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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치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L씨. 왕징신청 APT 옆 도로변 |
며칠 전 필자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슈퍼마켓 앞에서 중국인 3명이 집단으로 한국인 1명을 두들겨 패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다.
곧바로 핸드폰으로 가까운 파출소에 신고 했지만 (이런 일을 자주 목격하다 보니 항상 파출소 번호를 저장해 둔다) 출동한 경찰이 명백한 현행범을 그저 꾸짖듯 타이르는 정도로만 끝내고 제대로 조사 한번 안 하고 돌려보내는 것을 보고 기분이 언짢았다. 같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으면 그같은 일처리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베이징에서 불과 몇 년 사는 동안 한국인들의 이와 같은 자잘한 민생 치안사고부터 끔찍한 살인사건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일들을 보고 겪었다.
몇 년 전 왕징에 사는 중국인 동료직원이 출근 하면서 살고 있는 동네에서 엎어져 있는 중국인 시체를 보고 왔다고 투덜거렸다. 발견된 시신을 경찰이 출동하여 검시 중이더란다. 그런 끔찍한 일은 신문에 안 나느냐 물었더니 희미한 미소가 돌아왔다. 짐작컨데 마치 "너네 나라는 세상 모든 일이다 신문에 나냐? 얘가 참 세상물정 모르네"라는 표정이었다.
몇 달 전파출소에 등기하러 다녀온 아내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파출소에서 아내의 실종을 호소하는 한국인을 보았다고 했다. 실종된 그의 아내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데 약 한달 전 사라졌다고 발을 동동 구르더란다. 부녀자의 한달 간 실종.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정신이 온전치 않은 부녀자가 중국에서 한 달간이나 연락이 안되었다면 이는 끔찍한 사고로 연결될 개연성이 높다.
베이징 왕징에 살면서 겪은 일
지난 2005년 베이징 한국인 밀집지역인 왕징에서도 가장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4구지역 도로변에서 한 한국인 여성 납치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후배의 여자친구가 밤 11시경 인도를 걷던 중 낯선 중국인 남자 2명에게 강제로 끌려가 승용차에 태워지려는 순간 간신히 빠져 나온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한인촌 중심거리에서 일면식도 없는 괴한들에게 젊은 한국 여성이 납치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당시 이 사건은 한인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올해 초 집으로 배달 온 생수 배달원이 인근 B 아파트에서 보모가 자신이 일하던 가정집 한국인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이런 유괴사건은 한국 같으면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어지고 9시 저녁 뉴스에 보도되겠지만 아이들이 자주 매매되는 중국 실정은 좀 다르다.
집에서 일하던 보모가 금반지와 같은 귀중품을 훔쳐 사라지는 절도 사건은 하도 잦아 사고 축에도 못 낀다.
얼마 전 왕징에서 어머니와 장을 보러 나간 12세 한국 여자 어린이가 실종됐다가 머리가 깎여진 채 화장실에서 발견 되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당시 영사관은 이 사건의 진위를 확인해 주지 않았다. 중요한 건 중국에서 인신매매, 납치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몇 년 전 한국에서 베이징으로 갓 들어와 왕징의 한 민박집에 장기 투숙 할 때의 일이다. 중국인 깡패들이 채무자인 교포를 민박집으로 납치해 와 감금했다. 신고하겠다고 나서는 나를 말린 건 오히려 납치당한 채무자였다. 다른 외국인 손님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의 배포도 대단했다.
그 엽기적인 민박집에서는 주인이 한국인 손님과 말다툼을 벌이다가 칼로 찌른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가뜩이나 기분이 찝찝한 터라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다른 민박집으로 두말없이 짐을 옮겼다.
