다.

꼬마 아이들은 내가 신기한지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지나간다. 어떤 녀석은 참으로 민망할 정도로 빤히 쳐다보면서 지나간다. 내가 '올라'하고 인사하니까 어떤 애들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올라'라고 인사하고, 어떤 애들은 수줍어서 얼른 달려가 버린다.

▲ 버스를 기다리면서 하교길의 학생들과 공놀이를 하였다. 초등학생들부터 고등학생들까지 교복이 똑같은 것이 신기하다.
ⓒ2004 김성희
http://cafe.daum.net/netizenbonbu"> 버스정류장 앞 구멍가게에서 잉카콜라를 하나 사서 마시며 버스를 기다렸다. 택시운전기사들이 쿠스코를 외치며 흥정을 하려 하길래 웃으며 콜렉티보라고 말하며 거절했다. 한번 거절하니까 다시 권하지 않는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여학생들 세 명이 배구공을 꺼내 공놀이를 한다.

나도 같이 하자고 손짓을 하니 끼워준다. 참고로 말하면 나는 몸치며 운동치이다. 공이라면 무서워서 눈감고 공과 같은 방향으로 뛰는 내가, 웬일로 공놀이? 이유는 이 아이들과 친구하고 싶어서이다. 내가 공을 잘 못받아 쩔쩔 매니까 애들이 낄낄거리며 놀린다. 내가 애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한국말로 '너네 정말 잘한다'라고 말하니까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으쓱해한다.

조금 뛰고 나니까 숨이 가쁘다. 공의 주인인 학생이 가야 한다고 해서 공놀이는 끝났다. 옆에 선 아이에게 영어할 줄 아냐고 물으니 멀뚱한 표정이다. 아깝다. 이 분위기에서 영어가 조금이라도 통하거나 내가 스페인어를 할 줄 알면 친구를 만들 수 있는데…. 역시 스페인어를 좀 공부해 가지고 왔어야 했다. 후회막급이다.

우라밤바 쪽에서 버스가 온다. 쿠스코행이다. 그런데 사람이 가득하다. 모두들 버스를 타려고 달려드는데, 차장이 나를 부르며 타란다. 여행객에 대한 배려다.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