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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 앙코르왓

박영복(지호) 2006. 8. 4. 16:57
천년 전의 시간 너머로

9~13세기경 인도차이나 반도에는 크메르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매혹적인 제국이 등장했다. 그들은 조상의 문화와 힌두교 및 불교의 풍습을 적절히 사회에 적용시켜 매우 독창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화려하고 신비롭기까지 한 앙코르의 문명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고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유럽인들에 의해 알려졌다.

1970년대에는 대학살의 암흑기를 치르며 무관심과 이기적인 계산기를 두드리며 아시아 변방국가의 비극을 애써 외면하던, 서방 국가와 전인류의 양심에 짐으로 남아있던 킬링필드라는 대참사로 캄보디아는 다시 한번 알려진다. 현재 캄보디아는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고 다시 일상에서 관광사업 개발과 문화유산 보존에 힘쓰고 있다.


■ 미지의 과거를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


한 비문에 의하면 자야바르만 2세(802~850)가 앙코르의 창시자이자 최초의 왕으로 기록돼 있다. 또 지금의 앙코르 지역을 도읍으로 건립한 왕은 아쇼바르만 1세(889~900)다. 이렇게 시작된 앙코르는 1434년 지금의 프놈펜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막을 내렸다.

그들이 왜 이 거대한 성벽과 사원의 도시를 버리고 프놈펜으로 떠났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앙코르를 지속적으로 침범한 태국의 위협이 수도로서의 적합성을 잃게 했을 것이란 추측만 있을 뿐이다.

왕국의 주민들이 앙코르를 버리고 떠난 이후 앙코르는 수백 년간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갔다. 선교사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몇몇 탐험가들만이 방문하던 이곳은 1860년대 프랑스의 앙리무오에 의해서 세계의 학자와 여행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 세계 7대 불가사의 … 우주의 연장

정확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아 사원의 용도와 상징성을 추측한다는 점에서 앙코르왓의 신비감은 증폭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앙코르왓은 수리아바르만 2세(1112∼1152)에 의해 약 30년에 걸쳐 건축된 사원으로 힌두교의 비슈누 신에게 봉헌됐다.
앙코르왓의 구조는 힌두교의 우주관에 입각한 우주의 모형이다.

주사위의 눈처럼 이루어진 다섯 개의 탑 중에서 중앙의 높은 탑은 힌두교에서 말하는 천상의 산인 메루산의 봉우리를 상징한다.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중앙탑이 있는 중앙성소를 둘러싸고 있고, 또 이곳을 일반인들이 살았던 곳이 둘러싸고 있는 형식의 3단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상계와 지옥계 및 천상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앙코르왓의 전체 크기는 동서로 1.5km, 남북으로는 1.3km에 달하며 서쪽입구에서 본당까지의 거리는 350m에 이른다. 정글 한 가운데 2m가 넘는 거대한 돌들을 수십 미터 높이로 쌓아 올려 만든 앙코르왓의 뛰어난 예술성과 조형미, 거대함은 많은 의문점과 신비함을 남기고 있다. 거대한 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옮겨져 왔으며 어떤 건축법으로 축조된 것일까 하는 의문들은 피라미드와 함께 앙코르를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만들었다.


■ 앙코르시대, 크메르인의 숨결 회랑부조

모든 벽화의 부조들은 금세 벽에서 튀어 나올 것만 같이 생생하고 정교하며 역동적이다. 사람뿐 아니라 자연의 모습 또한 다양하고 흥미롭게 묘사돼있다. 사방을 돌아가며 빼곡히 벽을 메우고 있는 부조들은 신과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전쟁, 신화, 승리를 노래한다.

제일 먼저 힌두의 마하바라타(Mahabha rata) 신화에 등장하는 ‘쿠루평원의 전투’를 묘사한 부조가 보인다. 쿠루평원의 전투는 수리야바르만 2세가 왕위를 차지한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전투장면은 파괴기에 해당하고 그것을 극복할 절대적 영웅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이어지는 ‘시바신과 수리야바르만 왕의 행렬’ 역시 왕을 신격화 하기 위한 상징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천국과 지옥’ 부조에서는 살벌하고 끔찍한 지옥을 묘사함으로써 왕명불복종에 대한 경고와 위협을 나타낸다.

그리고 ‘천지창조의 신화, 우유바다 젓기’가 나온다. 이것은 모든 부조의 중심이며 동시에 시작이다. 이 부조에 나타난 인드라신의 대관식은 이 사원의 주인공인 수르야바르만 2세의 대관식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몇몇 기록을 통해 수르야바르만이 왕위에 오른 뒤 일종의 정통성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왕코르왓을 세워 비슈누신과 자신을 동일시했으며 회랑의 부조를 통해 왕위계승의 정당성을 구체화시킨 것을 알 수 있다.


■ 한발 한발 내딛어 신의 세계로

미물계와 인간계를 지나 3층 신의 세계로 진입하는 계단은 70도 경사에 계단의 폭도 매우 좁아 마치 절벽처럼 보인다. 모든 인간들은 왕(비슈누신)에게 접근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허리를 구부려야 한다. 마치 벽을 기어오르는 스파이더맨이라도 된 듯 관광객들은 가파른 계단을 조심조심 엉금엉금 기어오른다.

손과 발을 모두 쓰지 않으면 쉽사리 오르지 못할 계단을 우주의 중심으로 가려는 욕심으로 너도나도 열심히 오르내린다. 그 와중에 가파른 계단을 총총히 뛰어 내려오는 캄보디아 아이들이 관광객의 탄성과 박수갈채를 자아내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우주로 향하려면 인간의 거만한 욕심과 자만심을 버리고 더없이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어 조심스럽게 경건한 마음으로 임하라는 크메르인의 의도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