한번은 동료 직원들과 왕징 아파트 단지 내의 안마업소로 기분 좋게 안마를 받으러 갔다. 그런데 업소 안의 왠 중년의 중국 사내들이 욕설을 하며 시비를 걸어왔다. 오는 말이 곱지 않으니 가는 말이 고울 리 없다. 그러자 중년의 사내들이 주머니 속에서 칼을 꺼내들며 위협을 했다. “사장 어딨냐?”며 떠드는 폼이 별 볼일 없는 동네의 건달들 같았다. 그렇다고 민간인들이 깡패와 싸울 수는 없는지라 할 수 없이 얼굴 빛이 험악해지는 일행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몇 년 전 왕징 W아파트에 있었던 중국인 과외교사에 의한 한국 중학생 살해사건, 톈진에서의 한국인 여학생 살해사건 등은 이미 한국의 매스컴에도 크게 보도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교민들의 항의와 제보로 인해 공표되는 한국인 관련 사건의 일부 일 뿐이다.
주중 한국공관은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모든 한국인 관련 치안 사고를 발표하거나 확인해 주지는 않는다. 몇 년간 베이징에 살면서 그저 생활의 대부분을 집과 사무실만 오가는 평범함 회사원인 필자는 많은 치안 사고를 보고 겪었다.
광저우에 살던 친지가 강도를 만나 금품을 빼앗긴 후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고 대학에서 공부하던 가까운 중국인 친구 하나가 동네 불량배에 칼에 찔려 위문간 일 등 주위의 사건까지 포함하면 헤아릴 수 없다. 필자가 속된 말로 좀 ‘재수가 없는’ 사람이라서 주변에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이 정도의 경험을 중국에서 오래 거주하면서 다방면으로 사업하시는 분들에게 얘기하면 사실 별 화젯거리도 못된다. 그 분들이 겪어 온 3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경험담에 비하면 이깟 일은 오히려 ‘일상사’에 가깝다.
그렇다면 베이징의 한인촌 왕징은 불법과 폭력이 넘치는 곳인가. 그렇지도 않다. 외관상 평온하고 조용한 곳이다. 여느 한국의 도시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 평온한 이면에는 크고 작은, 알려지지 않은 이른바 수많은 민생 치안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일부 교민들의 객관성이 실종된 집단사고
사실 듣기도 불편하고 시덥잖은 경험담을 구구절절 늘어놓은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얼마 전 중국 사회가 한국사회에 비해서도 참으로 치안이 안전하다고 믿는 교민들이 의의로 많다는 것을 알고 경악했다. 사실 이 글을 위해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베이징 올림픽을 거치고 건국 60주년을 앞두면서 중국도 과거 보다는 치안이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여러 각도로 비교해도 "한국에 비해 더 안전하다"고 장담할 정도는 분명 아니다.
이렇게 주장하시는 분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 중국에 갓 들어온 교민들이거나 혹은 정반대로 아주 오랜 기간 거주해 온, 한국의 일부 언론이 명명한 이른바 ‘신조선족’으로 분류되는 교민들 중의 일부다.
급작스레 중국으로 건너와서 아직 중국 치안에 대한 정보와 경험이 부족한 신규 진입 교민들이야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러나 중국에 오래 거주한 ‘신조선족’ 류의 고참 교민들은 경우는 가볍게 보아 넘길 문제는 아니다.
중국 사회에 어느 정도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생활하고 있는 이 분들은 오래 살아왔고 경험이 풍부하다는 이유로 때로는 ‘중국통’이라고 자처하며 많은 신규 진입 교민들의 생활과 의식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정서적으로 한국에 한 발을 담그고 있고 임기가 끝나면 철새처럼 중국을 떠나가는 주재원 계층보다는 주로 중국에 장기간 거주해 왔으며 또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많다고 예상되는 일부 사업가나 자영업을 하는 분들에게 이런 현상이 두드러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중국을 무대로 오래 거주한 교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의 문화나 생활 습관에 동화되고 또 때로는 중국이라는 나라의 수혜를 입어 가며 중국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면이 생기게 마련이다.
