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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 집주인과 싸워 위약금 받아내기

박영복(지호) 2009. 9. 10. 07:00

한족 집주인과 싸워 위약금 받아내기
 

자고 일어나 보니 집안이 ‘물바다’가 된 사연

창문 너머로 먼동이 터오는데 왠지 방 안이 사우나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침대 밑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풍덩’ 소리가 났다. 앗! 집안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그것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더운 물이어서 마치 사우나 온 느낌이었다. 아내는 부리나케 흔히 ‘우예(物业)’라고 부르는 관리사무소로 전화를 하고 집주인에게(세들어 사는 집이므로) 곧 바로 연락을 했다. 간밤 수도배관에서 물이 샌 게 원인이었다.

정황으로 보아 물인 샌 시간은 우리 가족이 늦게 잠든 새벽 2시 이후부터 우리가 깨고 난 아침 6시 사이로 추정된다. 관리사무소에 소속된 수리공은 일단 배관을 긴급조치 해 새는 물을 멈추게 했다. 재산상의 피해가 발생한 사태인지라 관리사무소 직원이 와서 현장을 사진 찍어갔다. 배관으로 흘러나온 물은 아래 집들까지 흘러 내렸고 아래 층 입주자들로부터 우리 가족은 거센 항의를 받았다. 어떤 이는 자신 안방의 장롱까지 젖어 못쓰게 되었다며 배상을 요구해왔다.

또한 관리사무소에서는 이 모든 일들이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통보 해왔다. 물이 샌 수도배관은 알고 보니 원래 시공돼 있던 게 아니라 분양 후 집수리 과정의 부착물이라는 것이다. 우리 가족 또한 당연히 잠들어 있을 시간에 배관 물이 저절로 샌 것을 인지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누가 누굴 탓할 일은 아니었다.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집주인의 발뺌

며칠 후 다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집안의 물을 구석 구석 닦아냈으나 습기가 가득 찬 나무 마룻바닥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더니 길쭉한 피라미드처럼 바닥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마침 네살짜리 아이가 뛰놀다가 쿵! 하고 넘어졌다. 그 다음 날은 같은 재질의 다른 방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문제는 습기 찬 목재 바닥에서 간혹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누가 알려줬다. 마루바닥과 방이 돌출되고 균열이 생기자 일단 보기도 흉측할 뿐더러 통행이 불편해서 아이가 있는 우리 가정이 도저히 정상적으로 살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런 사정을 설명하고 원상복구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참고로 우리가 세 들어 사는 집의 소유자는 유명 부동산 체인점의 이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 집 또한 그 부동산 체인점의 중개를 통해 임차했다. 그런데 미안해야 할 집 주인은 오히려 불쾌하다는 반응이었다. 한마디로 너희가 일을 저질러 놓고 왜 나한테 따지냐는 식이었다. 하긴 한족 집주인들이 오죽 기가 센 가.

필자는 차근차근 그리고 조목조목 설명했다. 유명 부동산 체인점의 이사 ‘씩’이나 되는 사람이니 관련 지식도 많고 나름대로 상식이 통하리라는 믿음에서였다. “새벽 2시에서 아침 6시까지 집주인이 추가로 설치한 배관의 하자로 인하여 물이 샜으므로 관리사무소의 책임도 아니고 임차인인 우리 책임도 아닌, 당연히 집주인이 책임져야 할 사항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하자로 인하여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영위하지 못 할 정도로 주거환경이 훼손되었으니 이 또한 집주인이 책임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집주인은 오히려 점잖게 우리를 나무랐다. 이런 일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것은 중대과실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나는 “신혼도 아닌데 당신 같으면 그 시간에 잠 안 자고 뭐하냐!”고 따지면서 나름대로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고 맞섰다. 당연히 말싸움이 길어졌다.

별도의 특약이 없는 한 임대인은 임차인 집의 수선 의무가 당연히 있다고 강조하고 으르렁거리며 항의하자 집 주인은 뒤늦게 수리를 해주겠다고 얼버무렸다. 며칠 후 집 상태를 보러 온 인테리어 업자는 견적이 1만 위안이 넘는다고 했다. 그러자 집 주인은 난색을 표하며 수리날짜를 질질 끌었다. 폼을 보니 바로 수리해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어쩌랴. 중국 살면서 이런 일은 일상사인 것을. “내 집 마련 못하고 셋방살이 사는 내가 죄지”라고 되내일 뿐.

