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밭 들어가는 삼나무길 |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연휴를 택해 전라도로 먼 길을 떠나면서 어쩌면 차량들 속에 발이 묶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겹게 긴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고 찾은 보성에서는 때 마침 "보성다향제"라는 지역 축제가 열리는 첫날이라 읍내가 시끌벅적 하였다. 차밭 보기는 이른 새벽에서 아침에 이르는 시간이 제격이란 생각에 복잡한 사람 속으로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짐짓 다른 곳으로 발을 먼저 돌린 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저녁 무렵 율포해수욕장으로 나가 묵을 방을 잡으려 하니 도저히 방을 구할 수 없어서 보성 읍내까지 십여 곳을 들러 보아도 빈 방이 없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난감한 상태에서 저녁도 못 먹고 벌교 쪽으로 나아가다 길 중간에서 만난 자그마한 여관에 그것도 마지막 손님으로 방을 얻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 작은 시골 동네에 차 축제가 열리는데도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다 모인 것처럼 보인다. 여관 주인의 말로는 축제가 아니더라도 주말이면 방 잡기가 힘들다고 한다. 사람들은 관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제 발로 발품을 팔며 주말이면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씻고 누어도 쉬이 잠이 들지 못한다.
미리 준비 없이 다니는 버릇이 밴 탓에 때로 곤란을 겪는 일이 다반사(茶飯事)이며 오늘 또한 이런 황망한 경험을 하고 만다. 다반사(茶飯事)!, 차 마시고 밥먹듯 늘 하던 예사로운 일이라는 뜻, 차밭을 찾아온 나는 차를 좋아한다지만 밥 먹는 것만큼 차를 마시지도 조예도 깊지 못하다는 것을 새삼 안다. 나도 그냥 그 차밭의 풍경 하나만을 그리며 찾아든 갑남을녀와 다르지 않음을 인정할 밖에.
◇ 이른 아침 차밭 오르는 풍경 |
사내들이 사귀고 친구가 된다는 뜻 속에는 무언가 의기투합할만한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이데올로기란 정치든 예술이든 그 어느 취미가 되었건 관계가 없다. 보성 땅에 들어와 빗소리 추적대는 밤을 지새우며 몸 뒤척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십 수년 전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일했던 터가 전라도 넘기 전의 하동이었다. 어느 봄날 쌍계사 들어가는 양옆 야생 차밭에서 딴 차를 볶아내는 곳에 들러 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 그리고 다산 정약용의 교류를 어렴풋하게 머리에 넣고 우전(雨前) 한 봉지를 한지 봉투에 얻어 돌아왔던 그 옛날의 기억이 다시 초의선사와 김정희의 사귐을 생각하게 한다. 차를 매개로 하여 이들은 시와 사상의 교류를 하였으며 그런 정신적인 사유(思惟)의 교감은 어릴 적 동무 같은 격의 없는 사이로 발전을 한다.
다성(茶聖)이라 불리는 초의선사는 이미 24살이 위였던 다산과 교류하고 있었고 초의선사는 다산 정약용과의 만남을 계기로 다산의 아들 정학연을 만나고, 24살 동갑내기였던 추사 김정희를 만나게 된다. 이때가 1809년이다.
◇ 차밭 이랑 사이로 안개 피어나고 |
초의선사는 해마다 봄이면 정성 들여 해남 대둔사 일지암에서 차를 만들어 추사에게 보냈다. 추사는 차가 떨어지면 글을 지어 초의선사에게 차를 채근했다.
<편지를 보냈는데 한 번도 답은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산중엔 반드시 바쁜 일은 없을 줄로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나 같은 세속 사람과는 어울리고 싶지 않아서 나처럼 간절한 처지도 외면하는 것입니까........ >
나는 스님을 보고 싶지도 않고 또한 스님의 편지도 보고 싶지 않으나 다만 차와의 인연만은 차마 끓어버리지도 못하여 또 차를 재촉하니 편지도 필요 없고 다만 두해 의 쌓인 빚을 한꺼번에 챙겨 보내되 다시는 지체하거나 빗나감이 없도록 하는 게 좋을 것이요…….>
이들이 좀 더 격의 없어진 다음 추사 김정희가 초의선사에게 보냈던 편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슬슬 웃음 짓게 만든다.