냄새도 못 맡던 샹차이라는 풀도 염소처럼 씹을 수 있게 되고 볼 일이 급하면 한국에서는 잘 지키던 교통신호도 습관적으로 어기게 된다. 담배 꽁초를 길 바닥에 버리는 일이나 여름에 대로에서 윗옷을 벗고 다니는 사람들이 예의 없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무섭던 밤거리도 친근감이 들고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 초기의 도끼눈 부릅뜨던 안전의식도 해이해지고 점점 타성에 젖어간다.
중국에 뿌리를 내리고 오래 거주하며 거주할수록 한국으로 돌아갈 일은 점점 요원하다. 나중에는 한국 내의 기반이 사라져 가고 싶어도 못 간다. 본인도 모르게 ‘반(半)중국인’이 되어 가면서 초창기 때의 느꼈던 어둡고 위험했던 음습한 기억들과 경계심은 점점 망각해 버린다.
그 분들에게 아직도 남은 차이나 드림을 펼칠 중국은 위험하지도 않고 위험해서도 안된다. 그 중 일부는 치안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한국인 교민 수나 여행객이 줄어들면 생업에 직접 타격을 받는 분들도 많다. 그래서 교민 수를 부풀리거나 사건 사고를 쉬쉬하는 경우도 있다.
명분이 진실을 누르고 교민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감추고 싶어하는 홍보맨이 되어버리면서 위험한 ‘집단사고’에 매몰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왔던 한국 혹은 다른 나라에 비교해 중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고의 중심을 점차 잃어간다. 사람의 뇌라는 간교한 메모리는 실제 메모리와는 자신이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만 저장하고 처리하기 마련아닌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안전의식을 재점검하라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지만 가끔 만나는 일부 교민이나 유학생들을 보면 간혹 중국에 대한 이중심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평소 생활하면서 “에이, 빌어먹을 짱개!” 식으로 중국 생활에서 겪는 불편함과 부당함을 수시로 내뱉지만 한국에서 갓 들어온 교민들이 중국을 대놓고 비난하는 걸 들으면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진다. 때로는 굳이 “한국도 마찬가지잖아, 왜 그래”라는 식으로 감정적인 반박을 하게 된다.
졸업을 하고도 중국에 남아 공부를 더 하거나 생업을 구할 요량인 졸업생들에게는 중국 생활이 비교적 안전하고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곧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이라면 때로는 중국 생활이 ‘막장’으로 여겨진다.
주관적인 판단이야 다양하겠지만 객관적인 치안여건은 변하지 않는다. 굳이 어줍잖은 통계를 찾아 들먹일 것도 없다. 경찰 영사나 되는 사람이 써야 할 글을 굳이 쓰고 있는 처지도 한심하기도 하다. 외국으로 파견 나온 영사직 외무공무원들이야 그저 시끄러운 것 싫어하고 임기 마치고 조용히 떠나가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 오죽하면 법무부의 교정직처럼 외교부에 영사직을 따로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겠는가.
필자는 한국의 서울 변두리 ㅇㅇ동에 수 십년 살아 왔지만 그간 살아온 것보다 더 많은 치안사고를 불과 수 년 동안 한국의 행정 구역상 1개 동(洞)에 불과한 왕징이라는 지역에서 겪었다.
지금도 중국 교민생활이 한국에 생활보다 더 안전하다고 믿고 떠들고 다니는 분들이 있으면 볼펜으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다시 중국에 처음 왔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맑은 정신으로 교민 사이트 등에 찾아가 지겹도록 올라오는 한국인 관련 치안사고
라도 좀 읽어보자.
어디든 유별 난 사람은 있다. 10년을 넘게 중국에 거주하면서도 그 흔한 사고 한번 겪지 않은 분들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자신의 특수한 경험을 보편화 하고 중국 교민생활 전체를 예단해서는 안된다. 그런 해이해진 안전의식은 본인 뿐 아니라 간혹 남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고는 항상 방심할 때 찾아오기 마련이다. 자신도 모르게 나태해지는 중국 생활, 다시 한번 안전의식의 고삐를 바짝 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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