집 주인은 무려 한 달여를 수리 해준다는 말만 하면서 미루고 그렇게 시간을 질질 끌었다. 아마 우리 가족이 그러다가 제풀에 지쳐서 그냥 살거나 아니면 차라리 이사 가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물바다가 지나간 우리 집 나무 마룻바닥과 방은 가운데 부분이 돌출되어 텔레비전을 보면서 누울 수도 없고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참다 못한 나는 집주인에게 이사를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1년 계약이었는데 계약기간이 몇 개월 남은 지라 선불로 낸 남은 집세와 보증금을 돌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집 주인 참으로 대단했다! 남은 집세는 돌려 주는데 보증금은 못 주겠다는 것이었다. “너희가 먼저 이사를 가자고 했으니 계약 위반으로 보증금은 돌려 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며 빨리 이사를 가라고 독촉했다. 맙소사. 그간 불편을 감수하고 다른 것도 안 묻고 조용히 남은 월세와 보증금만 돌려주면 이사 가겠다는데 그것마저 안된다니... 이쯤해서 폭발했다. 멀쩡한 주유소에 화염병 던진 꼴이었다. 선의가 묵살되면 분노로 바뀌는 법. “너 잘 걸렸다!”

수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집주인의 법적 책임

잠깐 여기서 관련 법 조항을 집고 넘어가자. 일단 배관에서 물이 샌 것은 우리 가족의 책임이 아니다. 집 주인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부착한 배관의 하자까지 우리가 일일히 점검할 의무는 없다. 임차인은 그저 통상적인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면 족하다. 따라서 그 배관의 하자로 물이 새서 나무 마루바닥에 균열이 가는 등의 훼손된 상황은 역시 임차인의 책임이 될 수 없다.

▲ 중화인민공화국 계약법
▲ 중화인민공화국 계약법
 중화인민공화국 계약법 218조는 "임차인이 약정한 방법 또는 임차물의 성질에 따라 임차물을 사용하여 임차물로 하여금 파손되게 한 경우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아니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식탁 위에 올라가 노래 부르다가 식탁이 부서졌다면 모를까 밥을 먹다가 식탁이 부서졌으면 임차인이 손해배상의 의무는 없고 오히려 집주인이 식탁을 수리해줘야 한다는 법리다.

또한, 계약법 제220조는 "임대인은 임대물에 대한 수선의무가 있다. 단, 당사자 간에 별도의 규정이 있는 경우는 제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별도의 약정이 없는 한 기본적으로 고장난 것은 집주인이 알아서 고쳐줘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수선의 의무는 엄연히 집주인에게 있다.

안 고쳐주고 버티면? 다행히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표준 계약서에는 "임대계약 상의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이행하지 아니 한 경우 1개월 임대료를 위약금으로 임차인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흐뭇한 조항이 있었다. 아마 부동산 임대 계약서 대부분 비슷한 조항이 있을 것이다. (집 계약할 때 반드시 확인하자)

보증금을 안주겠다고 버티던 집 주인은 보증금은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부가로 계약 해지의 책임을 물어 우리 가족에게 위약금을 물어줘야 할 판이었다. 집주인이 수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중대한 계약 위반 사유에 해당된다. 수선의무 이행기간도 대개 일정 기간으로 한정되어 있다. 임차인의 불편함은 나몰라라 하고 내키는 대로 집주인이 마냥 미룰 일은 아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집주인은 필자에게 추가로 ‘법률폭탄’을 맞을 수 있다.
계약법 제97조의 규정에 보면 임차인은 계약해지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해에 대한 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이사비용도 집주인의 당연한 의무불이행으로 인하여 발생한 금액으로써 손해배상의 범위에 속할 수 있으며 임차인은 그 이사비용에 대한 청구를 할 권리가 있다. 집 주인 때문에 계약이 해지가 되었으니 이사비용도 물어줘야 한다.

또 있다. 임대인이 수선의무불이행으로 인하여 임차인의 정상적인 가정생활에 영향을 주는 등 건강ㆍ신체 등 권리에 대한 침해 발생 시 임차인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필자의 가족들은 집주인이 마루를 수리해주지 않아서 우리가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영위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부분에 대해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으며 심지어 아이가 놀다가 다친 경우 치료비, 누수로 인해 우리 가족 소유의 이불 등 물품이 젖고 가구가 상하는 등의 경우 세탁비와 수선비 등을 모조리 청구할 수 있다. 아랫 집들에 대한 손해도 물어줘야 함은 물론이다. 물론 이와 관련 청구 소송이 들어가 패소하면 당연히 집 주인은 우리에게 소송비용까지 물어줘야 한다. 이런 류의 정답 나오는 소송은 그다지 어렵지도 않거니와 발품 팔면 변호인 없이 직접 진행할 수도 있다.