◇ 연두빛 싱그러운 아침, 청량하다. |
<곡우가 지나고 단오가 가까워졌는데도 두륜산의 한 납자(衲子)는 소식조차 없으니 어찌된 일인가. 말 꼬리에 매달아 보낸 것이 도중에 떨어진 것인가 아니면 유마병(維摩病·중생의 아픔을 보고 부처가 앓았다는 병)이라도 앓고 있는 것인가. 만약 더 지체하면 마조 할(중국 마조 선사가 가르칠 때 지른 고함)이나 덕산봉(중국 덕산 스님이 가르침에 사용한 몽둥이)으로 그 몹쓸 버릇을 징계하고 그 원인을 다스릴 터이니 그대는 깊이깊이 깨닫게나.>
비록 차로 인한 인연은 아닐지라도 나에도 이런 저런 뜻 물어가며 농(弄)을 할 친구가 있는가? 이데올로기가 있는가? 그런 사귐이 부럽고 부러운 것이다.
나중에 초의선사는 추사 김정희가 한양으로 올라가 머물던 30살 되던 해 추사로부터 초대를 받아 두 해 동안 한양에 머물며 많은 선비들과 교류하였고 추사가 제주도에 유배되자 유배지까지 찾아가 함께 차나무를 심고 차를 만들고 교분을 나누었다. 힘든 친구를 찾아가 말로 위로하는 대신 차나무를 같이 심는 이 모습은 감동이다. 이 시기 추사 김정희가 초의선사와 함께 생활하며 써 준 시를 보면 그들의 각별함이 절절이 느껴진다.
스님은 멋대로 마냥 웃고 있으소
마음에 걸림돌 없는 곳이 바로 우리 사는 데라오.
사람 옆의 산새는 부질없이 지저귀다 말다하고
손님 맞은 시내구름, 스스로 더웠다 시원했다 하네.
한 침상에서 다른 꿈 없는 것이 좋기만 한데
같은 음식 먹으면서 다른 속내 있겠는가. <초의에게 주다 贈草衣>
◇ 김정희의 글씨 명선(茗禪) |
더구나 추사 김정희는 선과 차가 둘이 아니라는 초의선사의 선다일여(禪茶一如)사상을 깨닫고 그 유명한 명선(茗禪)이라는 글을 선물한다. 명선(茗禪)에서 명(茗)은 다(茶)와 같은 뜻이며 의미로는 선다일여(禪茶一如), 다선일미(茶禪一味)와 같은 뜻이다. 초의선사는 추사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뇌소(雷笑)와 설유(雪乳)라는 차를 달여 한잔 마시자며 슬피 눈물을 적셨다. 뒤늦게 부음을 접하고는 <그윽한 길을 꽃바람이 쓸어 가는데 외로운 달만 어둡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친구가 아니라 도반(道伴)이 된다. 출가 수행하지 않았지만 추사 김정희의 당대 사상적 깊이와 대둔사의 정신적 지주였던 초의선사의 사상적 교류는 같은 길을 추구하고 같이 공부하여 서로를 이롭게 하는 동갑내기의 도반에 다름 아니었다. 선(禪)을 추구하고 생활에 있어서 정신을 올곧게 다잡는 수단으로서 차(茶)는 그들을 이어주는 매개였던 것이다.
◇ 삼나무 숲과 차밭의 조화로운 풍경 |
밤새 선잠만 뒤척이다 새벽녘에 여관방을 빠져나와 차밭으로 가는 길, 비는 아직 그칠 줄을 모른다. 산마다 안개비 자욱한 남도의 봄, 집집마다 담을 넘어 자라는 감나무의 검은 둥치에 피어난 연두색 잎들이 싱그럽고 어제의 고생스러움이 덜어지는 느낌이 신선하다.
우리나라의 차밭은 지리산을 기점으로 산청, 하동에서 해남에 이르기까지 남해안을 따라 띠처럼 펼쳐져 있다. 보성지역의 경우, 이미 자생 차밭들이 군데군데 있어왔었는데 6.25전쟁이후 황폐해진 차밭을 일대와 임야에 인위적으로 규모를 넓혀 차밭을 가꾸어 오늘에 이르렀다. 차는 년 간 1500mm 이상의 강수량이 있는 지역이면서 토양의 투수성과 통기성이 좋아야하며 기후가 서늘하여 일교차가 크고 공중 습도가 높은 지역이어야 양질의 차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보성읍 봉산리 일대 대규모의 차밭 조성은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증거라고 이곳 사람들은 자랑한다. 실제 보성에는 1,111ha(전국차재배면적46%)의 차밭이 있으며 전국 차 생산량 40% 차지하고 있다.
◇ 차밭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풍경 |
이른 아침 새벽이 막 걷힌 즈음 봇재를 넘어 들어선 차밭 입구에는 아직 사람이 드물어 한적하다. 차밭도 차밭이거니와 차밭으로 들어가는 삼나무 길은 비속에 안개가 피어나 속계를 떠나 피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으로 또 하나의 감동을 선사한다. 이곳에 차밭을 조성하며 같이 심었던 삼나무는 하늘을 가릴 정도이다. 차밭과 삼나무가 어떤 관계를 가지는 지 잘 알 수 없지만 차밭으로 오르는 길, 차나무와 삼나무의 어울림은 때로는 이국적이고 때로는 이것이 보성의 색깔이다 싶다.
이른 아침의 차밭은 아직 한적하다. 아침 햇살에 골골이 음영을 드러내는 실루엣을 보지는 못하지만, 반대로 비에 젖은 차나무들은 그 색깔이 맑고 상큼하다. 안개가 오르내리는 차밭 가운데서 비는 차나무에 녹아든 만큼 나에게 녹아든다. 나도 차나무처럼 푸르게 물이 들까 하는 마음에 그 비를 피할 생각 별로 없어 가벼이 몸에 젖는 비를 맞는다.
◇ 삼나무 숲 사이로 밝게 빛나는 차밭 |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전(雨前)을 따는 곡우(穀雨)를 훨씬 지나 입하(立夏)에 접어드는 시기임에도 차나무엔 새잎들이 속살처럼 연둣빛을 띠고 숨을 쉬는 소리를 빗속에 토해낸다. 나는 그 기운을 받아 내 속의 온갖 추한 것들을 뿜어내 맑아지는 느낌이다. 눈으로 보는 연둣빛의 즐거움에 더해 호흡하며 청량해지는 기분은 어제의 힘듦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이래서 초의선사는 뇌를 맑게 하고, 입맛을 돋우며, 눈을 밝게 하고, 피로를 풀어주며, 술을 깨게 해주고, 갈증을 멎게 하며, 더위를 이겨내고, 더위를 물리치며, 잠을 쫓아준다는 차의 구덕(九德)을 일러 말하였는지 모르겠다.
아주 천천히 차밭을 오른다. 차밭의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풍경 또한 일품이다. 가까이 짙은 녹색이 멀리로는 옅어지고 산등성이 돌아가는 차밭에서는 풍만한 젖가슴처럼 부드럽다. 적당히 굵어졌다 가늘어지는 빗속을 걸어 한 걸음씩 발을 옮길 때마다 봄기운이 내 속으로 들어오고 눈을 감으면 잘 만들어진 다완(茶碗)에 녹은 봄의 차향이 코끝에 감기는 듯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내가 성실한 애다인(愛茶人)이 아니라 하더라도 초의선사의 시 한 수를 기억할 수밖에 없다.
◇ 금둔사 설선당의 풍경 하나 |
옥화 같은 차를 한 잔 마시니
겨드랑이에 바람이 일어
몸이 가벼워져 하늘을 거니는 것 같네
밝은 달은 촛불이 되고 또한 친구가 되며
흰 구름은 자리되고 아울러 병풍이 되어주네 (초의선 '동다송' 제16송. 의역)
차밭을 올라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슬며시 만족한 웃음을 짓는 그들의 표정을 살펴보면 또 그만큼 만족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갑자기 대둔사 일지암(一枝庵) 자우홍련사(紫芋紅蓮社)를 가고 싶어진다. 누구라도 그곳에 가면 스스로 차 한잔 달여 마실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곳, 그곳에서 초의선사는 유천(乳泉)에서 차 끓일 물을 기르고 추사 김정희가 죽로지실(竹爐之室)이라 문패를 걸어놓는 상상을 한다.
◇ 추사 김정희의 '죽로지실' 차를 끓이는 방을 뜻한다 |
아니면 조선시대 사헌부 관원들이 매일 한번 씩 만나 차를 마시며 토론을 벌이던 다시(茶時)를 열었듯 내게 같이 교우할 친구가 있어 작은 쪽창으로 봄볕이 드는 툇마루에 앉아 차 한 잔 우려 마시고 싶다. 봄빛으로 채워진 차향과 빛깔을 공유하는 시간, 아무 말 없이 물 따르는 소리 맑은 공간에는 봄이 무르익는 만큼 정도 새록새록 하리라.
비 내리고 봄빛 머금은 차밭을 지나 다시 삼나무 길을 걷는 동안 나는 행복하였다./ 배강열
'중국소식 > 중국 茶'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내 대량생산하는 천연비누 이미지 -2 (0) | 2007.06.13 |
---|---|
한국내 대량생산하는 천연비누 이미지 (0) | 2007.06.13 |
中国茶叶博物馆庭院中的风景(自制MV) (0) | 2007.04.28 |
중국의 명차(名茶) - 보이차(普洱茶) 제작과정 (0) | 2006.11.29 |
茶와 茶具 (0) | 2006.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