필자는 관련 법 조항을 추려 번역해서 균열이 간 나무 바닥 사진과 아이가 넘어져서 괴로워 하는 ’연출’ 사진 까지 한 장 뽑아, 평소 아는 중국인들이 나에게 즐겨 쓰던 "중국에 왔으면 중국 방식을 따르라"라는 말처럼 "너희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법으로 결론 짓자!"고 집주인 앞에서 흔들어 댔고 평소 별다른 불만 없이 살아서 우리 가족을 중국 실정 전혀 모르는 얌전한 너구리쯤으로 보았던 집주인의 얼굴에는 경악의 빛이 번져갔다.

집 주인은 자기 회사 관련자들과 상의하는 듯 했고 결국 며칠 후 그 기세 등등하던 얼굴이 슬픈 표정으로 바뀌면서 월세와 보증금을 돌려주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추가로 한달 임대료를 위약금조로 얹어 주었다.

베이징에 살면서 ‘쌈닭’이 되는 까닭은?

애초에 집주인이 당연히 돌려줘야 할 임대료와 보증금만 조용히 내주었어도 우리 가족은 좋은 기분으로 이사를 갔을 것이고 집 주인도 추가의 비용은 없었을 것이다. 베이징에 살면서 교민들이 겪는 고충 중 가장 흔한 문제가 대부분 세 들어 사는 집주인과의 마찰이다. 이런 류의 하소연이 담긴 사연이 교민 사이트에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 온다.

한족 집주인들은 외국인 임차인을 봉으로 보는 건지 몰라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들어 일단 수중에 들어온 보증금과 임대료를 움켜쥐고 돌려주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임대차 관계에서 집주인에게 손해를 배상 받아야 하는 사안인데도 오히려 세들어 사는 선량한 임차인이 물어주고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필자도 어디 이번 경우 뿐이랴. 과거에도 세 들어 사는 집 낡은 침대를 실수로 파손 하였는데 집주인은 장마당 물건쯤으로 보이는 그 침대를 세계적인 ‘명품’이라며 거액을 요구하기도 했다. 오피스 건물에서 사무실을 운영할 때는 건물주가 황당한 이유를 들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서 곤혹을 치른 적도 있었다. (그 건물의 많은 입주자 중에서 유독 우리 회사만 그런 일을 겪었다. 아마 그들 입장에서는 외국회사라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물론 나중에 돌려 받았다)

일전에 호텔에서 열린 한 행사를 치르는 도중 일행이 앉은 의자가 갑자기 부서졌는데 호텔측은 사과를 하기는커녕 거꾸로 의자 수리비를 물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금연이라서 실내에서 담배를 전혀 피울 수가 없는 상황인데도 테이블 보에 담배 꽁초로 인한 구멍이 났다며 테이블 보 배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저 문화 차이라고 긍정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조금만 틈이 생기면 일단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고 정신 없이 뜯어 먹으려는 그들의 행태에 어이가 없었다.

보편 타당한 상거래와 신의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어 제 배 부르려는 행태는 문화이기 앞서 '야만'이다. 사슴을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고 해야지 '문화 이해' 같이 택도 없는 고상한 얘기하며 인격적인 척 하다가 아들 딸들 고생하고 쪽박차기 쉽상이다.

참고로 필자 경험상 임대차에 관한 법률을 부동산 업자가 잘 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일부 부동산 업자들에게 자문을 구했다가 낭패 보는 경우도 주위에 종종 있다. 일단 그들도 기본적인 것 외에는 관련 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임대인에게도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임차인에게 유리한 규정임을 알면서도 안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살피건데 중국의 임대차 관련 법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임차인에게 유리한 조항이 많다. 특히 임대차 문제 관련 법률 상담은 대사관 무료법률센터나 현지 교민 로펌에서 무료 상담도 잘 해준다. 차라리 전문가에게 자문하는 게 유리하다. 필자는 한국에 있을 때는 성격이 밝고 온화하다고 생각했는데 베이징에 살면서 몇 년 부대끼다 보니 목소리도 커지고 좀 사나워졌다는 소릴 가끔 듣는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라…어쩌랴.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를 않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